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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햇볕에 대한 감사가 한층 커지는 계절이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요즘의 나는 창문을 통해 들어 오는 햇볕 쬐기를 즐기고 있다. 때로는 파란 하늘을 바라 보면서 햇볕에 온 몸을 맡긴 채 누워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하지만, 내 행복을 늘려주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며칠전, 이렇게 햇볕 쬐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내 인생이 땜빵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 있었을 때, 연기자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연출자가 나를 땜빵 배우로 선택을 하여 그녀의 역할을 내가 대신했었다. 무대의 막은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도 못하고 그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엉망의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수 많은 땜빵 일들을 하게 되었다. 케이블 TV 방송국에서 소품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소품 담당자야 말로 무대세트의 온갖 땜빵 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15년 전 뉴질랜드에 와서도 내 땜빵 일은 지속적이었다. 런치 바 주방 일부터 한국 수학 교사부터 참으로 많은 땜빵 일들을 하면서 지내왔다.
한글학교에서도 내 땜빵 일들은 여전했다. 막내가 다니던 한글학교 담임 선생님이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그 자리를 내가 메꾸게 되었으며, 3년 간 휴학을 했었던 한글학교의 문을 다시 연 이후의 교장 자리 역시 땜빵으로 앉게 되었다. 교장을 하는 동안에도 땜빵 교사를 면치 못했다.
이렇게 땜빵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요즘 역시 땜빵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나가는 스시집에서 스시를 마는 일 역시 땜빵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스시 집 주인이 편안하게 잘 해주어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나를 배려해주느라 주인이 고달프다. 그런 점이 미안하여 기운도 좋고 일을 잘하는 베테랑을 만나서 주인이 좀 더 편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자신은 베테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베테랑이더라도 잠시 일하다 나가는 사람은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어도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하면서 내가 오랫동안 함께 일해주기를 바랬다.
환갑을 바라보는 건강하지도 않은 나를 고용하면서 지내려면 몸이 고생스러울텐데, 그 모든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고 나와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땜빵으로 시작하여 임기 2년을 마친 교장 직처럼 그 언젠가는 땜빵으로서의 내 소명을 마칠 날이 올 것이지만, 그때까지 그를 위한 내 소임을 다할 예정이다.
한 가지 재주로 죽으나 사나 그 길만 파면서 살아야 성공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었지만, 나는 한 가지 길만 걸어오면서 살지 못했다. 꽃꽂이 강사부터 시작해서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일들을 하면서 살아 왔기에,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땜빵 인생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연극의 소품이 중요한 것처럼 그 어떤 성공이라도 땜빵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내 땜빵으로 성공의 역사가 늘어난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던가?
나는 오늘도 땜빵을 위한 만남이 있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잠시 드레스 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쁘게 차려 입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나는 땜빵을 즐기는 것 같다. 땜빵을 할 때 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도전이 느껴지니, 이야말로 땜빵 인생의 고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은 땜빵까지도 빠지면 안 되는 완벽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 세상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다.
사랑한다, 나 자신을 그리고 완벽한 이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