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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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2018

0 개 1,839 김준

지난 2017년을 뒤 돌아보자면 일상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많은 사건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 주민들의 쾌적한 도로이용에 큰 기여를 하게 된 모터웨이 20번의 워터뷰 터널은 오클랜드 중심부와 남부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로써 네비게이션의 경로안내에까지 변화를 일으킨 명실상부한 commuting의 혁명입니다. 새소식이라 불리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지만 아직도 달려보지 못한 분들이 계신 듯 하니 먼 옛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을 듯 합니다.

가끔 모터웨이를 달리다가 16번에서 20번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지날 때면 뉴질랜드의 토목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한국의 도로에 비교해 본다면 동네 야산에 뚫어놓은 터널 정도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뉴질랜드의 도로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 길이하며 완벽한 곡률하며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기술의 집합체를 보는듯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제가 그동안 너무 촌스러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터널을 지나며 다른 차의 운전자들을 흘낏 쳐다볼라치면 참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어수룩해 보인다 해야할지.. 한껏 긴장한 표정이 너무도 역력하고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차선에 맞춰 운전하느라 도로에만 집중한 모습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선생님 말씀 한 마디를 틀림없이 지키려 긴장한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아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긴 터널이 주는 위압감에 눌려 그리 어색해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여기저기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본 우리에게는 조금 갑갑하기도 한 모습이지요. ^^

터널은 한 번 선택한 이상 절대로 되돌아설 수 없는 강압의 공간입니다. 사방을 검게 두른 콘크리트와 어두움은 물질과 관념, 세상의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아우른 절대적 장벽이 되어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들을 위압합니다. 

터널을 지나는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 아직은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의 빛나는 작은 점을 향해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들숨과 날숨이 번가르는 규칙적인 호흡 또한 한결 조용하고 느려집니다. 

터널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한번 발을 들인 이상 반대편의 끝을 보아야만 하고 일단 시작하고 나면 튜브에서 밀려나오는 하얀 치약처럼 정해진 순서와 시간에 맞춰 질서있게 이동해야만 합니다. 

갈림길이나 신호등 같은 최소한의 선택마저도 배제된 터널속의 달리기는 움직임의 목표뿐 아니라 그 방법까지도 획일화시킨 너무도 경직되고 융통성 없는 과정입니다. 

갑갑하고 어두운 현실에 짓눌려 살짝 무거운 마음으로 한참을 달리던 중 멀찌감치 어딘가가 뿌옇게 밝아지나 싶더니만 길게 굽어진 터널의 끝 무렵에서 갑작스런 출구를 맞이했습니다. 

머리 속에서 상상했던 터널의 종결이 점점 커져가는 빛나는 소실점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예상치 못한 급변이긴 하지만 그래도 밝은 빛에 마음까지 환해지고 열린 창으로 들이치는 신선한 바람이 싱그러운 햇빛 아래의 세상은 터널안의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행복한 곳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좀 전까지의 눅눅했던 어둠을 훌훌 풀어 날리며 차는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펼쳐 진 목적지 인근에 와 있습니다.

아마 이래서 우리는 터널을 이용할 수 있나 봅니다. 괴물의 아가리같이 검고 흉측한 텅 빈 공간에 발을 들여 놓을 용기가 생긴 것도, 좀이 쑤실 정도로 지루한 정속 서행운전을 묵묵히 견딜 인내심을 발휘한 것도, 모두 이 반대편 출구를 나온 후 이전의 햇빛과 공기를 여전히 다시 누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던 듯 합니다. 

이 믿음이 없었다면, 너무도 당연한 이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결코 한 발짝도 공포스런 터널의 어두움에 들이밀 수는 없었을 겁니다.

 


 

2018년의 첫 컬럼을 준비하며 어떤 희망찬 메시지를 말해야 할까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의 연속선일 뿐인 ‘일 년’에 때마다 절기마다 쉼표를 찍어 놓은 달력은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고민할 수 있는, 다소 번거롭지만 새로운 생각으로 주위를 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언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저의 마음과는 달리 정작 제 눈앞에 보이는 2018년은 그 동안 몇 번 지나보았던 길고 긴 모터웨이 20번의 터널과 같이 막막하고 갑갑하고 불안합니다. 

이미 중년의 한복판을 지난 제게도 한 해의 시간이 이리 부담스러운데 아직 몇 해 살아보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의 눈에는 2018년 한 해가 어떤 모양으로 비춰지고 있을까요.. 

그들의 눈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 반대편 출구의 빛 나는 소실점을 찾아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올해는 이러이러한 목표가 있지만 결과가 어떨지 몰라 불안해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면 참으로 기특하다며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 뚜렷한 목표나 지향점이 없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의 중간인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2018년이라는 터널에 발을 들이밀었고 이 길이 ‘활로’인지 ‘사로’ 인지 모르는 채 그저 달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시간이라는 녀석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 그러하듯 그들의 한 해는 갈림길도 없고 우회로도 없으며 잠시 멈춰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 중의 일부는 간혹 두려워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하며 한번 들어선 이상 끝을 보아야 하는 이 터널속의 갑갑한 행진에 염증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벌개진 눈으로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며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출구의 징조를 찾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똑같은 시간에 너무도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어두움의 소멸에 당황하게 되겠지요. 한 부류는 이내 신선한 바람의 향기에 한껏 행복해 할 것이고 또 다른 부류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밝은 세상을 피해 다시 터널의 어두움으로 회귀하고 싶어질런지도 모릅니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어..’라고 되뇌이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두 부류의 아이들 중 어느쪽이 더 바람직하고 어느쪽이 덜 바람직하다며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그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눈 앞의 불편을 감내할만큼 인격적으로 완숙하지는 못하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이고 그들 모두가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것이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될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는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을, 그리고 언제나 겁쟁이인 저 자신을 격려하기로 했습니다.  터널 입구의 어두움을 보지말고 그 끝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디라고 독려하기로 했습니다. 

‘터널 2018’을 꽉 채우고 있는 깊고 진한 어두움이 두려워서, 혹은 변함없이 동일한 지루함이 마땅찮아서 터널의 초입에서 어슬렁거리며 눈치만 보는 그들에게 걱정말고 들어서라며 권하고 싶습니다.

터널이라는 것에는 어김없이 반대편 출구가 존재한다는 그 ‘믿음’을, 인생의 선배들이 증거하는 터널의 끝과 그 이후의 밝음에 대한 ‘확신’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아이들을 2018년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조금의 불편함과 조금의 구속이 다하고난 뒤 알지 못하던 사이에 훌쩍 성장해 있을 그들의 모습과 얼굴을 간지르는 상쾌한 바람의 신선함을 미리 알려주며 이 갑갑한 변화의 과정에 그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이 ‘한 해’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 ‘하루’를 운전해 달려간다면.... 되돌릴수도 없을 것이고 중간에 쉬어갈 휴게소도 없을 테지만 그저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달려 간다면..  차선을 바꾸는 최소한의 융통성마저 제한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 간다면..

언젠가 터널의 끝을 보는 날.. 그 침묵과 흑암의 시간을 지나며 부쩍 자라난 그들은 터널 너머의 어느 언저리에서 마지막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2018년이 다하는 그 어느 날.. 빛나는 머리칼을 날리며 푸른 미소를 웃는 그들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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