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타고 온 가을 선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봄바람 타고 온 가을 선물

0 개 1,263 오소영

cc78643d8e42af9172354a3e5b239ff2_1508881677_2989.jpg
몇 년 전이었다. 

나른하게 지쳐가는 몸을 추스르러 한국에 나갔다. 

좋은 보약 준비해 놓겠다는 딸애의 보챔도 한 몫을 하긴 했지만 그동안 여기서 못 먹었던 입에 맞는 음식들을 찾아먹고 싶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지만 눈으로 보면 땡기리라 믿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달려가는 길.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울긋불긋 과일가게 진열대가 화사했다. 

 

그 한켠에 보라색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포도 였다. 

 

아... 지금이 포도의 계절이구나!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굳게 닫혀있던 식욕이 무섭게 꿈틀대는걸 의식했다. 

 

실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이변이었다. 과일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 그 상큼한 포도알을 얼른 입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온갖 먹거리로 요란스러운 간판들을 지나쳐 왔지만 반응이 없었는데...

 

문득 내 몸에 맞는 보약을 벌써 반쯤은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가웠다. 

 

이심전심이랄까. 집에 도착하니 큰  딤채안에 포도가 그득했다. 오래 헤어져 살았어도 엄마가 포도 좋아하는 걸 잊지않고 기억해 준 딸이 고마웠다. 

 

“그런걸 잊고 살면 엄마 딸이 아니죠....” 

 

부모 자식이란 끈끈한 연결이 이런 것이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매일아침 눈만 뜨면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탱글탱글한 포도알이 입안에서 씹히는 순간 상큼한 기분으로 머리가 맑아졌다. 축 쳐져가던 어깨에 힘이 생기는 것도 같아서 늘 아침이 상쾌했다. 

 

거침없이 한송이 뚝딱 먹어치우면 정신이 번쩍들었다. 내가 긴 세월 살아온 땅에서 열매맺은 입에 딱 맞는 포도. 내 몸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거였어. ‘신토불이’

 

알맞게 신맛에 단맛이 조화로운 상콤함이라고 해야하나. 간을 잘 맞춘 음식처럼 감칠맛이 여간 아니다. 

 

농사도 어찌 그리 알차게 잘 지었는지... 빈틈없이 촘촘하게 박힌 알이 하나도 허튼게 없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든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유혹하는 당당함이 너무나 당연했다. 

 

여기도 포도는 사시사철로 지천이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수확한 수입산이 어느 마트에나 쌓여있다. 

 

가끔씩 먹고싶어 사 먹어보면 늘 실망이다. 마치 간이 없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닝닝하다. 당도도 물론 떨어지지만 뭔가가 1% 모자란듯 확실하지가 않다. 시면 시든가 달면 달던가 어정쩡하니 감칠 맛이 없다. 

 

한참 전의 일이었다. 

 

핸더슨쪽 어느 농장으로 우리품종 포도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여기에 그게 있다는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여럿이서 달려갔다. 

 

일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본인들이 직접 들어가서 따 오라며 가위 하나씩을 내줬다. 대단히 큰 농장임에도 그 포도는 딱 두 고랑 뿐이었다. 

 

왜 그건 조금만 심는지? 무슨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다른 포도보다 짙은 보라색으로 탐스러움을 뽑내고 있었다. 

 

마치 저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반기는듯 몸 자랑이라도 하는걸까? 

 

공짜도 아니건만 모두들 욕심을 부려 큰 그릇을 채웠다. 값이 만만치 않았다. 먹을 만큼씩만 사고 남는 것은 일손 도와준 걸로 만족해야 했다. 

 

얼마 지나서 다시 갔을땐 벌써 끝이 나고 없었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코리안 말고도 또 있었나보다. 

 

고국에서 포도수입이 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지금 우리 포도와는 맛의 차이가 많이 달랐다고 생각된다.

 

여기는 지금 봄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벗꽃보다 한걸음 뒤늦은 복사꽃이 아름답다. 요즘 한국 마트에 가보면 ‘포도의 계절’ 고국의 가을 냄새가 풍성하다. 

 

한 손으로 들기조차 무거운 황금같이 노오란 배. 오고가는 과일상자에 추석명절이 담겨있다. 

 

둘러앉아 송편빚을 형편은 못 되어도 한가위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풍경이다. 엊그제 가까운 중국마트에서 그 포도를 발견했다. 일부러 멀리 안 가고도 사 먹을 수 있도록 나를 위함인 것 같아 너무 반가웠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까? 값도 의외로 한국마트보다 쌌다. 있다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데 값까지 싸니 횡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애기다루듯 곱게 다뤄야 하는 걸 마구 만져놓은게 틀림없다. 튼실한 송이가 많이 흩어져 있어 신선함이 덜했다. 

 

선물용도 아니고 나 혼자 먹을 것이니 별 문제는 없었다. 그 맛이야 다를바가 없다. 

