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0 개 1,854 오소영
아홉 살 어린 나이 때, 아버지께서 퇴근 해 집에 오시자마자 부르는 이름. 

“영아~ 저 아래 내려가서 남가네 막걸리 좀 받아오렴”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늘 남가네 시원한 막걸리로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냉장고도 없던 시절. 하루종일 사업에 시달린 스트레스를 어둑한 큰 독에 서늘하게 보관된 시원한 막걸리로 풀으셨던 것 같다.

해넘이 초겨울 저녁, 겁많은 어린 아이는 골목을 갓 덮은 어둠이 무서워서 주춤거렸지만 꼼짝없이 엄마가 부엌에서 건네주는 작은 주전자를 받아들고 집을 나선다.

이 때부터 가슴이 오그라드는 겁보 어린 딸의 마음을 아버지는 모르셨을까?

키다리 전봇대에서 내리비치는 희미한 백열등 불빛에 따라 오는 그림자도 무서웠다. 교교한 골목. 잔뜩 겁에질려 웅크리고 가는 아이의 치마자락을 흔드는 짓궂은 바람에도 흠칫 흠칫 놀래고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도 소름이 돋았다.

가계들이 있는 ‘큰  우물거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웅크렸던 가슴이 조금 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대중 목욕탕처럼 커다랗게 네모진 우물벽이 마치 괴물같다. 놀이터처럼 넓은 대동 우물 주변에 김칫거리도 씻고 빨래도 하느라 늘상 시끌법석이던 낮과는 달리 적막속에 잠긴 그 우물 곁. 남가네 막걸리집 기둥에 희미하게 남포불이 흔들린다. 반가워서 한걸음에 뛰어든다. 다시는 안 나올 것처럼... 

침침한 안에서 나온 누군가에게 주전자를 맡기면 큰 독에 걸쳐진 손잡이가 긴 바가지로 휘휘 저어 찔끔 떠 담아 건네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뒤돌아보니 더 짙게 어두워진 거리. 저 곳을 어찌 또 지나가나? 작은 가슴이 쪼그라들기 시작하지만 자박자박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해 짧은 겨울. 이렇게 무서움을 타는 아이라는걸 알면 아마 오빠나 언니를 시킬 것 같은데도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느끼는 아이는 마다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새들이 둥지를 찾아드는 소릴까? 바람도 잔잔한데 갑자기 나뭇잎이 흔들린다. 이렇게 무서울 땐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귀신 이야기가 꼭 떠 오른다. 어디선가 시커먼 손이 나와 덥석 끌어 갈 것만 같은 생각에 빠른 걸음도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누가 뒤따라 오는 걸까! 걷는 발걸음을 똑 같이 따른다. 빠르면 그도 빠르게 천천히 걸어보면 천천히... 누군가가 놀리나싶어 돌아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바짝 긴장해서 빠른 걸음을 옮기는데 어쩌면 그리도 발걸음이 똑 같은지.... (어떡해 ...어떡해...) 까무라칠듯 혼미해져 오는 정신으로 엉겁결에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뛰기 시작했다.   

“엄마아~~” 대문을 박차고 대청마루까지 한 걸음에 뛰어 올라 그냥 동그라졌다.

“얘가 왜 이래?” 놀래서 뛰어나온 식구들 “응? 근데 이게 뭐냐?”  

엄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셨다. 한바탕 집안에 웃음보가 터졌다.

가슴이 짓눌려 금방 죽을 것만 같은데 웃는 식구들이 미웠다.

“연 줄이 애 발에 얽혔네”

전깃줄에 걸렸던 연(鳶)이 바람에 떨어져 딩굴다가 하필이면 겁쟁이 아이의 발에 감기다니...

그 날 이후. 이젠 그만 두라고 하시길 바랬는데 그 다음부터는 오빠와 동행을 시킨 아버지. 

