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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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이 있는 집

0 개 3,125 오소영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아예 굴뚝이 없다. 굴뚝이 있는 옛날 집들도 이젠 연기가 나질 않는다.

 

내가 처음 왔을 때 만해도 티티랑이 동네 어귀엔 나무 타는 냄새가 야릇한 향수 같은 걸 느끼게 했다. 해 질 무렵 길에 나서면 이 집 저 집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뿌우옇게 하늘을 덮었다.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너무 낯설어 과연 내가 먼 이국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시골도 아닌 도회지 양옥집에서 내뿜는 연기는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도 벽난로가 있었다. 한 지붕에 두 가족, 세 식구가 함께 살던 집이다. 취사는 전기로 하지만 실내 보온은 벽난로에 의존해야 했다. 땔감을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 나무를 베어내고 거두지 못해 버린 찌꺼기 토막들. 물을 먹어 무거운 생나무를 어디선가 잘도 끌고 오는 억척스러운 여자. 그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러운 재미로 떠오른다.

 

작은 거실에 미용실을 차린 그 여자는 손님들을 참 잘 어우르는 수단이 있었다. 난로 위에서 항상 끓고 있는 물은 파마를 말고 으스스한 몸을 따뜻이 해주는 커피물이었다. 그 한 잔 커피의 효력이 대단했다. 그뿐인가? 점심땐 국수도 끓여주고 감자도 삶아냈다. 배 부르고 등 따뜻하니 여자들의 끝없는 수다판이 벌어진다. 

 

그 중엔 항상 우스갯소리 잘하는 사람이 있어 끊임없이 여자들을 웃긴다. 호호호, 깔깔깔…. 웃음소리에 숨이 넘어간다. 춤도 잘 추는 그녀가 머리에 책을 얹고 꼿꼿이 스텝 연습도 시킨다. 그러니 여자들만의 집은 조용할 날이 없다. 날마다 잔칫집처럼 시끌벅적이다. 그 여자의 손님 다루는 솜씨가 축축한 겨울이어서 더 빛을 발한다. 온기가 가득 찬 방에서 누구 눈치를 볼 일 없으니 여인들이 파마를 핑계 삼아 그 집으로 몰려드는 것인지?

 

혼자 있는 내 방은 그들 때문에 더 추워져만 간다. 웅크려 앉아서 책이라도 보려고 노력하지만 온통 밖으로 신경이 모여 집중이 될 리 없다. 국수를 삶았다고 부르고, 또 감자를 먹으러 나오란다. 늙은 게 무슨 죄라고 젊은이들 노는 틈에 끼기가 민망스럽다. 즐겁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음을 흔드는데 많이도 참고 있었다.

 

주섬주섬 뜨게질거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 난로 곁에 쭈그려 앉는다. 진작에 나와서 언 몸을 녹이고 싶었다. 같이 놀고도 싶었다. 아궁이에 나무토막을 듬뿍 집어넣는다. 마치 그 일을 맡으러 나온 사람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몸이 무너져내리듯 느슨해진다. 그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금방 분위기가 달라지고 판이 깨졌다. 그걸 알기에 조심을 하려고 추워도 혼자 견디며 있었다. 나도 같이 놀아줄 수 있는데 아쉽고 미안한 일이다.

 

저녁이 되고 여자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난로에 나무 넣는 일도 끝이 난다. 나는 그 시간이 제일 좋다. 술에 취한 것처럼 빠알개진 볼을 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신나게 읽는다. 

 

“할머니, 우리 고기 구워 먹어요.” 

 

방해꾼이 나타날 때까지다. 벌겋게 숯불로 남은 불을 앞으로 끌어내고 벽돌 두 장만 양쪽에 놓으면 그게 바로 화덕이다. 거기 석쇠를 걸치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바닷가에서 구워 먹는 마치 그런 기분에 빠진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내가 좋아하는 박인희의 노래가 절로 입속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집시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나는 건 왜인지 모른다. 그냥 어디선가 바닷물 철썩거리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오는것 같아서다. 

 

“와인 한잔 어떠셔요?”

 

내 앞엔 빛깔 고운 유리잔이 달콤한 향기로 벌써 유혹을 해오고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아무 때나 맛볼 수 있는 와인의 나라에 살고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잿불에 감자나 고구마를 묻었다가 긴긴 겨울밤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그런 게 재미있는 벽난로의 매력이었다. 

 

아마 저택의 벽난로라면 어림도 없을 일들이다. 언제나 평범한 서민들에겐 선물처럼 재밌는 일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

 

그래서 사람 사는 일들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 누구라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겠지. 젊은이들이 즐기고 떠난 자리에 이젠 내가 주인이다. 레드 와인 곁들인 숯불 고기가 너무나 맛있다. 고기가 익기도 전에 냄새를 맡고 달겨든 파리처럼 젓가락 들고 제일 먼저 나타나 설치던 세 식구 가운데 막둥이. 철없던 그 아이는 지금 의젓한 대학생이 되었단다. 

 

이제 벽난로의 시대는 완전히 가 버렸다. 옛날이야기로 남아 그때를 추억하게 한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버릇처럼 굴뚝을 쳐다본다. 연기가 날 리 없는 무용지물의 깨끗한 굴뚝으로 여전하다. 우리 동네는 오래된 옛날 동네여서 집집이 굴뚝이 솟아 있다. 제 용도를 잃고 TV 안테나가 기대 있다. 

 

벽난로의 향수는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아 있는 걸까? 가끔 전기 벽난로가 있는 카페를 만난다.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고 속았는데 이젠 다 알아버렸다. 기분으로 느끼게 되는 온기이지만 분위기라도 즐기면 그만이다. 

 

등산하고 내려올 때 저 아래 산밑 초가지붕 가느다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하얀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나오자마자 흩어지는 연기를 보면서 하산길을 재촉했다. 시골집 구수한 된장찌개 저녁상이 기다려 주는 것만 같아 갑자기 발길이 바빠졌다. 잎새를 다 떨군 빠알간 감이 나무에 꽃같이 매달렸다. 하얀 연기가 감 사이 사이를 휘돌아 멋지게 무늬를 만들며 그림을 그려나간다. 자연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하산길은 더욱 쉽기만 했다. 그런 풍경 속으로 다시 한 번 푹 빠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굴뚝을 타고 들어온다는 산타 할아버지의 신화도 이젠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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