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겨울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아버지의 겨울

0 개 1,569 오소영

a7a37213e822d253fa38847935c251e2_1537863680_4114.jpg
 

친정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어머니가 병이 나셨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무슨 일인지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달려갔다.

 

함께 살던 아들들 가족 분가시키고 두분만 오롯이 남아 사는 헐헐한 집이었다. 어머니가 역시 안 보였다. 그럴리 없는 일이지만 혹시 부부 다툼이라도 있었던걸까? 아버지의 표정부터 살폈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네 어머니는 장에 가셨다. 이리 좀 들어와 봐!”

장난끼가 보이는 눈빛으로 한발 먼저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장농서랍 깊은 곳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한참 찾는 아버지. 긴장이 풀리고 맥이 빠지려는 찰나 아버지의 손에는 빳빳한 고액지폐 몇장이 들려 있었다. 비상금을 털어 딸에게 용돈을 주시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잠시 설레었다.

 

“이 돈 가지고 가서 왜 그거있지...”그게뭔지 한참을 주춤거린후 생각난듯이“여자들 들고다니는 빽... 핸 드 백...그거 하나 사다주렴... 아무도 모르게...비밀이다..”

 

눈이 동그랗게 놀래서 바라보는 딸을 등떠밀어 내쫓듯 돌려세웠다.“네 어머니 선물이니까 알아서 잘 골라봐”

 

의구심 가득한 딸을 안심시켜야하는 아버지의 구차스러운 변명섞인 부탁이었다.

 

그럼 그렇지. 마누라 바보로 칭해도 좋을 아버지. 지금으로 말하자면 깜짝 이벤트를 하시겠다는 뜻이었다. 딸의 눈치를 알아차린 아버지께서 민망한듯 얼른 얼굴을 돌렸다.

 

그 날 어머니가 한번도 손에 들어본 적 없는 고급 핸드백을 당당하게 사 들고 왔음은 물론이다. 어떤 방법으로 이벤트를 했는지는 두분만의 비밀로 물어보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몰랐었는데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아버지는 대단한 애처가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늘상 마누라 덕에 산다고 어머니를 추켜세웠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지대높은 집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골목에 보이면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저기봐라 호박같이 둥글둥글한 네 엄마가 오시잖니 골목이 화안하다”아버지가 어머니를 호칭하는 호박같이 둥글다는 표현은 복있는 마누라란 뜻이었다.

 

당신은 복 붙은데가 없는 인상이지만 엄마 얼굴엔 잔뜩 복이 붙어있다고 은근히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랑조랑 육남매 건강하게 잘 키우고 따뜻한 가정 일구는게 전부 아내의 덕이라고 공을 돌리는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아버지 사업이 잘 풀리던 호시절 어머니가 늘 하는 불만은 있었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돈만 갖다주지 말고 뭔가를 직접 사서 들고 오기를 많이 원했던 어머니였다.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아버지는 그게 안되어서 칭찬을 못 받았다. 뭐라고 군말 안할테니 맘대로 사라는 소신이었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그 소원을 풀지 못했다. 6.25전쟁이 휩쓸고 간 몰락과 잡아둘 수 없는 세월은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이젠 그런걸 탐할 나이도 지났다고 접어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긴 세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셨을까? 역시나 아버지의 아내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느 여름날 두 분이 나드리를 간다고 나섰다. 얌전하게 푸새손질한 눈이 부시게 새하얀 모시옷을 입은 아버지. 자랑스럽게 남편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어머니의 손에 예의 그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우와... 핸드백 멋지다. 언제 샀어요?”

 

모르는척 호들갑을 떠는 딸에게 이번에는 어머니가 민망해 했다. 소녀처럼 살짝 볼이 달아오른 어머니. 비둘기 한쌍처럼 길을 나서던 두 분. 지금도 그 화사한 그림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우래옥’에 가서 냉면 먹고 남산에 올라가 놀다 왔다며 스냅사진을 내밀던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 겨울인생이 참으로 따뜻했던 부부였다.

