검은마대(麻袋) 바지 ‘몸빼’ 그리고 달달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검은마대(麻袋) 바지 ‘몸빼’ 그리고 달달이

0 개 1,942 오소영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 주름진 나일론 천에 알록달록 꽃무늬가 요란스럽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라고 ‘라벨’이 붙은 몸빼 바지다.

 

말 그대로 편하기로 치면 그보다 더 편한 바지는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 시골에서 농삿일하는 주부들, 고깃배 타고 나가는 여인들도 한결같이 그 바지를 입었다. 일하면서 더러움이 묻어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물이 묻어도 툭툭 털면 금방 마른다. 얼룩자국도 있을리 없다. 여인들의 작업복으로 사랑받는 몸빼 바지. 그렇더라도 꽃무늬로 아줌마 패션의 질을 한껏 높여 놓았다.

 

이번 ‘무지개 시니어 합창단’ 공연에 특별히 입을 일이 있었다. 동대문 시장 몸빼 바지가 비행기에 실려 왔다. 출세(?)의 기회를 얻어 선택받은 꽃바지들이었다. 20벌 각양각색의 꽃들이 입어 줄 주인을 찾아갔다. 무대가 한 때 그 꽃밭으로 화려해졌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b86ca74932842f5911727e4a284e47fa_1545346027_4991.jpg
 

‘원더걸스’의 ‘텔미’가 망가졌는지 더 돋보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작업복이 아닌 댄스 의상으로 무대까지 오른 ‘몸빼바지’.

 

‘뫼산이’ 아저씨가 매일처럼 한짐씩 검은 천을 지고 왔다. 거칠고 뻣뻣한 마대천이었다. 축축한 그것을 만지면 손에 검은 물이 들었다. 무슨 말을 시작하려면 뫼산이가 먼저 들어가는 사십대쯤의 남자.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왔다는데 함경도 인지 평안도인지 알 수 없는 뫼산이를 많이 썼다. 우리는 뫼산이 아저씨라고 불렀고 어른들은 그 사람 뫼산이라고 호칭했다. 아마도 구호물자를 담아온 마대일 것이다. 그것을 어디서  그리 많이 수집을 해 오는지 그게 뫼산이의 수완이었다.

 

그 짐이 마루바닥에 가득하면 우리 식구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반쯤만 마른 천을 서너장씩 겹쳐서 다듬이돌 위에 놓고 다듬이질을 했다. 그러면 거칠고 뻣뻣하던 천에 올이 박히고 반들하니 다림질한 것처럼 되면서 자연스럽게 말라 제법 천으로서의 구실을 했다. 먼저 익숙해진 솜씨로 아버지가 마름개질을 해 놓으면 엄마는 그걸 미싱으로 박아냈다. 그 시절 몸빼바지 가내 제품공장이었던 것이다. 하루 수십벌씩 손틀 미싱으로 새까만 천과 씨름을 했다. 검둥이 손으로 밥을 퍼주면 엄마 깜둥이 되었다고 철부지 동생들은 놀렸다.

 

종전후 피난지에서 돌아와 목구멍에 풀칠하려면 무엇이든지 해야했다. 엄마는 힘들어 하기보단 뫼산이를 만난게 큰 다행이라고 말했다. 뫼산이 맘에 들게 하려고 성의를 다하는 우리 엄마. 누구보다 얌전한 제품을 만들어내서 언제나 일이 많았다. 엄마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피난둥이 막내동생 젖 물릴 틈도 없는 것이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고 미싱을 돌렸다. 그때는 손틀을 거의가 썼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젖 한모금 얻어 먹고 배가 부르면 아이는 재롱을 떨었다.

 

“달달달달...”

엄마가 돌리는 손동작을 흉내내어 제 손을 마구 돌린다. 누군가가 옆에서 “달달달달..” 해주면 더욱 신이나서 돌리곤 했다. 어느새 아이의 이름은 달달이가 되어버렸다. 근처에 사는 이모님이 가끔씩 와서 아이를 돌봐주곤 했다.

