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李仲燮)과 소(牛)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이중섭(李仲燮)과 소(牛)

0 개 1,997 박명윤

 ea5dcf501108b5f9d3df042393523e5a_1476158674_96.jpg

  

올해는 이중섭 화백(畵伯)의 탄생(誕生) 100주년, 작고(作故)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중섭은 1956 9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향년 40세에 생을 마감했다. 마흔밖에 안 되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은 조현병, 거식증, 간염 등으로 투병을 하다가 끝내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무연고자(無緣故者) 취급을 받았다.

 

이중섭 화백이 세상을 떠나고 60년 후 기일(忌日) 9 6일에 제주도 서귀포에서 ‘이중섭 추모 세미나’가 서귀포시와 조선일보사 공동 주최로 KAL호텔에서 개최되었으며,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이중섭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길 떠나는 가족> 시연회에 앞서 무대에서 제()를 올렸다.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이 소()가 끄는 달구지를 몰고 아내와 두 아들이 타고 가는 장면을 종이에 그린 25.7x10.5cm 크기의 유채화(油彩畵).

 

‘길 떠나는 가족’은 1991년에 초연(初演)된 작품으로 이중섭의 그림을 배우들이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등 새로운 기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규모가 큰 작품이라 지금까지 많이 공연되지 못한 전설적인 작품이며, 지난 3월 콜롬비아공연에서는 전회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연극은 이중섭 화백의 장례일인 10일에 개막하여 25일까지 계속된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100th Anniversary of Korean Modern Master, Lee Jung Seob) 전시회가 국내 미술 전시 사상 대기록으로 한국작가 개인전 첫 20만 명을 돌파하여 이중섭의 명성을 입증했다. 지난 6 3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일 918일 총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했다.

 

필자도 아내와 막내딸(꽃그림 화가)과 함께 덕수궁을 찾아 이중섭 개인전을 관람하면서 그의 파란 많은 생애를 회상했다. ‘이중섭展’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최고의 인기 전시였으며, 연휴 닷새 동안만 관람객 2만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대개 전시회의 블록버스터(blockbuster)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관람객 수가 10만 명이므로 이중섭전은 두 배를 넘겨 미술 전시의 새 역사를 썼다. 서울 전시는 10 3일에 막을 내리고 이중섭이 625전쟁 때 피난 생활을 했던 부산에서 <이중섭, 백년의 신화> 10 20일부터 내년 2 26일까지 이어진다.

 

‘이중섭展’이 열린 덕수궁(德壽宮, Deoksugung Palace)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지만 1907년 고종(高宗)이 순종(純宗, 조선 제27대 왕, 재위 1907-1910)에게 양위(讓位)를 한 뒤 이 곳에 살자 고종의 장수(長壽)를 빈다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개칭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전(石造殿)은 조선 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궁궐 건물이며, 영국인 하딩(G.R. Harding)이 유럽의 궁전 양식을 모방하여 설계한 3층 석조건물이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에 완공되었으며, 그 앞에 서양식 연못과 분수가 조성됐다.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 주운면 송천리의 부농(富農)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세 때 아버지(長水 李氏 李熙周)가 별세하였으며, 이 무렵부터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중섭은 평양농공은행장 및 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외조부 李鎭泰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다.

 

이중섭이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 일제(日帝)의 한글말살정책에 반발하여 한글자모(字母)로 회화적 콤퍼지션(composition)을 많이 그렸으며,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작품에 풀어쓰기 한글(ㅈㅜoㅅㅓㅂ) 외에 영문이나 다른 글로 서명을 한 일이 전혀 없다.

 

이중섭은 1934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동경 帝國美術學校에서 1년을 수학한 후 文化學院 美術科에 입학했다. 이중섭은 예의 한지에 먹물을 칠하고 긁어낸 그림은 하나하나가 벽화를 연상시키는 역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중섭은 미술해부학에 열중하고 인체와 동물의 골격(骨格) 습작을 되풀이 했다.