 

이지적으로 냉정한 인상이었지만 인정많고 너그러운 아버지는 우스갯 소리도 잘 해서 식구들을 자주 웃겼다. 누군가 밥에서 돌을 씹었다고 투덜대면 그런것 삼켜둬야 무거워서 바람에 날라가지 않는다고 웃음으로 달래주었다.

 

“얘들아 나 지금 뒷간(화장실)에 가고싶다 근데 추워서 나가기가 싫거든. 내대신 갈사람...?”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놀던 긴 겨울밤. 갑자기 아버지가 툭 내뱉은 한마디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천국을 만든다.

 

꼬맹이 막내동생만이 무슨 영문이지를 몰라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게 또 웃겨서 웃고... 항상 웃음 꽃 피는 봄날같이 따뜻한 가정. 다복한 집안이라고 이웃들이 부러워 했다.

 

그렇다고 부부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직선적인 아버지가 어머니의 심기를 먼저 건드려 시작되는 언쟁이었다.

 

평생 울궈먹는 어머니의 한풀이가 흘러나오기 시작이다. 어리디 어린 나이에 이 집에 시집와서 모진 시집살이에 어린 시동생이 어쩌고 저쩌고...이 때부터 아버지는 말을 잃은 벙어리가 되고 천천히 돌아간 몸은 어느새 완전히 뒤를 보고있다. 혼자서 맥이 빠진 어머니가 조용해지면 그 때 바로앉아 한 말씀 하신다.

 

“이제 다 끝났수? 속이 시원하겠네... 얘들아 네 엄마 냉수 한그릇 떠다드려라!”

 

혹 취기라도 있는 날이면 발소리도 안들리게 방으로 직행을 했다. 아버지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밤이 그런때 였다.

 

평범한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참으로 반듯한 인품으로 사셨던 아버지.

가끔씩 친정에서 자고 오는 밤이 있다. 추운 겨울 비워 두었던 방이 혹시라도 추울까봐 어둠속을 들어와 봐주는 사람도 아버지였다. 바람들까봐 이불깃을 올려주고 벽에 걸린 옷가지들까지 내려 더 눌러 덮어주고 조용히 나가시는 자상한 아버지.

 

철이 들어서일까? 아버지가 방을 나가고나면 왠지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만 내세우는 어머니보다 언제나 칭찬으로 대해주는 자상한 아버지가 더욱 정이 깊은 딸이었다.

 

요즘은 황혼 이혼이니 졸혼이니 해서 나이든 부부들이 갈라서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전에야 여자들이 무조건 참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아닐까? 동등한 고학력. 고능력 시대이니 위아래가 있을 수 없나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주변에서 늙어가는 남자들의 삶을 보면 안타깝다. 세태파악을 못하고 아직도 옛날 남자를 고집하는 사람들. 그들의 겨울은 늘상 외롭고 춥기 마련이다.

 

아내사랑에 부족함이 없었던 아버지의 겨울은 춥지않았다. 늘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아들들도 한결같이 애처가들이어서 가정이 원만하다. 그들 인생에도 꽃샘추위가 있었을것이다. 폭풍우인들 왜 없었을까?

 

모든 시련을 잘 견뎌내고 맞은 겨울인생들. 아버지의 겨울처럼 언제까지나 그렇게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496 | 4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278 | 5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66 | 5일전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175 | 5일전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30 | 5일전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487 | 5일전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30 | 6일전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24 | 6일전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64 | 6일전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52 | 6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498 | 6일전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07 | 7일전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147 | 7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98 | 7일전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13 | 7일전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35 | 7일전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03 | 7일전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02 | 9일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74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54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05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38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23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23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댓글 0 | 조회 425 | 2025.11.26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1자녀가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어디로 대학 진학을 가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