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小確幸)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소확행 (小確幸)

0 개 1,767 김준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씨가 한 수필집을 저술하며 창조해 낸 신조어입니다. 우리에겐 ‘상실의 시대’ ‘IQ84’등의 소설로 유명한 그는 2017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사과를 주장하다가 매국노로 내 몰리는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지요. 그의 정치적 신념이야 어떠하던지 소설가인 그의 직업과 국제적 명성에 걸맞게 이 소확행, 우리말로 하자면 작고 확실한 행복, 이라는 단어는 창조된지 삼십년이 넘게 지난 요즘에 들어서야 각종 방송, 출판 매체에 등장하며 나날이 그 유명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랍을 차곡차곡 가득히 채운 단정하게 접힌 하얀 속옷들이나 갓 구워 따끈한 식빵을 손으로 찍어먹는 느낌은 분명 작고 소소하지만 인생에서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행복을 선사한다”

 

요즘 그 단어를 마음속에 담아놓고 간간히 들춰보아서 그런지 살아가며 겪는 작은 사건들 중엔 소소한 행복을 선사할만한 요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물론 이 소확행의 때 늦은 유행이 가족, 건강, 재산으로 대표되던 전통적인 가치의 큰 행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거나 이미 포기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시야를 어쩔수 없이 작고 소소한 곳으로 돌리다보니 자연 발생한 대체 행복론이라고 규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통 사회가 붕괴되고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외로움과 단절을 겪고 있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절한 방법으로 포장하려는 자기보상심리의 일종이라는 거지요.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은 되지만 어쨋든 생각없이 지나치기 쉬운 시간의 조각들 속에서 행복을 건져낼 수 있다면 그리 부정적인 감상만은 아닐듯 합니다. 

 

언젠가 달빛도 희미했던 금요일 밤. 터덜터덜 걸어서 재활용 쓰레기통을 끌어다 길 가에 세우고 돌아서니 언제 따라왔는지 저희 고양이가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앞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분명히 고양이의 탈을 쓴 강아지라 의심해마지 않는 그 녀석이지요. 명색이 고양이인데도 ‘기다려’와 ‘앉아’를 알아듣는다면 유전자구조의 돌연변이를 의심해 볼 수 밖에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항상 집 근처에서만 어슬렁거리며 놀다가 누구 하나라도 집을 나서면 꼭 ‘동구밖’까지 배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이다 보니 덜덜거리는 쓰레기통을 끌고 나선 제 뒷꼭지를 아니 따라붙고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 뻔합니다. 

 

쭈쭈쭈 이름을 불러가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그게 또 좋은지 꼬리를 두어번 살랑대더군요. 짧지않은 드라이브 웨이를 둘이서 돌아오는 동안 고양이는 꼭 한 걸음만큼 뒤에 따라오면서 제가 뛰면 저도 뛰고 제가 서면 저도 서는 장난질로 잔잔한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합니다.

 

집에 들어와 오랫만에 아이들과 TV를 봤습니다. 거실 바닥에 아예 담요를 깔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아빠와 두 아이는 서로의 배에 머리를 고이고 꼬무락대는 삼각형이 되어 TV삼매경인데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키던 엄마는 그 모습이 또 재미있는지 자꾸만 웃어댑니다.

 

다시 떠올려봐도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입니다. 그야말로 소확행이 아닐까 싶네요. 반려동물의 재롱이나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이 삶을 생기있고 유쾌하게 하는 소확행임이 분명한 것처럼 누군가는 취미생활을 통해, 또 누군가는 친구들과 보내는 Healing의 시간 속에서 작고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짧고 행복한 순간들이 마음에 잔잔히 퍼지는 시간의 파문으로 남는 것은 평소 우리의 나날이 그리 행복하지 만은 않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한 주 내내 혹은 한 달을 통틀어 변함없는 행복과 즐거움 속에서 살아간다면 과연 이리도 달달하고 따스한 행복의 기억들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대답은 ‘아니오’일 듯 하군요. 

 

우리가 소확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고 힘을 얻는 이유는 매일매일의 삶이 녹녹하지 않고 만만하지 않고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작은 여유에도 한가롭고 작은 즐거움에도 웃음짓고 작은 우연에도 손뼉을 치게되는가 봅니다. 

 

큰 행복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작은 행복을 모으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이 성취된 상황에서도 결코 행복해질수 없다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소확행에 민감한 사람만이 큰 행복에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의 학업성취과정을 적절히 묘사하는 한 문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간혹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삼당사락’ ‘땀 흘린 노력이 배신하는 경우는 없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등등의 격언을 많이 듣고 자라서인지 긴 시간동안 자리에 앉아 읽고 또 읽고 줄 그으면서 한 번 더 읽는 공부방법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지요. 