 

문화학원 졸업 후 이중섭은 동경에 계속 체류하면서 1940년 일본화단의 새로운 미술운동의 추진체였던 미술창작가협회 주최 제4회전에 유화 <소와 소녀>와 연필화 소품 <불상>을 출품하여 상을 받았다. 1942 4월에 제6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소와 어린이>를 출품했다. 그리고 5월에는 서울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2회 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45 5월에 일본 문화학원 후배이며 전일본창고주식회사 사장의 딸인 야마모도 마사꼬(山本方子)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신 현해탄을 넘어 원산에 와서 이중섭과 결혼했다. 결혼 후 아내에게 한국이름 이남덕(李南德)을 지어주었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했으나 그림 제작에 지장이 있다며 곧 사직한 후 집에서 닭을 기르면서 닭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1946년 첫 아들이 태어났으나 디프테리아(diphtheria)로 사망했으며, 이듬해 둘째 아들(泰賢)이 태어났다. 평양에서 815기념 전람회에 출품했으며, 모스크바에서 온 소련 평론가로부터 이중섭은 구라파의 어떤 대가들에게 비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화가라고 평했다. 원산 신미술가협회가 결성되고 회장으로 선출됐다. 1949년에 셋째 아들(泰成)이 태어났다.

 

1950 625전쟁이 터진 후 12 6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UN군이 후퇴할 때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부산에서 한때 부두노동을 했다. 1951 1월 가족을 데리고 제주도 서귀포로 갔으며, 먼저 와있던 조카를 만나 이웃에서 지냈다. 피난민에게 주는 배급과 고구마로 연명하였으며, 해변에서 작은 ‘게’를 수없이 잡아 반찬으로 먹었다. 이중섭은 게에게 미안하여 게를 그린다고 말했다. 12월에 가족을 데리고 다시 부산으로 가서 판잣집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1952 2월 국방부정훈국(政訓局) 종군화가단에 입단했으며, 담뱃갑 안에 있는 은지(銀紙)에 그림을 새겨 넣은 은지화(銀紙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참담한 생활고로 영양실조가 된 자식들을 위해 이중섭 아내는 두 아들과 함께 부산의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제3차 일본인 송환선으로 동경 친정으로 건너갔다. 이중섭은 시인 구상(具常)의 도움으로 선원증(船員證)을 얻어 동경으로 건너가 그리던 아내와 아들을 만났으나 2주 만에 돌아왔다.

 

동경을 다녀와서 경남 통영으로 거처를 옮겨 제작에 몰두했다. <황소>는 당시의 작품이다. 1955 1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유화 41, 연필화 1, 은지화를 포함한 소묘(素描) 10여점을 출품하여 개인전을 열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림도 반 이상 팔렸으나 판매대금 수금이 여의치 않고 날마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거절 못해 저녁마다 함께 술판을 벌려 결국 빈 털털이가 됐다.   

 

이에 이중섭은 극도로 의기 쇠진하여 초조와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면서 원망과 자학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서울 전시회에서 남은 작품을 가지고 구상의 권유로 大邱로 갔으나 이미 절망감에 젖어 무언의 항거(抗拒)를 시작했다. 5월에 미국공보원(USIS)에서 전시회를 개최했으나 영양실조와 극도로 쇠약하여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 調絃病, schizophrenia)을 일으켜서 성가병원에 7월 한 달 동안 입원했다. 8월말에 서울로 와서 종군화가단이란 명목으로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했다.

 

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肝炎, hepatitis)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음식섭취를 거부하는 거식증(拒食症, 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이 생겼다.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나 정신이상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간염 치료를 위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9 6일 병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이 홀로 숨을 거두었다. 나이 만 40세였다.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3일간이나 시체실에 방치되었다가 뒤늦게 친지들이 모여들어 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 후 奉元寺에 안치했다가 후에 忘憂里에서 장례를 거행했다.

 

이중섭은 원산여자사범학교 미술교사 2주 근무가 취직의 전부였으나,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의 전부였다. 그는 재료에 구애됨이 없이 발상이 일어나면 주변에 있는 아무 것이나 사용했다. 이에 그의 작품 중 캔버스에다 유화로 그린 것 보다 종이, 시험지, 심지어 합판(合板) 등에 그린 것이 더 많다.

 

물론 빈곤 때문에 일어난 결과로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지만, 담뱃갑의 은지에다 그린 작품은 미술재료의 확대라고 해서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유화, 수채화, 크로키, 데생, 에스키스 등 약 200, 은지화(銀紙畵) 300점을 남겼다. 이중섭의 만년의 작품, 특히 은지화의 ‘모티브’는 거의가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에 꽉 차 있다.

