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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2,401 박지원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클럽 앞은 손목 위의 도장을 받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힙 라인과 가슴라인을 탄탄하게 강조해주는 옷을 입은 여성 무리들이 큰 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과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고가처럼 보이는 시계들과 왁스로 딱딱하게 넘긴 머리를 한 남자들이 은밀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돈육 위에 도장을 찍듯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 오른쪽 손목 위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쿵.

쿵.

뿌연 담배연기와 술냄새와 거친 조명들을 헤치고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킥 드럼과 베이스를 강조한 사운드가 클럽 전체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 머리를 누군가가 마구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느낌이 좋았다. 흔들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여자 하나가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내게 다가와 같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저기로 가자고 했고, 나는 아무 말없이 몸을 하늘하늘 흔들거렸다. 여자가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저 큰 음악에 몸을 길게 뉘이고 싶을 뿐이었다. 즉 오늘 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약 기운은 내 몸들의 모서리를 움찔거리게 했다. 약들은, 내 몸 속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나는 내가 빛나는 알약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약을 찾으러 가만가만 헤매고 있다. 모두가 병에 걸려있는지 모른 채, 같거나 비슷한 병에 걸린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밤,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없어서, 내가, 약이 되기로 했다. 자극적인 빛의 색깔들과 그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흰 연기들. 고함소리와 함성소리, 음악의 중간중간 이따금씩 들리는 커다란 대화소리들. 결국은 모두가 약을 찾고 있었다. 결국은 모두가 약이 되고 싶어했다. 어떤 종류의 약이든 약을 찾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처방이든 약이 되고 싶어했다. 의사가 입은 하얀 가운의 소매 끝처럼 하얗게 빛나고 싶어했다. 소매 끝에서는 다채로운 채도의 음악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나는 이어 갈색 약병에서 새하얀 알약들이 벌레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는 환상을 했다. 오늘 밤은 그런 곳이었다. 벌레같은, 약같은, 약병의 폭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이었다. 새벽이었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약을 과다복용하였거나 약이 부족하다는 듯이 쓰러져있거나 비치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를 샀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가라앉은 새벽 위에 연기를 내뿜었다. 남녀가 편의점의 파란 싸구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단가라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남자는 엎드린 채 자고 있었고, 형광색 나시티를 입은 여자는 정신없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새벽의 습한 공기가 사위를 감싸돌았다. 진한 라면냄새가 담배연기와 적당히 섞여 들때쯤, 단가라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의자 아래로 넘어졌다. 제풀에 놀란 남자가 바닥에 손을 짚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면을 먹고 있던 여자가 입 속의 라면을 씹으며 한심하다는 듯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다시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던 남자는 캡슐형태의 커다란 흰색 알약이 되었다. 

캡슐형태의 알약은 연질의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것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오전 5시 34분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며 도로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는 빛나는 하얀 캡슐. 무엇을 담고 있는지, 파괴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처방전을 모를- 그런 캡슐이 도로를 위를 구르고 있었다. 

저건 파괴되어야 해!

나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잠자코 그 하얀 캡슐이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라면을 먹던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해가 뜨지 않은 파란 공기 곁을 수많은 알약들이 뒹굴고 있었다. 누구나 부서지고 싶고, 누구나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자신의 약을 주변의 상대에게 강요한다. 그것은 애정이라는 약이다. 타인에게 비춰진 자신의 파괴된 모습, 혹은 아름답게 빛나는 알약같은 모습을 보고 살아간다. 스스로 끊임없이, 스으으으으으읍, 나는 담배를 최대한 길게 흡입하고는 다시 뱉어냈다. 스스로 끊임없이, 약을 찾아내려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약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치챘다 해도 그 방법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 때. 시원스레 돌아오지 않는 소통의 난점만이 저승꽃처럼 자신 위에 피어나는 것이 두려울 때. 그것이 힘에 부치면, 그것이 삶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약을 먹고 긴 잠을 청했다. 길지는 않은 밤이었다.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수많은 약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꿈을 꾸었다. 나는 입을 한껏 벌린 채 식도 깊숙이 약들이 쌓여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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