 

근래 한국의 과일들 맛과 질이 대단히 우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과학적인 기술의 성과일 것이다. 딸기나 참외같은 것들도 그 맛이 전 에 먹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가끔씩 고국행에 밥보다 과일에 더 매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입이 즐거워 행복한 순간들. 모든 과일들이 수입이 돼서 여기서 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마를 때나 입안이 쓸 때. 조금씩 나눠 먹으니 너무좋다. 여기 계절이 바뀌어도 고국의 가을만은 길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포도가 내 좋은 입맛 친구로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기에... 

 

옛날에는 포도가 끝물일 때, 몇 짝씩 들여왔다.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를 담갔지만 난 원액을 만들어 병에 저장했다. 술보다 순수하고 강한 포도향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하얀눈이 싸락싸락 내리는 날. 마알간 유리잔에 포도쥬스를 따랐다. 빛깔이 너무 고와 단번에 마셔버리기가 아까웠다. 

 

창 너머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를 음미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잔을 비웠다. 얼었던 몸이 따뜻해져 오는 훗훗함을 느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잔잔한 행복감이었으리.                    

 

일찌감치 혼자 살아온 내 정서가 바로 그런거였나보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야릇한 향취속에서 낙엽따라 가버린 계절처럼 멀리 떠나간 사람들을 곧잘 생각해 내곤했었다. 

 

아득한 옛날 일이 돼버린 그 어떤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다. 

 

누구하나 기댈사람 없는 삼팔 따라지 초라한 문학도. 그와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모처럼 소사 포도밭에 놀러 갔을 때다. 포도넝쿨 얼크러진 속에 그를 들여 보냈다. 의아해 하는 그에게 가방 안에 넣어간 새 바지를 갈아입으라고 주었다. 

 

“그 때 당신 참 따뜻했어...” 

고맙다고는 끝내 말을 안했다. 남자의 마지막 지키고 싶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가끔씩 그 때 일을 회상하며 옛날 앨범을 펼쳤다. 서로가 힘들 때 좋은 위안이 되었다.

 

지금의 내 삶은 낭만도 멋도 없다. 빈 껍데기 영혼조차 잃고 오직 본능으로만 사는 것 같아 안쓰럽다. 

 

봄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앞집 화분에 달랑 한포기 심기운 딸기가 매일 조금씩 빨개지고 있다. 재미있다. 이제부터 그라스에 빠알간 딸기쥬스를 따라볼까나 잃었던 낭만을 되찾기 위해서...

 

무대 뒤의 풍경

댓글 0 | 조회 1,180 | 2017.12.19
마치 동굴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침침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안간힘을 쓰다가 눈이 떠졌다. 다행히도 꿈… 더보기

숙모 시집오던 날

댓글 0 | 조회 1,770 | 2017.11.22
“어머님이 오늘 새벽에 선종하셨습니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받은 전화. 사촌동생이 알려온 숙모 님의 부음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팔십줄의 숙모 … 더보기
Now

현재 봄바람 타고 온 가을 선물

댓글 0 | 조회 1,264 | 2017.10.25
몇 년 전이었다.나른하게 지쳐가는 몸을 추스르러 한국에 나갔다.좋은 보약 준비해 놓겠다는 딸애의 보챔도 한 몫을 하긴 했지만 그동안 여기서 못 먹었던 입에 맞는 … 더보기

술 석잔이 있는 풍경화

댓글 0 | 조회 1,283 | 2017.09.26
지루할만큼 질척이던 날씨가 모처럼 화창하다. 비 속에서 외롭게 피어난 자목련의 을씨년스러움도 오늘은 화사하다.성급하게 봄 냄새가 그리워지는 한나절이다.“거긴 요즘… 더보기

그 특별했던 날의 긴 하루

댓글 0 | 조회 1,396 | 2017.08.22
평상시 외출에는 버스가 마냥 편하다. 그 날은 상황이 달라서 서둘러 차를 몰고 나서야 했다. 며칠전, 새로 개통된워터뷰(water viwe)터널을 신선한 기분으로… 더보기

빨강 구두 아줌마

댓글 0 | 조회 2,508 | 2017.07.25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보기

사탕, 달다

댓글 0 | 조회 1,407 | 2017.06.27
우는아이 달래주고 웃는아이 울리기도 하는 달디단 사탕. 달콤한 말로 남의 비위를 맞추어 살살 달랜다는 사탕발림이란 어른들의 말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사탕 하나가… 더보기

잔인한 달, 나의 4월

댓글 0 | 조회 1,561 | 2017.05.23
4월 1일은 만우절(萬愚節)이다. 누군가 실없는 말로 내 웃음보를 자극해 올 것만 같은 기대로 첫날을 맞았다.고국은 지금 봄이 무르익는 좋은 계절이다. 울긋불긋 … 더보기