 

필자는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소()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아래 글은 1951년 봄 625전쟁 때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가서 생활했던 제주도 서귀포의 이중섭의 방벽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대향”

 

이중섭은 풀밭에 매어놓은 소()를 하루 종일 관찰하다 소 주인으로부터 ‘소도둑’으로 경찰서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자세하게 관찰한 소를 화폭에 담아 <> <황소> <흰 소> <소 두 마리> <싸우는 소> <소와 소녀> <소와 어린이> <길 떠나는 가족>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37년 자유미전(自由美展)에서 최고상인 ‘태양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그의 작품 경향은 민족적인 의지력이 강력하게 노출된 <>의 연작(連作)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중섭이 서른여덟에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모처럼 창조적 예술 혼()을 불태웠으며, 그때(1953-54) 이중섭의 예술 의지를 보여준 작품이 붉은빛 황혼에 울부짖는 검은 눈망울의 <황소> 그림 두 점이다. 이 두 작품은 이중섭의 자화상(自畵像)으로 간주할 수 있다.

 

‘소’ 그림에 얽힌 일화도 있다. 1955년 이중섭이 대구 미국공보원(USIS)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데 소 그림이 많았다. 전시회를 관람하던 아서 맥타가트(Arthur McTaggart) 박사가 무심결에 “참 스페인의 투우(鬪牛)만큼 힘이 차군요”라고 했더니 곁에 있던 이중섭이 이 말을 듣고 전시장 벽에 걸린 소 그림 몇 점을 떼어내 팽개치면서 “이건 스페인 소가 아니고 한국의 ‘소’란 말이요”라고 소리치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맥타가트 박사는 대구 미국공보원장을 역임한 후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1976-97)로 재직했다.

 

맥타가트 박사는 이중섭이 위대한 화가라는 것을 맨 먼저 알아본 서양인이었다. 그는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 석 점을 구입하여 ‘모마(MoM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에 기증했다. 1929년 근대 예술을 미국에 보급할 목적으로 설립된 MoMA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이중섭의 은지화를 “예술성뿐 아니라 소재 사용과 작가의 창의성으로 봐서도 실로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금번 이중섭 전시회를 위해 MoMA에서 소장하고 있는 은지화들이 바다를 건너 서울에 왔다.

 

정부는 고 이중섭  화백에게 문화훈장(文化勳章) 1958 10 20일에 추서(追敍)했다. 이중섭의 아내는 지난 2012년 제주도 서귀포 옛집을 방문하여 옛날을 회상하면서 고인의 사진을 보고 “왜 그렇게 일찍 갔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李南德 여사는 95세이다.

 

이중섭은 화가로 화려한 삶을 누리지 못했지만 사후(死後)에 ‘서양회화의 기초 위에 동양의 미학을 실현시킨 화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개인 소장가는 물론 미국 현대미술관 등 60여 곳에 흩어져 소장되고 있는 작품 200여점과 그와 관련된 100여점이 모였다. 전시회를 통해 ‘정직한 화공(畵工)’ ‘대한 민족의 국민화가’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아버지’ 이중섭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나홀로族의 혼밥

댓글 0 | 조회 2,039 | 2017.01.10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朴槿惠, 1952년 대구에서 출생) 대통령은 공식 만찬행사가 없을 때는 청와대 대통령 관저(官邸)에서 혼자 TV를 시청하면서 저녁… 더보기

WHO 우울증(憂鬱症) 캠패인

댓글 0 | 조회 2,026 | 2017.04.26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기존의 국제공중위생사무소(Office of Internation… 더보기

근육감소증(Sarcopenia)

댓글 0 | 조회 2,005 | 2020.09.19
여름 휴가철 해수욕장에서 또는 수영장에서 단단한 몸매를 자랑하기 위하여 7-8월에 헬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헬스장이 … 더보기

햄버거(hamburger) 이야기

댓글 0 | 조회 2,005 | 2016.09.14
쓰레기라는 뜻의 영어 단어 ‘정크(junk)’가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결합되어 ‘정크푸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햄버거는 정크푸드(junk food… 더보기
Now

현재 이중섭(李仲燮)과 소(牛)

댓글 0 | 조회 1,998 | 2016.10.11
올해는 이중섭 화백(畵伯)의 탄생(誕生) 100주년, 작고(作故)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더보기

냉면의 계절

댓글 0 | 조회 1,994 | 2020.07.08
무더운 여름철에 떨어진 입맛을 끌어 올려주는 음식으로 우리는 냉면(冷麵)을 꼽는다. 필자도 여름이 되면 시원한 냉면을 즐겨 먹는다. 냉면은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더보기

인구감소 그리고 인구절벽

댓글 0 | 조회 1,988 | 2023.01.27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대응 예산을 편성해 16년간 28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出産率)은 더 떨어졌… 더보기

골다공증(骨多孔症)

댓글 0 | 조회 1,979 | 2016.11.08
10월 20일은 ‘세계 골다공증(骨多孔症)의 날’이다. 세계 골다공증의 날(World Osteoporosis Day, WOD)은 국제골다공증재단(Internati… 더보기

