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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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2010. 16:27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왕하지의 볼멘소리
내 어린 시절, 시골 동네잔치가 벌어지면 어머니는 일찌감치 일하시러 가시면서 말씀하신다. “끼니 때 되면 꼭 잔치 집에 와서 국수 먹고 가거라.~”
아이들은 잔치 집에 가서 국수 몇 그릇씩 먹어 치우지만 내향성인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은 쑥스러워 선뜻 가지 못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비로소 잔치 집 마당 구석 가마솥 근처를 기웃거리면 아줌마가 소리를 지른다. “너 왜 이제 오니? 잔치는 끝났다.”
정말 끝난 줄 알고 힘없이 발길을 돌릴 때 아줌마가 또 소리를 지른다.
“얘, 국수는 먹고 가야지~ 네 엄마는 뒤 곁에서 파전 부치고 있다.”
전시장 오프닝 날 제니가 고양이 그림을 사자 내가 그림 설명을 해주려고 입을 열었다.
“이 고양이는 타운베이슨 다리 밑에서 사는 도둑고양이 인데 내가 사진 찍어서 그린... 읍,”
아내가 내 입을 얼른 틀어막았다.
“여보, 도둑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라면 사가는 사람의 기분이 좋겠어?”
옆에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뭐 어때, 옛날 화가들은 모델 살 돈이 없어서 거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그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린 줄 알아?”
BDO공모전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 초대받은 우리 가족은 케리케리 센터 전시장의 오픈식에 갔다. 사회자가 심사위원장을 ‘오클랜드에 사는 저지’라고 소개하자 영어를 워낙 잘 알아듣는 아내가 소근 거렸다. (여보... 심사위원장 직업이 판사래...)
심사위원장이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첫 번째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폴 김, 사우스 코리아”
“뭐야? 지금... 내가 위너가 된 거냐? 6000달러 상금 타는 거야?”
내가 앞으로 나가려 하자 아들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빠, 아빠가 다양한 작품을 출품해 줘서 전시회가 더욱 빛난다는 말이야.”
“야, 이름까지 부르고 했으면 뭐 하다못해 500달러짜리 2등 상이라도 주는 게 도리 아니냐?”
“아이고~ 여보, 그 판사가 당신에게 상을 못 준 게 얼마나 아쉬웠으면 이름과 국적까지 또박또박 불렀겠어. 당신은 이미 상을 탄 거나 마찬가지야~”
“각국 사람 대표로 아빠이름을 발표한 것은 아빠실력을 인정해 준거야, 그리고 엄마, 여기서 말하는 저지는 판사가 아니라 심사위원이란 뜻이야,”
“그래~ 너 잘났다. 판사나 심사원이나...”
왕가레이에서 개인전을 준비할 때 아들에게 말했다.
“신문사에 미리 작품전 한다고 연락하면 언제 인터뷰하자고 전화가 올 거다.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아빠를 기억 할 거다. 아빠가 예전에 기자들 인물스케치도 해 줬거든,”
“아빠, 나도 기자들 알아두면 좋지 뭐, 너무 일찍 실어도 그렇고 전시회 직전에 기사 나가는 게 좋겠지,”
대답은 꿀떡같이 잘하던 아들이 전시장 매니저를 만나고 와서는 나보고 기사를 써달라는 것이 아닌가, 매니저가 언론사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내가 기자냐? 기사는 기자가 쓰는 거지, 라고 말해도 그냥 써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내가 쓴 기사를 완벽하게 변역해야한다고 한국에 가있는 딸에게 보냈다.
딸이 번역물을 보냈을 때는 이미 전시회가 시작된 후였다. 앓느니 죽지... 또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신문엔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다. 아들이 매니저에게 물어보자 담당 기자들이 영국으로 출장 갔고 다른기자가 ‘너 그림 팔아서 돈 벌라고 하지?’라고 말하며 안 실어 준다고 했단다. 이런, 얼어 죽을... 전시기간 마지막 주에 아들이 신문사에 연락을 했고 기자들이 전시장으로 찾아와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어가면서 금요일쯤 실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금요일 날 신문을 보니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기사가 실렸다. 으으... 김정일 부자까지 내 전시회를 훼방놓다니... 전시회기사는 다음 주에 실린다는 것이다.
제길, 잔치는 끝났다.
얼어 죽을... 전시회 잘 끝냈다고 기사가 나갈 건가, “아들아, 기사 제목을 ‘잔치는 끝났다’라고 쓰라고 해라,”
전시회 마지막 날 오클랜드에서 많은 교민 분들이 전시장을 찾아오셨다. 너무 고마워 우리 집에서 토종닭 몇 마리 잡고 파전도 부치는데 오늘이 무슨 잔칫날이냐고 물었다. 한국음식냄새에 동네 파리들은 다 몰리고 정말 잔칫집 같았다. 잔치에 참석해주신 오소영 선생님, 김영나님 장공숙님과 일행 분들 그리고 김충현님 부부, 현상석님 부부와 일행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갤러리 매니저는 전시회를 1주일 무료로 연장해 주었으며, 신문기사가 실리고 키위들에게 전화가 왔다. 흠,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군, 닭고기는 다 먹고 국물만 남아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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