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속에 창 문 낮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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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그림 속에 창 문 낮은 집

0 개 1,660 오소영

우리말에 노름하는 자식,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보지도 말라고 했다.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렵게 장만했던 집을 한순간에 날렸다. 마련할 때는 오랜세월 기다리며 힘들었는데 잃는 것은 잠깐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정도 병이련가.

 

고향 그리는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남편. 착하다고 봐 줄 형편을 훌쩍 넘겼다. 다 큰 아이들을 데리고 할 수 없이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해야만 했다. 용납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멋진 이층 양옥집이었다. 우리가 얻은 방 두칸은 머리를 반쯤 수그려야 드나드는 반 지하방이었다. 어둡고 답답했다. 낮은 창 문으로 잠깐 들었다 비껴가는 햇볕에도 늘 감질이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는 방 문을 여는 동시에 전등 스윗치를 눌렀다.

 

“엄마 우린 언제 다시 창 문 넓은 집에서 살게될까?”절망적인 아이의 소리가 비수가 되어 어미 가슴을 찔렀다. 그 집은 허우대만큼 대단한 주인이 살지는 않았다. 

 

네 가구가 함께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20대 새댁이 사는 이층이 가장 괜찮은 가정이었다. 첫 아기를 낳은 여자는 잡지사 기자 출신으로 인텔리였다. 새 출발하는 가정답게 살림살이가 깔끔하고 모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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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해 가끔씩 설거지도 잘 해준다는 그 집 신랑이 네 가정 남자들 가운데 백점짜리 남편이었다.

 

“애기 키우느라 애쓴다며 퇴근해 오면 업어주기도 하는걸요”

 

아랫층 주인집 며느리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듣기조차 민망한 내 귀가 간지러웠다. 그 시대에 보기드문 괴짜라고 웃음이 나왔다.(그런 남자도 있긴 있구나)

 

일층에 주인집은 여섯식구 삼대가 함께 살았다. 두 아이를 가진 30대 며느리가 50대 후반의 젊은 시부모를 모시고 있었다. 집 안은 늘 조용하고 분위기가 무거웠다. 

 

사람들의 온기가 없는 집 처럼. 아이들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간절하게 분가를 원하는 아들가족을 잡아두는 이유라는게 특별했다. 미운 남편 밥 해주기 싫은 시어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화목을 전제로하는 대가족이 아니니 늘 불만으로 편할날이 없었다. 서로가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불만의 조용함이었다.

 

볼품 좋은 그 집은 시아버지가 월남에 가서 돈 벌어보내 장만했단다.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 이후 소식이 끊겼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놀라웠다. 현지 여성과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었다. 가슴앓이로 살아온 아픈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는 시어머니었다. 월남이 패망을 했다. 남편이 돌아온다는 데 겁부터 났다. 낯선 여인이 따라올 것만 같아 반갑지도 않았다.

 

부산으로 마중을 나갔다. 묘한 감정으로 서성댔던 그 때가 영 잊어지지 않는 50대 여자. 부부는 냉기류속에서 매일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한술 뜨고나면 이웃 친정집에서 화투판을 벌이며 하루를 보냈다. 

 

가끔씩 쪼르르 우리집에 내려올 때가 있다. 뭔가 또 며느리 흉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고부가 번갈아가며 내게 불평의 하소연을 했다.

“우리 에미는 손이 커서 낭비가 심하다우”손에는 음식그릇이 들려있다. 

 

아무말 않고 갖다주면 고맙겠구만 꼭 며느리 탓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고.부간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정말 처신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조심하며 살아야했다.

 

대단한게 한가지 있다. 남편의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그 얄팍한 입에서 줄줄이 남편의 과거가 쏟아져 나올것만 같아도 어찌 그리 닫아두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존심 때문일까?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다. 

 

툭툭 털어내고 마음 편하게 살면 좋으련만 막무가내다. 죄없는 며느리에게만 고통을 나눠 갖자는 듯 괴롭히고 있으니 안타까웠다. 번듯한 집에서 잘 살아가는듯이 보이는 고부간. 그들 두 여자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참된 영혼을 잃고 헤매는 헛된 인생들. 마냥 넓은 거실문 가득한 양지로도 녹일 수 없는 얼어붙은 마음들은 언제 누가 녹일지...

 

그 분이 앉았다 돌아간 자리마저 왠지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도 분명 따뜻한 속마음이 있을텐데 내 선입견이 미웠다.

 

지하에는 재혼해 산다는 50대 부부가 방 하나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언제 들고 나는지 볼 수도 없다. 가끔씩 장에서 지나다 보면 다정하게 앉아있는게 꼭 비둘기 한쌍 같았다. 

 

그들 이야기만 나오면 윗층 두 젊은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렸다. 두사람의 결합이 아리송 하다느니. 전실딸이 찾아와서 한바탕 훼방을 놓고 갔다느니...

 

비록 별 가치없는 수다판이었지만 그들편에 편하게 끼워줘서 고마웠다. 고달픈 내 삶에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의가 아닌것은 이해했지만 일 저지른 남편과 서로 많이 서먹했다. 아이들에게는 큰 죄인같아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침침한 방에 혼자 앉아서 고독을 곱씹으며 순탄치 않은 인생을 울먹이며 살았을텐데.

 

“아줌마 빨리 올라 오세요”이층 새댁 시어머님이 다녀가셨단다. 많이 배운 며느리가 어려워서 자주 못오신다는 시어머님이시다. 손주가 보고싶어 떡을 한 솥 쪄가지고 후딱 왔다가셨다며 떡잔치가 벌어졌다. 며느리 힘들다고 먼 길을 서둘러 내려간 이 집 시어머니는 만점을 드려야 한단다. 

 

아들없어 시어머니 안될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쓴 웃음이 나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평생. 인생살이 고달픈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는 진리를 그 집에 살면서 깨달았다. 아이들은 견디기 힘들었을 그 시절. 쉰살 엄마는 진지하게 인생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 이후 30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후미진 고비가 수도없이 있었다. 그 때마다 일찍이 보아온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억하며 내 삶을 추스를수 있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의 참뜻을 인생 80에야 깨닫는다. 매를 맞아도 일찍 맞는게 났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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