삼복(三伏)더위와 여름 보양식(補陽食)

댓글 0 | 조회 1,977 | 2016.08.09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初伏)을 맞아 교회(연세대학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삼계탕(蔘鷄湯)을 먹기로 했다. 교회 인근 연희동 한방 삼계탕집과 모… 더보기

만성 코로나19 증후군

댓글 0 | 조회 1,969 | 2023.01.0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에서 회복한 후 코로나 후유증(long covid)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더보기

치매와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

댓글 0 | 조회 1,964 | 2016.07.27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1위는 치매이며, 2위 뇌졸중(腦卒中), 3위 암(癌)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 모두 이들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에 … 더보기

반려(伴侶)동물

댓글 0 | 조회 1,962 | 2017.11.04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인구가 약 1000만 명에 이르고 있어 반려동물에 대한 친근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보기

장수(長壽)를 즐기는 일

댓글 0 | 조회 1,959 | 2018.01.13
<장수를 즐긴다>는 우강(又岡) 권이혁(權彛赫) 박사님의 열세번째 에세이집 제목이다. 필자는 현재 건강한 장수를 누리면서 활동을 하시는 분으로 권이혁 … 더보기

행복한 삶과 죽음

댓글 0 | 조회 1,956 | 2017.11.18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최대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기를 싫어하고 더욱이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더보기

남아도는 ‘쌀’ 해결

댓글 0 | 조회 1,956 | 2023.04.21
요즘 ‘천원의 아침밥’이 이슈다. 천원의 아침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학생들의 아침밥 먹는 문화를 확산하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 더보기

K팝 가수의 죽음

댓글 0 | 조회 1,954 | 2018.03.10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본명 김종현ㆍ27)은 지난해 12월 18일에 서울 청담동의 한 레지던스(Residence)에 찾아와 2박을 예약했으나, 오후 … 더보기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댓글 0 | 조회 1,922 | 2022.08.06
고혈압(高血壓)은 ‘소리 없는 죽음의 악마’ ‘침묵의 살인자’라고 할 정도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결과 전 세계 사망에 대한 … 더보기

조현병(調絃病)

댓글 0 | 조회 1,916 | 2019.05.11
최근 조현병 환자에 의해 발생한 ‘묻지마 범죄’로 인하여 조현병에 관심이 높아 지고 있다.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 주공아파트의 방화ㆍ살인 사건으로 … 더보기

급성심근경색

댓글 0 | 조회 1,900 | 2020.11.07
필자는 6년 전인 2014년 <靑松 건강칼럼>에 삼성 이건희 회장의 급성심근경색에 관하여 집필한 바 있다. 칼럼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더보기

코로나시대 뉴노멀 바캉스

댓글 0 | 조회 1,886 | 2020.08.08
필자는 여름 바캉스 시즌이 되면 매년 즐겨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7월 말경에는 한국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 of Korea)이 주최하는 Summe… 더보기

감기, 독감, 비염

댓글 0 | 조회 1,878 | 2018.11.10
독감 예방접종 시기가 돌아왔기에 필자는 몇 일전에 동내 내과의원에서 무료로 맞았다. ‘어르신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지원사업’에 의하여 지정 의료기관 및 보건소에서 … 더보기

궤양성 대장염(潰瘍性大腸炎)

댓글 0 | 조회 1,852 | 2020.10.05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8월 28일 지병(持病)인 궤양성 대장염(潰瘍性大腸炎)이 재발하여 건강이 악화됐다며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집권 … 더보기

비말전파와 공기전파

댓글 0 | 조회 1,846 | 2020.07.25
‘비말 전파’란 5㎛(마이크로미터) 이상의 침방울(비말)로 인한 전파를 말하며, 전염 경로는 감염자가 기침 또는 재채기할 때 나오는 침방울에 바이러스가 묻어 1-… 더보기

폭염, 열대야 그리고 불면증(不眠症)

댓글 0 | 조회 1,836 | 2016.08.25
39.5도! 더워도 너무 덥다! 체온(體溫)보다 3도 높은 올해 낮 최고 기온이 8월 11일 경상북도 경산에서 기록되었다. 또한 지난 2008년 ‘폭염특보(暴炎特… 더보기

김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34 | 2017.12.02
“김치를 먹다 하도 매워 나도 모르게 물! 하고 소리 지를 때/ 약속이나 한 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가 물 가져오려고 한꺼번에 일어날 때” 서정홍 농부시인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