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Shame), 숨고 싶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수치심(Shame), 숨고 싶다

0 개 1,875 정인화

♥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

 

고등학교 이 학년 때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순간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 다 빠진다’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런데도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앞만 쳐다봤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차갑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살아 있었다. 

 

오클랜드에 와서도 한동안 빗소리에 푹 빠져 지냈다. 어떤 때는 밤 늦게까지 앙철 지붕에 떨어지는 비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산성비 때문이었을까. 머리 가운데 숱은 동그라미가 보일 정도로 많이 빠졌다. 줄어드는 머리숱과 함께 비에 대한 열정도 사라져갔다. 

 

지금은 비를 맞던 그 날을 떠올리면 ‘한여름이라 감기에 안 걸린게 다행이었지’하는 생각은 든다. 

 

오십이 넘어가면서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밤늦은 시간에 비가 오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괜히 바닥을 쓸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가라앉은 먼지도 닦는다. 그런 날에는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밥에 김치를 넣어 볶아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비 오는 날에는 왜 가만히 못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비로 단절되는 밤에는 더 많이 외롭다. 또한, 앞날을 걱정하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6496f0c6f59b3706b3121b76cf7dbb7d_1505259591_0429.jpg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 (Maslow)는 욕구단계설(Hierachy of Needs)을 주장했다. 그의 이론처럼 ‘나도 먹고 살만하니까 애정이나 소속의 욕구로 인한 결핍을 자주 느끼는 걸까.’ 

 

많은 내담자들이 자라오면서 경험했던 결핍으로 인한 아픔을 못견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들은 그 고통을 달래려고  술과 마약같은 물질중독이나 쇼핑이나 섹스같은 행위중독에 빠진다. 

 

사실 나도 그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위해감축(Harm Reduction)이란 측면에서는 나을 지 모르나 나도 라면이나 쌀국수 국물을 통해 축 처진 기분을 종종 바꾼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배웠다. 인간은 서로 어울려 살지 않으면 생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잘 안다. 또한, 뇌 과학자나 신경 과학자들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여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고 있다. 

 

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살면서도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비 오는 날에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롭다. 동네에서 축구를 할 때 ‘언제 나를 끼워줄까’하며 거의 마지막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 고등학교 때 교련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하던 모습과 같은 여러가지 형상으로 비오는 밤에 찾아온다. 그런 날에는 화를 내는 대신에 수치심(Shame)과 죄의식(Guilt) 사이에서 번민한다.

 

‘네가 문제지’라는 비판적인 내면의 소리가 가슴을 막 찌른다. 미국의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테드 톡스(TED Talks)라는 강연회가 있다. 테드 톡스에서는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 등과 함께 과학이나 국제적인 문제까지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가 나와 이십 여분 안되게 강연한다. 

 

이 강연회에 출연해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사회복지사면서 교육가인 버네 브라운 (Brene Brown)이 있다. 그는 수치심을 나에게 결점이 있어서 사랑, 인정, 일체감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감정이라 정의한다. 또한, 그는 수치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얘기하듯이 자신을 대하면서 믿는 사람을 찾아 본인의 얘기를 공유하라 한다. 

 

그는 수치심은 말로 표현되면 그 영향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오랫동안 나의 수치스런운 모습과 상처받기 쉬운 모습을 숨기지않고 보이려 노력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대신에 많은 면에서 만족스럽거나 괜찮다고 위로했다. 그런데도 가슴 이 허전한 날에는 과거의 경험이 날 자유스럽게 놔주지 않고 아프게 한다. 

 

나에 대한 용서가 아직 안 되었나. 용서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에 중점을 두고 과거를 보내버리는 거’라고 많은 자기계발 책(SelfHelp Books)의 지은이들이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책의 내용과 다르고, 좋은 가르침은 적용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는 과거로부터 숨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가끔가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좀 더 관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하였으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라고 상상해 본다. ‘세상을 지금보다 더 관대하게 보거나 남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했겠지’라며 혼자서 결론을 낸다. 

