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0 개 1,769 오소영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걸을때 말고는 발 모시는(?) 일이 눈물겹다.

 

얼마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때아닌 복더위가 찾아와 지금 한창 더위와 싸우느라 지치는데 거기는 어떠셔?  춥지요” 가을도 없이 성큼 달겨든 갑작스런 추위에 어깨가 아프게 웅크리고 앉았던 날이었다.  

 

“점도 잘치슈 난로앞에 앉았어도 발이 시려 죽겠구먼” 어린애 응석부리듯 징징대는 내게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해 오는게 아닌가.

 

“좋은거 있으니 너무 걱정마셔. 내가 사 보내 드릴께요” 성질 급한 친구 메모 찾아보기도 귀찮다며 빨리 주소 카톡으로 보내란다.   

 

주소 보낸지 정확히 나흘밖에 안됐는데 현관밖에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포상자가 있었다. 새까만 백 안에서 나온건 두발을 동시에 넣을수 있는 발 찜질  족욕기였다. 그것 덕분에 발시린거 잊고 산다고 자랑하면서 여기 겨울을 빨리도 알아차린 따뜻한 배려였다.

 

항상 나를 마음속에 품고사는 그를 내가 잘 안다. 미용실에 갔다가 미용사가 쓰는 걸 보고 반가워 자기도 얼른 사서 써보니 과연 좋더란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기관처럼 챙기는 그 친구가 늘 고맙다. 옥돌매트의 원리 그대로 돌바닥에 발을 얹고 앉았으니 은근히 따뜻함이 전해져 하체가 훈훈해지는 것이다. 올 겨울은 추위로  큰 고생은 안할 것 같아 여간 다행스런게 아니다. 히터를 켜서 훈훈함 속에 있어도 아랫도리가 싸늘하게 식어오는 여기 집들. 옷을 몇겹씩 껴입어도 품속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느끼는건 나이탓일까? 살집 없는 내 체질 때문에 더한것 같기도하다.

 

온돌방 이불속에 발묻고 살던 그 옛날에는 눈길에 빠져오지 않으면 발시린건 모르고 살았었는데.... 밖은 축축하고 햇님도 구름속에 묻혀서 제 구실을 잊어버린날.  

 

한가롭게 발묻고 몇줄 책이라도 읽어보려고 앉았으니 나른한 쾌감 때문일까? 살며시 졸음이 먼저 온다. 게으른 낮잠에 꿈이 실려온다.

 

육남매가 아름목자리에 깔린 요밑에 발을 묻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누군가의 발에 자기 발이 닿으면 발가락 끝으로 간지럼을 태운다. “에구 간지러” 몸을 뒤척이며 자지러지는 아이가 있다. 그게 웃으워서 깔깔거리고 뒤엉키다보면 추위같은건 벌써 멀리갔다.

 

“우리 뭐하고 놀까?” 항상 장남인 오빠가 대장이다. 

 

“근데 형 나 뭐 먹고싶은데...” 동생이 딴지를 걸으면 그건 모두의 마음이기에 금방 판이 깨진다.   

“고구마 구워먹자”

 

“아냐, 난 꼬랭이 먹을래” 의견이 제각각이다. 동작 빠른 누군가가 먼저 일어나 윗목에 배부르게 서있는 포대에서 고구마를 한바가지 담아온다. 우리집에 살림밑천 첫딸로 태어난 언니가 화롯불에 고구마를 묻는다. 고구마가 익을 동안에 뿌득뿌득하게 마른 꼬랭이를 깎아서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꼬맹이 넌 재미없어 엄마한테나 가”

 

그 애 몫까지 더 먹으려는 욕심으로 어린 동생을 울린다. 꾀가 생긴 아이가 안가려고 “난 작은 언니가 좋아” 하면서 내 무릎으로 엉덩이를 디밀면 못마땅한 오빠들이 피~하면서 입을 내민다. 와작와작 씹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하다. 

 

(메세지 왔어요) 분명 동생의 목소리 같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너무 멀리 가 있다가 갑자기 21세기 현실로 돌아온다. 동생이 앉았던 무릎은 허전하고 꼬랭이를 받아쥔 손이 썰렁했다. 내 꿈을 깬 모발폰에 불이 환하다. 사람소리 허깃증에 설정해놓은 내 카톡의 전달음이었다. 잠은 깼지만 아까워서 꾸던 꿈은 계속 이어진다. 고구마가 익을 동안 꼬랭이를 깎아 손에 들려준 언니의 어른스런 지혜는 누군가가 달겨들어 난로를 먼저 점령할까봐서였다. 불화로의 위험도 막고 질서도 지키도록하는 맏이의 책임감이었다. 그런 무언의 질서속에서 우리는 티없이 잘 자랐다.  