삶의 그림 속에 창 문 낮은 집

댓글 0 | 조회 1,660 | 2017.04.26
우리말에 노름하는 자식,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보지도 말라고 했다.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렵게… 더보기

삶의 축복

댓글 0 | 조회 1,798 | 2017.03.22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 떠나신 분.반평생 긴 세월을 그리움 가슴에 싸안고홀로 외로웠던 삶.눈 감으신 고요로움이 차라리 평화로울까?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얼마… 더보기

자만인가, 착각인가

댓글 0 | 조회 1,503 | 2017.02.22
평생을 살집없는 몸매로 튼실한 부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젊었을 때는 날씬(?)하다는 부러움으로 그런대로 살만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쪼그라드니 이젠 배곯고… 더보기

아기처럼 웃고 살고싶다

댓글 0 | 조회 1,474 | 2017.01.25
유모차에 실린 아기가 버스에 올랐다. 머루같이 까만눈이 초롱초롱하다. 커다란 눈속에 많은 것을 담으려는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눈이 마주치자 낯가림도 없이… 더보기

기어이 나를 울리고 가는구나 !

댓글 0 | 조회 2,193 | 2016.12.21
이른아침부터 하릴없이 시시덕거렸던 차 안에서의 분위기는 생판 광대의 연극이었나?공항에 내렸을 때. 세 여인의 표정은 어느새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무언의 행동… 더보기

이만큼 나이 먹어보니 . . .

댓글 0 | 조회 1,676 | 2016.11.23
젊었을땐 남만큼 가진게 많지않다고 투정을 하며 살았다.이만큼 살다보니 이젠 내려다보는 혜안이 열려 지금 있는것만 가지고도 부자임을 감사한다.주제넘은 오만과 편견으… 더보기

지붕위의 여자

댓글 0 | 조회 2,858 | 2016.10.26
뒷집에 새로 이사와 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항상 후두로 머리를 덮은 파커차림이다. 뒷모습 말고는 얼굴을 본 적이없어 나이를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남자처럼 키… 더보기

이름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2,658 | 2016.09.28
선영. 세영. 은영. 한결같이 고운 여자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주인들은 모두 남자들. 내 남자 형제들의 이름이다.그 중에 진영이 있다. 남자 이름같은데… 더보기

굴뚝이 있는 집

댓글 0 | 조회 2,814 | 2016.08.25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아예 굴뚝이 없다. 굴뚝이 있는 옛날 집들도 이젠 연기가 나질 않는다.내가 처음 왔을 때 만해도 티티랑이 동네 어귀엔 나무 타는 냄새가 야… 더보기

마음이 부자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496 | 2016.07.28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이불속에서 오시시 한기가 느껴진다. 히터와 침대매트에 스윗치를 올리고 바른자세로 다시 눕는다. 몸이 따뜻해져오면서 살폿이 다시 잠이든다 달… 더보기

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댓글 0 | 조회 1,763 | 2016.06.22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걸을때 말고는 발 모시는(?) 일이 눈물겹다.얼마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때아닌 복더위가 찾아와 지금… 더보기

모자(帽子)의 여인

댓글 0 | 조회 1,495 | 2016.05.26
외출 할 때마다 항상 모자를 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멋을 내기 위함인줄 알고 흔히 ‘멋쟁이’(?)란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천만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 더보기

프라하(Praha)에서 보내온 반가운 영상

댓글 0 | 조회 1,792 | 2016.04.28
예정된 하루의 일과를 별 탈 없이 마친 귀가 길은 늘 산뜻하게 마련이다. ‘하버 브릿지’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석양에 물든 고운빛 물 위에 뜬 ‘요트’들의 한가로… 더보기

부녀 별곡 (父女 別曲)

댓글 0 | 조회 2,355 | 2016.03.24
이제 여기 여름도 한국처럼 덥다고 느끼며 무더위 속에서 한 여름을 보냈다.뙤약볕에 불화로처럼 달아오른 어느 일요일 오후. 서늘한 바람 그늘이 그리워 고목으로 울창… 더보기

소통하는 영원한 벗, 한송이 빨간 장미

댓글 0 | 조회 2,813 | 2016.02.24
혼자 밥 먹는게 지루하고 따분할 때. 무심히 놓인 식탁 한켠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놓칠세라 내 시선을 붙잡는다. “어머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더보기

공항 그리고 크리스마스 데이

댓글 0 | 조회 1,907 | 2016.01.28
‘크리스마스 데이’에 밖을 나가보니 너무나 조용했다. ‘쇼핑 몰’까지 문을 닫으니 세상이 달라진듯 한산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 일까?. 그들에겐 일년을 기다려… 더보기

반갑잖은 손님이 저기 또 오시네

댓글 0 | 조회 2,456 | 2015.12.22
집 앞 길가에 나가서 빨간 신호등을 마냥 켜 둘까? 현관문을 지킬까? 아니면 방 문이라도 잠가 버리면 그 손님은 오지 않을는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세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