 

잘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시간에 ‘한 시간만 더 버티면 Merit 가 Excellence로 바뀌겠지’라고 기대하며 졸린눈을 비비는 학생들도 있고 ‘여기에서 요기까지 다 외우면 최소한 80%는 받을거야’라며 책에 구멍을 뚫을 듯 파고드는 학 생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는 공부방법을 곰팡내 풀풀 나는 철 지난 구식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성취의 크기를 보고 실망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며칠간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는데 겨우 5% 올랐네..’  ‘모든 챕터를 열심히 공부해서 달달 외우다시피 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공부하지 않은 딱 한 챕터에서 시험문제가 다 출제됐네..’라며 실망감에 공부의 의욕을 다 날려버리는 학생들은 사실 자신의 노력이 헛되이 사그라진 이유가 ‘고비용 저이익’스타일의 공부방법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비효율성의 이유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대상을 지나치게 크게 잡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알지 못합니다.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큰 행복에도 둔감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작은 개념의 단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전체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할 대상이 한 과목, 한 챕터가 아니라 한 주제, 한 공식으로 세분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별적인 그 작은 내용들에서 하나 하나 확실한 성공을 이루어내야 그 작은 ‘소확성’들이 모여 그토록 바라던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공부의 비법을 따라하지 못합니다.  

 

각급학교의 연례 중간고사가 막 끝이 났습니다. 학교에 따라 지금도 진행 중일수도 있겠네요. 

 

공부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며, 이제 몇 달 앞으로 다가 온 학년말 시험을 고민하며 우리의 아이들이 방법적인 문제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습은 폭 넓게 상하좌우의 연계를 고려하며 진행해야 하지만 점수와 연결되는 시험준비를 할 때 만큼은 작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하나 하나의 ‘소확성’을 거둬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녹녹하지 않고 만만하지 않고 여유롭지 않은 공부의 시간들이겠지만 작게 잘린 성공들이 하나 둘 모여 어느덧 동산을 이루는 큰 성공의 가도를 달려갈 수 있기를 기원 합니다. 

 

889e676599453f9b72f3d61918a9f383_1527315550_8186.jpg
 

Now

현재 소확행 (小確幸)

댓글 0 | 조회 1,768 | 2018.05.26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씨가 한 수필집을 저술하며 창조해 낸 신조어입니다. 우리에겐 ‘상실의 시대’ ‘IQ84’등의 소설로 유명한 그는 2017년 한국… 더보기

이외수 선생님 죄송합니다

댓글 0 | 조회 1,754 | 2022.03.09
오랫만에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한 권 집어들었습니다. 몇 년전 한국으로 떠나간 지인이 남겨준 책 입니다. 그 동안 몇번의 책장 이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리잡은 거… 더보기

된장찌개 단상

댓글 0 | 조회 1,718 | 2017.06.28
구수한 맛이 일품인 시래기 된장찌개가 밥상에 올랐습니다. 국물도 깔끔하고 적당히 톱톱한 것이아내의 평소 손맛이 잘 우러나와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왠지… 더보기

주기율표

댓글 0 | 조회 1,711 | 2017.12.21
학창시절 공부 좀 하셨던 분이라면 아직도 기억하실만한 ‘랩’이 하나 있습니다.‘수헬리베보탄질산불네나마알규....’그렇습니다. 주기율표의 원소기호입니다. 시대에 따… 더보기

떡갈나무 아래에서

댓글 0 | 조회 1,710 | 2020.10.28
초여름의 공원길을 걸었습니다.한적하게 사브작사브작 시간을 즐기는 산책은 아니었지만 며칠만에 다시 찾아온 여름 하늘은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신나고 설레… 더보기

긍정의 Him

댓글 0 | 조회 1,668 | 2015.07.29
‘웰링턴 허리케인즈….?’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연락처 확인을 위해 이메일 주소를 받았을 때 내심 이 아이가 웰링턴을 베이스로 한 10대 갱 조직의 … 더보기

도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는가

댓글 0 | 조회 1,632 | 2018.02.04
매년 이맘때면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한 해 동안 공부할 과목을 정하느라 고민하곤 합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 더보기

남에게 속고 나에게 당하고..