 

김장때 밭뙈기로 배추를 사면 다 뜯을때 배추꼬랭이(잎이 파란 조선배추 뿌리)가 한가마니씩 나온다. 윗부분은 둥글지만 끝이 뾰족해서 썰것도 없이 통째로 넣고 배추국 끓이면 달작지근하고 구수해서 김장하는 날은 배추국 잔치가 벌어진다.

 

약간 질긴듯한 식감이지만 그 배추의 고소한 진맛은 지금 볼품좋은 배추맛에 비길바가 아니었다. 흙을 털고 말린 꼬랭이는 겨울밤 간식으로 깎아먹으면 고구마와 또 다른 별미로 긴긴 겨울밤을 즐겁게 해줬다. 지금 아이들은 먹을게 지천이라 그런걸 간식으로 먹었던 우리 세대와는 너무 다르다.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먹고 싶은 것 주리는 애들도 아마 없을것이다. 하지만 하찮은 그런것들을 간식으로 먹으면서도 형제들끼리의 정서가 흘러넘쳤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야기꺼리가 있고 추억도 있다. 한 이불속에서 발을 맞대고 살을 부비며 살았으니 형제자매가 끈끈한 피붙이란걸 너무도 잘 알며 커왔다. 그러기에 그리움이 무엇인지도 느끼는 인정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강물따라 멀리 멀리 흘러 가 버린 내 어렸을적 옛날 이야기다. 올겨울 난 옛날 꿈속에서 사는 날이 꽤나 많을것 같다. 그건 나쁜일이 아니니 기대도 된다.

 

친구야 정말 고마워. 발 따뜻해 좋고 어린꿈을 꾸게 해줘서 더욱 행복해.

 

겉모습이 달라도 마음은 하나

댓글 0 | 조회 1,861 | 2015.01.28
어떤 사진이든. 사진은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담은 하나하나의 영상들이기에 모두가 지나간 추억이 묻어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더욱 특색있는 인상으로 자주 드려다… 더보기

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댓글 0 | 조회 1,851 | 2015.09.23
아홉 살 어린 나이 때, 아버지께서 퇴근 해 집에 오시자마자 부르는 이름. “영아~ 저 아래 내려가서 남가네 막걸리 좀 받아오렴”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늘 남가네… 더보기

삶의 축복

댓글 0 | 조회 1,806 | 2017.03.22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 떠나신 분.반평생 긴 세월을 그리움 가슴에 싸안고홀로 외로웠던 삶.눈 감으신 고요로움이 차라리 평화로울까?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얼마… 더보기

프라하(Praha)에서 보내온 반가운 영상

댓글 0 | 조회 1,802 | 2016.04.28
예정된 하루의 일과를 별 탈 없이 마친 귀가 길은 늘 산뜻하게 마련이다. ‘하버 브릿지’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석양에 물든 고운빛 물 위에 뜬 ‘요트’들의 한가로… 더보기

숙모 시집오던 날

댓글 0 | 조회 1,777 | 2017.11.22
“어머님이 오늘 새벽에 선종하셨습니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받은 전화. 사촌동생이 알려온 숙모 님의 부음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팔십줄의 숙모 … 더보기

현재 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댓글 0 | 조회 1,770 | 2016.06.22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걸을때 말고는 발 모시는(?) 일이 눈물겹다.얼마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때아닌 복더위가 찾아와 지금… 더보기

5불 효도

댓글 0 | 조회 1,767 | 2019.05.28
이제 익숙해질만큼 살았것만. 지금이 5월 이란게 실감나질 않는다. 햇 밤도 먹었고 붉은 감도 풍성하니 가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내 느낌은 10월이 딱 맞다.바야… 더보기

할머니는 외출중

댓글 0 | 조회 1,747 | 2019.08.27
“바쁘다 바뻐...”아침 6시에 맞춰 놓은 알람이 감미로운 멜로디로 단잠을 깨운다. 발딱 일어나야 하는데 이불속이 따뜻해서 뭉그적대기가 일쑤다.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보기

코로나의 선물(?), 늦깎이 삼대(三代)의 소확행

댓글 0 | 조회 1,746 | 2022.02.22
대학 등록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온다.나이 삼십을 바라보며 직장생활 잘하던 손녀의 새로운 결심이었다. 현장 경험에서 직접 깨…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덴마크) 편

댓글 0 | 조회 1,741 | 2013.02.2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 나라가 서로 자신의 나라가 … 더보기

그녀가 떠났다

댓글 0 | 조회 1,694 | 2015.06.24
어느 날. 문득 그 집 쪽으로 시선이 멎었을 때다. 무언가 전과 다른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 정적이 감돈다고나 할까. 창마다 얌전… 더보기

그 카페

댓글 0 | 조회 1,688 | 2015.05.26
예전에는 혼자서만 쓸 수 있는 호젓한 시간이 참 많이도 아쉬었다. 이젠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데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가 없으니 사람 살아가는 이치가 그런건가… 더보기

이만큼 나이 먹어보니 . . .