세살 위인 오빠에게 쥐어박히기도 하고 싸움도 곧잘 했는데 밤 심부름엔 손을 꼬옥 잡고 그리 믿어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짖꿎어 밉던 오빠가 너무나 정겹고 따뜻해 졌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방법으로 자녀들을 훈육하셨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마 그 때부터 였을거다. 오빠를 믿고 따르면서 결혼 할 때까지 연인처럼 붙어다녔던 남다른 특별한 남매가 되었던 것이... 

너무도 여리고 겁보인 어린 딸에게 험한 세상 잘 살아가도록 담력도 키워 주셨고 남매간의 우애로 가족간의 확실한 개념을 일깨워주신 아버지. 그 때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철이 들고서야 알게되었다.

이제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는 싯점에 서 있다.   

어려운 일, 두려운 일, 참 많이도 경험하며 살아온 긴 인생길. 절망의 늪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온 것도 어렸을 적 아버지의 조용한 훈육의 힘이었을 것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던가.

하지만 어둔 밤길만은 지금도 두렵다. 이제 옆에 동행 해 줄 오빠는 물론. 한때 지킴이가 돼주던 남편. 그 다음 자식들. 모두가 떠나고 없다. 겁도없이 너무 먼 길을 와 버렸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일까? 늙으면 애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보다.

낙엽 밟히는 그리움을 걷다

댓글 0 | 조회 1,614 | 2018.05.23
사계절이 뚜렷하진 않지만 언제 바꼈는지 바뀌는 건 틀림없다. 밤바람에 낙엽구르는 소리가 선잠을 깨운다. 아직도 여름인줄 알았는데 성큼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하… 더보기

그들의 행 불행을 사람들이...

댓글 0 | 조회 1,624 | 2013.09.25
편지함에 꽂힌 색다른 전단지를 뽑아들면서 어느분의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했다.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지였는데 새하얀 몸털에 얼굴 반쪽만 검정털로 특징도 유난스런 고… 더보기

포화(砲火) 속에서 찾은 즐거운 추억

댓글 0 | 조회 1,637 | 2013.06.25
6.25전쟁. 한창 봉오리진 내 아름다운 사춘기의 꿈을 몽땅 짓밟아 놓은 어둠의 세월. 피난민으로 정처없던 혼란속에서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맞아야했던 처절한 슬… 더보기

노(老)제자와 여(女)스승

댓글 0 | 조회 1,647 | 2014.06.25
잔인한 달. 사 월은 갔지만 끝없이 어둡고 답답한 오월의 나날들도 속절없이 흘러 흘러가고 있다. 상큼하게 가슴 뻥 뚫리는 그 무슨일은 없을까? 고국은 물론이지만 … 더보기

추모사

댓글 0 | 조회 1,653 | 2014.05.13
그들은 이제 겨우 열 일곱살. 싱싱한 나무에 곱게 부풀은 꽃봉오리었습니다. 하지만 그 꽃봉오리들은 활짝 피워 보지도 못한채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즐거이… 더보기

삶의 그림 속에 창 문 낮은 집

댓글 0 | 조회 1,673 | 2017.04.26
우리말에 노름하는 자식,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보지도 말라고 했다.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렵게… 더보기

발 동동 4시간....

댓글 0 | 조회 1,677 | 2023.08.23
맹_꽁이 멍_청이.내가 스스로에게 붙여 마땅한 조롱이고 별명이다.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망서리다가 햇볕이 반짝 보이길래 산책 나갈 채비를 서둘… 더보기

이만큼 나이 먹어보니 . . .

