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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흔이 넘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그럴 때 과거는 잊어버려야 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다시 바닥부터, 초보라는 자세로 일 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직장 다니다가 다 그만두고 드라마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자가용 타고 다니다가 전철 타고 다니고, 복장도 정장만 하다가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저보다 열 살 아래인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전시회나 연극 보러 다녔습니다. 나중에 희곡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하나도 부러울 것 없는 분이 왜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나 하고 참 의아했다고. 그때 같이 공부한 동기 중에서 제가 제일 먼저 데뷔를 했는데, 그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전에 알던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하는 거죠. 깜짝 놀라면서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됐나’ 그래요. 전에는 제가 정장만 입고 다니고 상당히 격식 차리고 그랬거든요.
어떤 분은 아깝지 않느냐고 그래요. 많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아깝지 않느냐고. 제가 그랬죠. ‘아깝긴 뭐가 아까워요? 썩어지는 몸뚱이가 아까워요? 뭐가 아까워요?’ 그랬더니 그 말에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서 굉장히 실망을 하더군요. 언젠가는 당신이 세상을 놀라게 할 줄 알았다면서, 돌았나 이렇게까지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까울 게 없었거든요. 저 같은 사람을 좀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중도를 가야 하기 때문에 높은 사람 사정, 낮은 사람 사정, 위아래, 좌우 사람 사정을 다 알아야 됩니다. 상황을 바꿔봐야 그 사람의 심정을 알고 사정을 아는 겁니다.
항상 고정된 역할만 수행한다면 중도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상황을 뒤집어 볼 수 있어야만 원만한 사람이 됩니다. 나는 죽어도 누구 밑에서는 일 못 하겠다든가, 누구하고는 같이 못 하겠다든가 그런 것이 없어야 합니다. 어제까지 사장이었다 해도 오늘 직원으로 일할 수 있어야 되죠. 사장이면 어제 사장이지 오늘도 사장인가요?
그리고 사장이나 회장을 오래 하면 그 분들을 모아서 고문단을 조직하는 회사가 있죠. 그렇게 되면 벌써 그 조직은 죽은 조직이 되는 겁니다.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못 합니까? 저도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뭐가 부끄러워요? 부끄럽고 그런 게 없어야 합니다.
엄청 강한 생활력은 축복입니다. 언제라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이면 두렵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없을 때 두려운 것입니다. 있는 돈 다 쓰면 또 드라마를 쓰든 해서 벌면 되지. 금방 또 벌 수 있습니다. 꼭 고급 일만 해야 벌 수 있나요? 그냥 뭐든지 해서 벌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못 하느냐 하면 체면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거 가리다 보니까 못 하는 것입니다. 낮아진다는 거는 그렇게 아무거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느 순간 낮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높아지면 한없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낮아지기만 하면 무능하지만 또 한없이 높아질 수 있으니까, 왔다갔다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유능합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카페를 하고 싶다고 그랬는데요. 카페를 왜 못 해요? 잘 합니다. 카페마담이면 철저하게 마담이 되는 겁니다. 명상 선생이면 철저하게 선생이 되는 거고. 언제든지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고 자신도 있고, 그러니까 두려운 게 없습니다. 그냥 지금 이걸 선택했을 뿐입니다.
오늘 당장 그만두더라도 뭐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여차하면 할 수 있는 것 한가지씩은 만들어 놓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