“달달이 좀 해 봐”

아이는 신이 나서 손을 돌려 어른들을 웃겼다. 막내동생은 그렇게 이름이 달달이로 바껴버린 시절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한강을 못건너 임시 마련한 거처였다. 엄마는 어디서 다듬이 돌을 구해 왔을까? 지금까지 알 수 없는 숙제로 남아있다. 다행스럽게도 미싱은 우리의 것이었다. 1.4후퇴때 아버지는 17살 오빠와 함께 자전거 두 대로 짐을 날랐다. ‘남태령’ 고개를 넘어 ‘과천’을 지나서 지금의 ‘의왕’으로 피난지를 정했다. 먼 친척이 사는 그 곳은 깊은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강만 건너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엔 그 곳에서도 피난을 나갔지만...

 

엄마는 과년한 맏딸. 언니 혼수에 엄청 신경을 썼다. 틈만 나면 누우런 깃광목을 필로 떠다가 강에 나가 물에 적셔서 뚝에 널었다. 하얗게 표백을 해서 옥양목을 만들었다. 그 짐까지... 미싱은 물론.

인민군들이 후퇴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살상을 당했다. 다행이 집은 무사해서 건져진 미싱이었다. 전쟁통에 남은게 뭐 그리 있겠는가. 피난지에서 돌아와 입을 거리도  마땅찮은 세상이었다. 거리에 시커먼 몸빼바지가 넘쳐났다. 편하고 어쩌고를 떠나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이 많아 밤을 세우는 때도 자주 있어서 식구들은 엄마를 많이 걱정했다. 무서운 투지로 가족을 지탱하는 엄마가 너무나 대단했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전의 엄마를 생각하며 울먹였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뫼산이’ 아저씨는 돈을 왕창 벌어서 큰 부자가 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북에서 혼자 내려와 홀아비로 살았다. 이젠 괜찮은 처녀 장가 간다고 선을 보러 다닌다고도 했다. 스물두살 얼굴 화사하게 핀 울언니. 은근히 눈독들이는 눈치에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깟일 안하고 말지. 딸은 못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누군가가 전한 모양이었다. 잘 지켜낸 언니는 그 다음해 형부와 결혼을 했다.

 

사실 몸빼라는 이름은 일본말이다. 일본에서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먼저 나온 옷이기 때문에. 거기다가 바지를 붙여 우리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때 만든 몸빼바지는 밑에 주름을 몇개 넣고 단을 댔던 것으로 생각한다. 마대의 뻣뻣함을 다리미로 줄을 세워 멋을 내서 외출복으로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새까맣게 물이 들어버린 다듬이돌. 손톱밑이 늘 까매서 어딜 맘대로 외출도 못했던 오랜동안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들 깡수수밥으로 연명해 갈때 우리는 그 덕으로 흰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마 언니 시집갈 때쯤 엄마는 그 일을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언니 혼수 바느질에 검정물이라도 들을까봐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피난보따리에 지고 다녔던 귀중한 천에 행여 손때라도 묻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세상에 태어나려면 맏이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못느꼈다. 내가 결혼할 땐 언니때보다 어머니의 정성이 너무나 소홀한것 같아 많이 섭섭했었기에....ㅋㅋ

 

막내로 태어난 달달이는 이 세상에 지금 없다. 전쟁통에 태어나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서였을까? 아니면 그 못된 마대 먼지를 어려서 너무 많이 마셔버린 탓일까? 순서도 잊은채 위로 누님들 형님들. 다 젖히고 먼저 저 세상 가 버렸다.

“달달달달...” 어린애로 재롱떨던 동생. 그 때는 웃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서글픈 기억으로 맘이 아프다.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 그 암울했던 시대를 정서로 그려내는 나는 진정 바보일까?

물들인 마대천에 시커먼스로 보낸 우리세대의 청춘이 너무 억울하고 아깝다.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24 | 9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28 | 15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62 | 1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63 | 1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51 | 1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288 | 1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390 | 7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39 | 7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2 | 7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54 | 1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24 | 1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42 | 1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89 | 1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3 | 1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09 | 1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6 | 1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05 | 1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5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46 | 6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88 | 9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14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47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8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1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4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