댓글 0 | 조회 1,630 | 2020.08.12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인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던 지난 주말. 한참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띠링띠링 전화가 울렸습니다. 연락올 … 더보기

얼마전 각급 고등학교의 학년말 시험이 끝났다

댓글 0 | 조회 1,627 | 2015.09.10
얼마전 각급 고등학교의 학년말 시험이 끝났다. 매년 이 때가 되면 필자의 노트에 두 부류의 학생그룹이 리스트 되는데 그 한부류는 이번 external (편의상 N… 더보기

변해야 할것, 변하지 말아야 할것

댓글 0 | 조회 1,626 | 2020.12.08
1.아침이 밝았습니다.창호지를 바른 네모 반듯한 창문은 하얀 광채를 뿜어내며 어서 빨리 집안으로 햇빛을 들이라고 야단입니다. 그 성화에 못이겨 나무틀 미닫이창을 … 더보기

레더맨(Leatherman)

댓글 0 | 조회 1,602 | 2017.07.12
1850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마을.. 그리 부유하진 않아도 이웃간에 체면 치레는 하고 살 만큼 여유있는 동네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합니… 더보기

지금은 우등생이 되어야만 할 때

댓글 0 | 조회 1,599 | 2016.08.24
‘카톡!’무음으로 설정하는 것을 깜빡 했나 보다. 수업시간엔 조용하도록 설정해 놓는데 말이다.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무시하려 했는데 조금맣게 뜬 메시지 알림창을 보… 더보기

완벽주의

댓글 0 | 조회 1,597 | 2015.04.29
받을 수가 없었다. B는 계속 받으라 했지만 그래도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한 시간반의 수업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개인적인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경제에… 더보기

시험의 기술(2부)

댓글 0 | 조회 1,576 | 2016.05.12
지난 컬럼엔 시험장에서 학생들이 지켜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적었다. 이번호엔 5회에 걸친 공부의 기술 시리즈의 막을 내리는 ‘시험 준비’에 대한 글을 적고자 한다.… 더보기

정당한 유산

댓글 0 | 조회 1,569 | 2019.03.26
지난주는 지구 남반구의 조그마한 섬나라인 뉴질랜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한 주 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셨고 또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했던 어처구니 없… 더보기

코로나 시대의 시험준비

댓글 0 | 조회 1,566 | 2020.10.13
이제 2020년도 10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연말시험기간에 들어섰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다가오는 연말시험의 중압감을 피부로… 더보기

공부의 왕도 1편

댓글 0 | 조회 1,555 | 2019.07.10
- 정리의 기술 -이제 2019년도 학년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이제 겨우 7월인데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은 지나친 과… 더보기

Term 3

댓글 0 | 조회 1,552 | 2018.08.10
이제 2018년의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term 2 방학이 끝나고 하반기의 시작을 알리는 term3가 시작되었습니다. 언뜻 느껴지는 것은 이제 반이 지났구나..… 더보기

단천연은법

댓글 0 | 조회 1,549 | 2017.08.09
은은 훨씬 비싼 금속인 금 보다도 사실은 더 활용도가 높은 금속입니다. 금이야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엔 장신구를 만드는 용도와 금전, 금괴를 만드는 외에는별 실용… 더보기

기출문제풀이(Ⅱ)

댓글 0 | 조회 1,528 | 2015.10.28
자.. 그럼 기출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기출문제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NCEA 학생들은 NZQA 웹 페이지에서 모든 페이퍼들을 다운받을 수 있다. 다운로… 더보기

내 인생은 나의 것

댓글 0 | 조회 1,523 | 2016.10.12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필자가 중학생 때인가… 전국을 휩쓸었던 유행가 가사이다. 당시 신문에 ‘청소년들의 반항… 더보기

열심히, 하지만 안 열심히

댓글 0 | 조회 1,513 | 2020.03.25
한마디만 던졌다가는 금방 눈물을 뚝 떨굴것만 같았던 Z가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왜.. 그럴까요...? 왜 저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걸까요?”애먼 창 밖 구… 더보기

바이러스 대첩

댓글 0 | 조회 1,509 | 2020.03.11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대화의 주제가 거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듯 합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도 ‘몸은 건강하냐’로 시작해서 ‘몸조심해라’로 … 더보기

나는 백종원씨가 좋아요

댓글 0 | 조회 1,498 | 2022.07.13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릴수 있는 혜택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해외에 나와서도 바뀔줄 모르는 본성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확실히 콕 찝어 말할수는 없지만 ‘인터… 더보기

사람은 사람으로..

댓글 0 | 조회 1,487 | 2020.07.15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나름 큰 충격을 받아서 여기저기에 소문까지 내 가며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나가야 할까 모색하느라 고민했었는데요. 사람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