 

비가 올때의 적막감을 피하기 위해 바쁘게 행동하는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하는게 자기방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방어는 살아가는데 도움은 되나 인생의 질을 높이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자기방어에 치중하게 되면 남들을 못 믿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럴 때는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는데 주저한다. 아마도 그건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책임을 전가할 때 순간의 위로가 된다. 나이 들어서는 순간의 위로에 빠져 숨거나 피하는 모습이 조금 창피하다는 느낌도 든다. 수치심과 약점을 인정하고 자기방어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빗소리를 다시 즐기자고 다짐한다. 살다보면 그런 날이 올거라는 생각이 머리 안에서 떠나질 않는다.

 

▶ 새움터 회원 정인화는 1991년에 뉴질랜드에 이민와 스무 해 가까이 심리상 담과 심리치료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www.saewoomtor.org.nz (admin@saewoomtor.org.nz)

 

만성 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댓글 0 | 조회 344 | 1일전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와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Mount Sinai Hospital)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신장(腎… 더보기

주거침입절도(Burglary)와 강도(Robbery)

댓글 0 | 조회 256 | 3일전
안녕하세요 한국 교민 여러분, 벌써 2026년도 2월이 찾아왔습니다.오늘은 주거침입절도(Burglary)와 강도(Robbery)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더보기

보험 수리 보증은 누가 책임질까?

댓글 0 | 조회 275 | 3일전
자동차 사고 후 보험으로 수리를 진행하면 많은 운전자들은 자연스럽게 “보험으로 수리했으니, 문제가 생기면 보험사가 책임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곤 합니다.그러나… 더보기

뉴질랜드 의예과 치예과 (Biomed/Health Sci) 입학 전 꼭 알아야할 …

댓글 0 | 조회 336 | 5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Biomed/Health Sci 1학년 과정 입학 전 꼭 알아야할 점들을 체크리스트를 통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과거 칼럼에도 다뤘듯 의대 가는 길… 더보기

어휘력은 암기만으로 늘지 않는다

댓글 0 | 조회 752 | 9일전
아이들의 어휘력을 판단할 때, 우리는 대개 알고 있는 단어의 양에 집중하곤 한다. 아이들이 단어장을 외우고 뜻을 암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더보기

사랑과 우정, 그 중간쯔음 . . .

댓글 0 | 조회 325 | 2026.01.28
그 날의 여행지는 늘상 가던 온천행이 아니었다. 낯선 캠핑장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내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다. 이게 웬 호재인가?두대의 버스가 북쪽과 남쪽… 더보기

목사 가운을 버리고

댓글 0 | 조회 722 | 2026.01.28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외국에서 방문했다는 이유로전임 교회에서스웨터에 셔츠를 받쳐 입고설교를 했습니다예배를 마친 후교우들과 인사를 나눌 때목사님 오늘 패션 최고예요… 더보기

요점만 정리한 종교인 워크비자

댓글 0 | 조회 613 | 2026.01.28
뉴질랜드 이민부는 종교 관련 직무에 종사하는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는 Religious Worker Work Visa(이하 종교인 워크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21. 잠든 전사 – 테 마타 봉우리의 전설

댓글 0 | 조회 148 | 2026.01.28
Te Mata o Rongokako – 잠자는 거인의 이야기* 거인의 형상혹스베이 지역, 특히 헤이스팅스 인근에는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의 거대한 산이… 더보기

2026년 뉴질랜드 바이오메드, 헬스사이언스 입학준비

댓글 0 | 조회 497 | 2026.01.28
: 뉴질랜드를 선택하는 이유, 그리고 지금 준비해야 할 것들▲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고… 더보기

샘터와 우물가

댓글 0 | 조회 113 | 2026.01.28
시골집엔 샘이 있었다. 장독대 아래에 있는 샘에 바가지를 띄워놓고 퍼서 먹었다. 새미터(샘터)에 매끈한 돌을 놓고 찬거리를 다듬었고, 빨래도 했다. 물이 흘러가는… 더보기

