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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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0 개 2,081 오소영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걸을때 말고는 발 모시는(?) 일이 눈물겹다.

 

얼마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때아닌 복더위가 찾아와 지금 한창 더위와 싸우느라 지치는데 거기는 어떠셔?  춥지요” 가을도 없이 성큼 달겨든 갑작스런 추위에 어깨가 아프게 웅크리고 앉았던 날이었다.  

 

“점도 잘치슈 난로앞에 앉았어도 발이 시려 죽겠구먼” 어린애 응석부리듯 징징대는 내게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해 오는게 아닌가.

 

“좋은거 있으니 너무 걱정마셔. 내가 사 보내 드릴께요” 성질 급한 친구 메모 찾아보기도 귀찮다며 빨리 주소 카톡으로 보내란다.   

 

주소 보낸지 정확히 나흘밖에 안됐는데 현관밖에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포상자가 있었다. 새까만 백 안에서 나온건 두발을 동시에 넣을수 있는 발 찜질  족욕기였다. 그것 덕분에 발시린거 잊고 산다고 자랑하면서 여기 겨울을 빨리도 알아차린 따뜻한 배려였다.

 

항상 나를 마음속에 품고사는 그를 내가 잘 안다. 미용실에 갔다가 미용사가 쓰는 걸 보고 반가워 자기도 얼른 사서 써보니 과연 좋더란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기관처럼 챙기는 그 친구가 늘 고맙다. 옥돌매트의 원리 그대로 돌바닥에 발을 얹고 앉았으니 은근히 따뜻함이 전해져 하체가 훈훈해지는 것이다. 올 겨울은 추위로  큰 고생은 안할 것 같아 여간 다행스런게 아니다. 히터를 켜서 훈훈함 속에 있어도 아랫도리가 싸늘하게 식어오는 여기 집들. 옷을 몇겹씩 껴입어도 품속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느끼는건 나이탓일까? 살집 없는 내 체질 때문에 더한것 같기도하다.

 

온돌방 이불속에 발묻고 살던 그 옛날에는 눈길에 빠져오지 않으면 발시린건 모르고 살았었는데.... 밖은 축축하고 햇님도 구름속에 묻혀서 제 구실을 잊어버린날.  

 

한가롭게 발묻고 몇줄 책이라도 읽어보려고 앉았으니 나른한 쾌감 때문일까? 살며시 졸음이 먼저 온다. 게으른 낮잠에 꿈이 실려온다.

 

육남매가 아름목자리에 깔린 요밑에 발을 묻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누군가의 발에 자기 발이 닿으면 발가락 끝으로 간지럼을 태운다. “에구 간지러” 몸을 뒤척이며 자지러지는 아이가 있다. 그게 웃으워서 깔깔거리고 뒤엉키다보면 추위같은건 벌써 멀리갔다.

 

“우리 뭐하고 놀까?” 항상 장남인 오빠가 대장이다. 

 

“근데 형 나 뭐 먹고싶은데...” 동생이 딴지를 걸으면 그건 모두의 마음이기에 금방 판이 깨진다.   

“고구마 구워먹자”

 

“아냐, 난 꼬랭이 먹을래” 의견이 제각각이다. 동작 빠른 누군가가 먼저 일어나 윗목에 배부르게 서있는 포대에서 고구마를 한바가지 담아온다. 우리집에 살림밑천 첫딸로 태어난 언니가 화롯불에 고구마를 묻는다. 고구마가 익을 동안에 뿌득뿌득하게 마른 꼬랭이를 깎아서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꼬맹이 넌 재미없어 엄마한테나 가”

 

그 애 몫까지 더 먹으려는 욕심으로 어린 동생을 울린다. 꾀가 생긴 아이가 안가려고 “난 작은 언니가 좋아” 하면서 내 무릎으로 엉덩이를 디밀면 못마땅한 오빠들이 피~하면서 입을 내민다. 와작와작 씹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하다. 

 

(메세지 왔어요) 분명 동생의 목소리 같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너무 멀리 가 있다가 갑자기 21세기 현실로 돌아온다. 동생이 앉았던 무릎은 허전하고 꼬랭이를 받아쥔 손이 썰렁했다. 내 꿈을 깬 모발폰에 불이 환하다. 사람소리 허깃증에 설정해놓은 내 카톡의 전달음이었다. 잠은 깼지만 아까워서 꾸던 꿈은 계속 이어진다. 고구마가 익을 동안 꼬랭이를 깎아 손에 들려준 언니의 어른스런 지혜는 누군가가 달겨들어 난로를 먼저 점령할까봐서였다. 불화로의 위험도 막고 질서도 지키도록하는 맏이의 책임감이었다. 그런 무언의 질서속에서 우리는 티없이 잘 자랐다.  

 

김장때 밭뙈기로 배추를 사면 다 뜯을때 배추꼬랭이(잎이 파란 조선배추 뿌리)가 한가마니씩 나온다. 윗부분은 둥글지만 끝이 뾰족해서 썰것도 없이 통째로 넣고 배추국 끓이면 달작지근하고 구수해서 김장하는 날은 배추국 잔치가 벌어진다.

 

약간 질긴듯한 식감이지만 그 배추의 고소한 진맛은 지금 볼품좋은 배추맛에 비길바가 아니었다. 흙을 털고 말린 꼬랭이는 겨울밤 간식으로 깎아먹으면 고구마와 또 다른 별미로 긴긴 겨울밤을 즐겁게 해줬다. 지금 아이들은 먹을게 지천이라 그런걸 간식으로 먹었던 우리 세대와는 너무 다르다.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먹고 싶은 것 주리는 애들도 아마 없을것이다. 하지만 하찮은 그런것들을 간식으로 먹으면서도 형제들끼리의 정서가 흘러넘쳤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야기꺼리가 있고 추억도 있다. 한 이불속에서 발을 맞대고 살을 부비며 살았으니 형제자매가 끈끈한 피붙이란걸 너무도 잘 알며 커왔다. 그러기에 그리움이 무엇인지도 느끼는 인정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강물따라 멀리 멀리 흘러 가 버린 내 어렸을적 옛날 이야기다. 올겨울 난 옛날 꿈속에서 사는 날이 꽤나 많을것 같다. 그건 나쁜일이 아니니 기대도 된다.

 

친구야 정말 고마워. 발 따뜻해 좋고 어린꿈을 꾸게 해줘서 더욱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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