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풀밭에서 뭔지 모를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었다. 마치 캥거루처럼, 토끼라고 보기에는 뛰는 동작이 너무 느리고 쥐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고 포섬은 더욱이 아니었다. 내가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자 이내 풀밭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뭘까?
잘라놓은 나무뿌리 밑에 어미토끼들이 들락거리더니 어느새 주먹만 한 새끼토끼들이 나무뿌리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손자가 토끼를 잡겠다고 뜰채를 가지고 갔는데 가서보니 요새나 다름없었다. 나무뿌리사이로 여기저기 굴을 뚫어놓아 침입자가 온다 해도 탈출할 수 있는 통로가 준비되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벌들이 하나 둘씩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내가 손질하는 정원의 꽃나무든 손자가 노는 놀이터든 햇빛이 잘 들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벌집을 짓는다. 내가 스프레이를 들고 벌집사냥에 나서자 벌들이 알아챘는지 침이 달린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몇 년 전 아내가 벌에 쏘여 고생을 한 후 나는 사람 손이 쉽게 닿는 곳의 벌집을 없애기 시작했다. 아내가 벌에 쏘인 후 한동안 얼굴의 부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너무 이상했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웃고 다니는 아내도 문제였다.
“도대체 얼마나 마누라를 두들겨 팼으면 얼굴이 저지경이 됐을까? 너무 많이 맞아서 좀 실성했나봐...쯧쯔,”
아니, 다리를 벌이 쏘았는데 얼굴이 붓는 이유가 뭐냐고~ 벌에 쏘였다는 것은 상상이나 하겠는가,
벌들이 지붕 물받이로 날아가고 있었다. 작년에 물받이청소를 하다가 보니 커다란 벌집이 있어 아내에게 단단히 주위를 주었었다. 얼씬도 하지 말라고... 벌에 쏘이고 사닥다리에서 쿵하고 떨어져 퉁퉁 부은 얼굴로 목발을 집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저러다 사람 잡겠다고 이웃이 신고하여 무장경찰이 출동하여 폭행죄로 체포되고... 으이?
초전에 박살내야지, 벌집이 더 커지기전에 없애려고 사다리를 가지러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사다리위에 새집이 지어져 있고 눈도 안 뜬 새 새끼가 4마리나 꾸물거렸다. 이걸 어쩐담... 할 수 없지, 잔뜩 먹여 빨리 키워서 날려 보내는 수밖에...
나는 고기며 빵이며 닥치는 대로 새끼들 주둥이에 밀어 넣어주었다. 새 부부도 열심히 지렁이를 잡아다 새끼들을 먹였다. 새끼들을 열심히 먹이는 새 부부를 보니 마치 인간모습 같았다. 온종일 풀밭을 헤집으며 새 부리로 지렁이를 몇 마리씩이나 가지런하게 물고 와 새끼에게 골고루 먹이는 그 모습은 4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새끼 새들은 식성이 너무 좋아 끝없이 먹어대고 엉덩이를 내밀고는 둥지 밖에다 똥을 싸고 또 먹고 또 싸고...새끼들이 눈을 뜬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날개털이 완전히 자란 두 마리가 둥지 끝에 앉아 있다가 내가 준 먹이를 받아먹은 후 숲속으로 날아갔다. 너 이따가 돌아 올 거지? 날아간 두 마리가 오후에 정말 새집근처에 날아와서 내 먹이를 받아 먹고는 또 날아갔다. 이튿날 아침, 나머지 두 마리도 내 먹이를 받아먹고 날아갔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며칠만 더 있다가지... 빈집을 보니 마치 우리 아이들이 떠난 것처럼 허전했다.
해질 무렵 닭장 가는 길목에서 또 뭔지 모를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었다. 마치 캥거루처럼... 내가 살금살금 다가보니 큰 쥐(Rat)였다. 쥐는 앞 두발로 커다란 아보카도를 들고 뒤 두발로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었고 옆에는 또 한 마리의 쥐가 동행하고 있었다. 부부 쥐 같았다. 새끼들을 먹여 살리려고 옆집 농장에서 떨어진 아보카도를 부부가 교대로 나르는 중이었을까, 나는 두들겨 패려고 들고 온 몽둥이를 살며시 내려놓았는데 쥐들은 위협을 느꼈는지 머뭇거리며 아보카도를 내려놓고 달아났다.
나는 아보카드를 발로 차서 멀리 보내고 돌아오는데 문득 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커다랗고 무거운 아보카도를 쥐 부부가 힘들게 겨우겨우 옮겨왔는데... 내가 한 순간에 멀리 보내버리다니... 얼마나 아쉬웠으면 부부 쥐가 도망가면서도 뒤 돌아보고 뒤 돌아보고...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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