이민자의 스트레스, 어디로 가는가

댓글 0 | 조회 633 | 2026.01.28
ㅣ 술, 갬블링, 과로로 흘러가는 감정들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이민자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올해는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더보기

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댓글 0 | 조회 175 | 2026.01.28
화엄사 구층암 ‘죽로야생차’“혹시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를 알아요?”차밭을 정비하러 나서는 길, 구층암 주지 덕제 스님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알 리 없다. 더욱… 더보기

장학금 그리고 의사가 꿈인 두 학생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407 | 2026.01.28
출처 : https://www.acsa-scholarship.or.kr/default/menu02/menu02_cont02.php?sub=22몇년 전까지만 하더라… 더보기

장애인 가족 돌봄자

댓글 0 | 조회 205 | 2026.01.27
가족 구성원중 항시 돌봐야 하는 장애인이 있는 경우 가족 구성원 들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장애인 가족을 돌봄으로 인한 취업기회 상실과 사회활동 포기 등 다양한 희… 더보기

바빌론의 공중정원 전설

댓글 0 | 조회 142 | 2026.01.27
ㅣ존재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환상인가“보이지 않는 세계유산”인류가 남긴 유산 가운데, 가장 유명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건축물이 있다. 고대 … 더보기

다른 길은 없다

댓글 0 | 조회 130 | 2026.01.27
시인 류 시화자기 인생의 의미를 볼 수 없다면지금 여기, 이순간, 삶의 현재 위치로 오기까지많은 빗나간 길들을 걸어왔음을 알아야 한다그리고 오랜 세월동안자신의 영… 더보기

2편 – 〈세기의 디지털 강도〉 (The Heist of Light)

댓글 0 | 조회 153 | 2026.01.27
“단 12초 만에, 79억 달러가 사라졌다.”프롤로그 - 2028년 4월 9일, 그날 12초,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소 라이트게이트(LightGate).… 더보기

향후 10년간 가장 인기 있는 직업 목록이 발표

댓글 0 | 조회 538 | 2026.01.27
이 5가지 진로는 뉴질랜드 학생들에게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미래를 제공합니다!오늘날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미래가 우리가 당시 직면했던 미래와 완전히 … 더보기

운도 실력이다 –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행운

댓글 0 | 조회 215 | 2026.01.27
골프장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목격한다. 공이 벙커를 향해 날아가다가 절묘하게 튕겨 나와 그린 위에 안착하는 순간. 동반자들은 말한다. “야, 운 좋다!” 하지만 … 더보기

‘조용한 살인자’ 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704 | 2026.01.23
지난(1월 20일)은 대한(大寒)으로 24절기(節氣) 가운데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로 ‘큰 추위’라는 뜻이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소설(小雪),… 더보기

2025년 의대 치대 수의대 38명 합격생의 공통점

댓글 0 | 조회 798 | 2026.01.22
출처 : https://www.hufs.ac.kr/hufs/11250/subview.do2025년에도 메디컬 유행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크리… 더보기

출입금지 통지서(trespass notice)

댓글 0 | 조회 687 | 2026.01.21
오늘은 출입금지 통지서(trespass notice)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방법은 상황을 민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수… 더보기

1편 – 〈황금의 망령〉 (The Phantom of Gold)

댓글 0 | 조회 292 | 2026.01.16
840톤의 금괴가 사라진 날, 세계는 새롭게 시작되었다.프롤로그 - 2011년 10월, 리비아 사막 어딘가 폭풍이 사막을 뒤덮은 밤.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 더보기

아들 신발

댓글 0 | 조회 304 | 2026.01.1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결혼해 집 떠나며남겨진 아들의 신발에아직 남아 있는향기 같은 너의 따스함너와 함께 걷던 상쾌함으로오늘도 신고 나선다튀는 걸음으로 다녔을아들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