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기술 (Ⅲ-1) - 쓰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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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기술 (Ⅲ-1) - 쓰기의 기술

0 개 2,317 김준

간혹 필자와 상담을 하는 학부모님들이나 학생들이 ‘영어’가 약해서 과학도 잘 하지 못한다 라며 일견 억울한듯한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다. 만약 한국에서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로 문제를 읽고 답안을 적는다면 훨씬 점수가 잘 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 이기도 하는데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죄송스럽게도 ‘영어’ 실력의 부족으로 인해 ‘과학’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unlikely 하다는 쪽이다. 

 

그 분들의 이야기 대로라면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은 과학도 잘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누구나 알고 있듯 이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기본적인 영어실력 없이도 과학 점수를 많이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만약 학생의 영어실력이 극도로 부족해 문장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용어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과학뿐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과목도 바닥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일이며 영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기본 소통수단이고 어떤 수를 써서든 익숙해져야만 하는 ‘도구’이니만큼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도구’의 성능에 따라 다른 과목의 성적이 천차만별로 바뀌기는 힘들며 오히려 성능이 좋던 안 좋던 학생들이 자신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실력 탓을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일단 영어실력과 과학성적이 크게 관계가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과학과목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무언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와 일반적으로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일반명사’ ‘동사’ ‘형용사’ 들이 있다. 이런 단어들이 조합되어 문장을 이루고 이런 문장들이 때로는 Text book에 때로는 시험지의 instruction 에 등장하게 된다. 물론 때론 학생들이 직접 써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고유명사 라는 것들은 거의 라틴어나 프랑스어 쪽에서 온 것들이어서 영어권 원어민이라 하더라도 생소해 할 단어들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키위학생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니 우리 아이들이 부족한 영어실력에 의한 핸디캡을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 외의 일반 단어들 또한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어서 친숙할 뿐더러 혹 과학적 특수성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하더라도 공부하는 동안 계속 반복되어 출현하므로 짧은 시간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영어 자체가 과학 공부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자꾸만 영어 때문에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걸까?

 

문제는 영어실력 자체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기술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제로 영국 내 캠브리지 과정인 AQA과정의 문제들은 학생이 모든 문제에 완벽한 답을 제출하면 100%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Raw mark) 그 이유는 대부분 맨 마지막 문제인 에세이 문제에서 writing 기술이 좋아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한 경우 추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그게 영어 실력 아니냐고? 글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정확히 본다면 문제에서 질문하는 ‘요지’를 얼마나 잘 파악했느냐 그리고 자신의 지식을 얼마나 ‘정확’ 하고 순서에 맞춰 썼느냐에 따라 Quality가 결정되는 걸로 봐서는 흔히 생각하는 영어적 writing이 아니라 정확한 문제 파악과 정확한 지식의 표현으로 대변될 수 있는 영어 사용 ‘기술’의 문제이지 싶다. 

 

그럼 이번엔 멀리 떨어진 영국 이야기 말고 당장 뉴질랜드 교육시스템인 NCEA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아래는 NZQA site에서 복사한 Y13 물리 assessment topic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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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에 코드가 있고 bold체로 각 토픽의 이름이 적혀 있다. 

 

‘첫 번째는 글을 읽고 뭐… 그에 대한 거 쓰는 거고 둘째는 wave 니까 파동에 대한 거고…’

라고 우리 아이들은 읽는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읽으면서 요점을 파악하라고 어려서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누구도 문장 전체를 처음부터 자세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라고 배워 보지 않았다! 사실 위의 제목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세 단어, Demonstrate understanding of 이다. Of 뒤에 뭐가 오던, wave에 대한 것이든 mechanics에 대한 것이든 관계없이 NZQA에서는 학생들이 이해한 것을 (understanding)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 (Demonstrate) 평가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아무리 머리 속에 지식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그 지식을 문제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고득점은 요원하다는 말이 되고 바로 여기에서 NCEA의 고질병인 단어 하나 잘 못써서 Excellence 마크 다 받고 Fail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해 항변할 말이 없다. 이미 topic title자체가 자신의 지식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에 따라 점수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그저 계산기 두드리며 숫자만 찾아내는 것이 물리라고 배워왔고 또 그 방향으로만 가고 있으니 말이다.

 

- 3.2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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