댓글 0 | 조회 1,687 | 2016.11.23
젊었을땐 남만큼 가진게 많지않다고 투정을 하며 살았다.이만큼 살다보니 이젠 내려다보는 혜안이 열려 지금 있는것만 가지고도 부자임을 감사한다.주제넘은 오만과 편견으… 더보기

발 동동 4시간....

댓글 0 | 조회 1,669 | 2023.08.23
맹_꽁이 멍_청이.내가 스스로에게 붙여 마땅한 조롱이고 별명이다.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망서리다가 햇볕이 반짝 보이길래 산책 나갈 채비를 서둘… 더보기

삶의 그림 속에 창 문 낮은 집

댓글 0 | 조회 1,668 | 2017.04.26
우리말에 노름하는 자식,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보지도 말라고 했다.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렵게… 더보기

추모사

댓글 0 | 조회 1,647 | 2014.05.13
그들은 이제 겨우 열 일곱살. 싱싱한 나무에 곱게 부풀은 꽃봉오리었습니다. 하지만 그 꽃봉오리들은 활짝 피워 보지도 못한채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즐거이… 더보기

노(老)제자와 여(女)스승

댓글 0 | 조회 1,645 | 2014.06.25
잔인한 달. 사 월은 갔지만 끝없이 어둡고 답답한 오월의 나날들도 속절없이 흘러 흘러가고 있다. 상큼하게 가슴 뻥 뚫리는 그 무슨일은 없을까? 고국은 물론이지만 … 더보기

포화(砲火) 속에서 찾은 즐거운 추억

댓글 0 | 조회 1,631 | 2013.06.25
6.25전쟁. 한창 봉오리진 내 아름다운 사춘기의 꿈을 몽땅 짓밟아 놓은 어둠의 세월. 피난민으로 정처없던 혼란속에서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맞아야했던 처절한 슬… 더보기

그들의 행 불행을 사람들이...

댓글 0 | 조회 1,621 | 2013.09.25
편지함에 꽂힌 색다른 전단지를 뽑아들면서 어느분의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했다.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지였는데 새하얀 몸털에 얼굴 반쪽만 검정털로 특징도 유난스런 고… 더보기

낙엽 밟히는 그리움을 걷다

댓글 0 | 조회 1,606 | 2018.05.23
사계절이 뚜렷하진 않지만 언제 바꼈는지 바뀌는 건 틀림없다. 밤바람에 낙엽구르는 소리가 선잠을 깨운다. 아직도 여름인줄 알았는데 성큼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하… 더보기

쉼표없는 낭만이정표

댓글 0 | 조회 1,596 | 2020.07.29
‘코리아 포스트’가 지난달 6월에 창간 28번째 돌을 맞았다고 한다.늦었지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21번째로 접어든 내 필력(筆歷)도 자축을 겸한다.‘생… 더보기

땡 할비 꽃밭

댓글 0 | 조회 1,593 | 2019.11.26
할아버지 집에 며칠째 인기척이 없다. 커튼도 젖혀진채 그대로인데...아침 7시면 어김없이 쇼핑가방을 들고 집 앞을 지나시는 분이다. 늦잠으로 게으름을 좀 떨다보면… 더보기

“텔미”야! 같이놀자, 우리가 뛰거든...

댓글 0 | 조회 1,580 | 2018.11.27
“너도 날 좋아 할 줄은 몰랐었어 어쩌면 좋아 너무나 좋아...”귀가 간지럽게 민망하고 깜찍한 노래다. 가사를 가려 듣기에도 번거로운 빠른 템포는 또 어떻고...…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1,578 | 2014.12.23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서. 지나 온 나날들을 뒤돌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일년동안의 과제를 마치고, 추수를 끝낸 느긋한 농부의 마음으로 새해 맞… 더보기

추억속의 아버지 그리고 갈대와 나

댓글 0 | 조회 1,572 | 2014.09.23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설 때의 일탈감은 늘 새로워 설레이게 마련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던 고집은 어디에다 숨겨 버렸을까?.. 그 곳을 지날 때는 항상 반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