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유난히도 더웠었던 짧은 여름을 보내면서 감기에 걸려 고생을 좀 했다. 한 달 내내 기침이 심한 것도 아니면서 열도 없이 시름시름 아팠었다. 화끈하게 아픈 것보다 시름시름 아픈 것이 오히려 더 겁을 먹게 하는 것 같았다.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시름시름 아프니 온갖 생각들이 다 들었었다.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이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영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갑상선과 심장 스페셜 닥터들이 나에게 “You are young.”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주 목요일, 갑상선 스페셜 닥터의 진료를 받는 날, 왜 그런 말을 두 분 모두 다 내게 했는지 여쭤 봤다. 이곳에서는 70세를 기준으로 old와 young을 구분한다고 하면서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단다.
70세라면 앞으로 살날을 15년 정도로 예상하겠지만, 내 나이라면 적어도 3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하면서 꼼꼼하게 진료를 해주셨다. 혹시나 또 폐에 물이 차서 기침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내 눈치를 알아차리셨는지, 청진기로 확인하면서 감기가 좀 오래 가는 것뿐이며 피곤한 것은 몸 안에서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궁금했었던 “you are young.”에 대한 질문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명확한 대답을 듣고 나니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감기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좀 편안하게 쉬면서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50후반의 나이를 젊은 나이로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을 새삼스레 뒤돌아보게 되었다. 늘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지.......
작년 11월 중순부터 미친 듯이 소설 집필을 하긴 했었다. 소설에 도전할 정도로 필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소설 내용이 샘솟듯이 올라왔었다. 결국 소설을 완성했지만, 무명 수필가의 처녀작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 내놓기에는 문제점이 있어서 나 혼자 소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해가 뜨기도 전부터 눈이 떠졌으며,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컴퓨터 글씨를 키워서 글을 쓰면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동안 갑상선 수치도 뚝뚝 떨어져서 네 알씩 먹었었던 약도 한 알로 줄어들고, 그렇게 신 오른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안경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기적 같은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오직 한 가지 일에 몰두한 결과였던 거 같다.
온욕의 습관도, 초저녁이면 잠들어 해 뜨기 전에 일어나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겨난 습관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몰입해본 적도 없었다. 열정에 나이가 필요 없음을 알게 된 체험이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습관들이 반대로 바뀌었으며, 새로운 꿈에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뻤었다. 하지만 소설을 출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때마침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를 검사하게 되었는데, 심장 펌프 기능이 많이 약하다니 더럭 겁이 난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몸에 용서를 구하면서 지냈었는데, 며칠 전 혈액 검사 후 갑상선 스페셜 닥터를 만나 “You are young.”의 의미를 듣고 나니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크게 느낀 체험이었다. 의사의 말 한 마디에 내가 아직 젊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얼른 감기를 이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푹 자고 푹 쉬면서 몸을 빨리 회복하여 내 남은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You are young.”이라고 내 안에서 나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나 역시 내 안에게 “We are Young.”이라고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내일이 없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꿈을 버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감기에 걸린 동안 두통 때문에 읽고 있었던 해리 포터를 손에서 놓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전이 필요하지만 재미가 새록새록 일어났다. 이제 겨우 1권의 1/4 정도 읽었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7권의 책들을 모두 다 읽을 날을 기리니 기쁨이 샘솟았다.
내 영어 발전을 위해 이 책들을 선물한 친구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매 순간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 수 있기만을 바란다.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