댓글 0 | 조회 1,690 | 2016.11.23
젊었을땐 남만큼 가진게 많지않다고 투정을 하며 살았다.이만큼 살다보니 이젠 내려다보는 혜안이 열려 지금 있는것만 가지고도 부자임을 감사한다.주제넘은 오만과 편견으… 더보기

그 카페

댓글 0 | 조회 1,693 | 2015.05.26
예전에는 혼자서만 쓸 수 있는 호젓한 시간이 참 많이도 아쉬었다. 이젠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데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가 없으니 사람 살아가는 이치가 그런건가… 더보기

그녀가 떠났다

댓글 0 | 조회 1,697 | 2015.06.24
어느 날. 문득 그 집 쪽으로 시선이 멎었을 때다. 무언가 전과 다른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 정적이 감돈다고나 할까. 창마다 얌전…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덴마크) 편

댓글 0 | 조회 1,747 | 2013.02.2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 나라가 서로 자신의 나라가 … 더보기

할머니는 외출중

댓글 0 | 조회 1,751 | 2019.08.27
“바쁘다 바뻐...”아침 6시에 맞춰 놓은 알람이 감미로운 멜로디로 단잠을 깨운다. 발딱 일어나야 하는데 이불속이 따뜻해서 뭉그적대기가 일쑤다.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보기

코로나의 선물(?), 늦깎이 삼대(三代)의 소확행

댓글 0 | 조회 1,754 | 2022.02.22
대학 등록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온다.나이 삼십을 바라보며 직장생활 잘하던 손녀의 새로운 결심이었다. 현장 경험에서 직접 깨… 더보기

5불 효도

댓글 0 | 조회 1,770 | 2019.05.28
이제 익숙해질만큼 살았것만. 지금이 5월 이란게 실감나질 않는다. 햇 밤도 먹었고 붉은 감도 풍성하니 가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내 느낌은 10월이 딱 맞다.바야… 더보기

꿈을 불러다주는 이 겨울의 선물

댓글 0 | 조회 1,776 | 2016.06.22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걸을때 말고는 발 모시는(?) 일이 눈물겹다.얼마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때아닌 복더위가 찾아와 지금… 더보기

숙모 시집오던 날

댓글 0 | 조회 1,780 | 2017.11.22
“어머님이 오늘 새벽에 선종하셨습니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받은 전화. 사촌동생이 알려온 숙모 님의 부음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팔십줄의 숙모 … 더보기

프라하(Praha)에서 보내온 반가운 영상

댓글 0 | 조회 1,803 | 2016.04.28
예정된 하루의 일과를 별 탈 없이 마친 귀가 길은 늘 산뜻하게 마련이다. ‘하버 브릿지’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석양에 물든 고운빛 물 위에 뜬 ‘요트’들의 한가로… 더보기

삶의 축복

댓글 0 | 조회 1,814 | 2017.03.22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 떠나신 분.반평생 긴 세월을 그리움 가슴에 싸안고홀로 외로웠던 삶.눈 감으신 고요로움이 차라리 평화로울까?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얼마… 더보기

현재 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댓글 0 | 조회 1,855 | 2015.09.23
아홉 살 어린 나이 때, 아버지께서 퇴근 해 집에 오시자마자 부르는 이름. “영아~ 저 아래 내려가서 남가네 막걸리 좀 받아오렴”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늘 남가네… 더보기

겉모습이 달라도 마음은 하나

댓글 0 | 조회 1,864 | 2015.01.28
어떤 사진이든. 사진은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담은 하나하나의 영상들이기에 모두가 지나간 추억이 묻어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더욱 특색있는 인상으로 자주 드려다…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핀란드)편

댓글 0 | 조회 1,892 | 2012.12.21
‘러시아’를 떠난 고속철이 질펀히 깔린 밀밭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어디쯤 국경이 있었을텐데 친구와 밀린 수다 좀 떨다보니 벌써 &lsquo…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모스크바) 편

댓글 0 | 조회 1,900 | 2012.10.25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감은 없어지고 의욕이 있어도 매사에 겁부터 앞서는걸 깨닫는다. 여행계획을 세운지 삼년만의 긴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어느날. 인천공항에서 … 더보기

한복 외교 2013년 7월 13일

댓글 0 | 조회 1,918 | 2013.07.24
잔치 전날과 소풍가는 전날엔 으례 설렘이 따른다. 우리에겐 공연 있는 전 날이 잔칫날을 앞둔 설렘으로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오늘 … 더보기

공항 그리고 크리스마스 데이

댓글 0 | 조회 1,923 | 2016.01.28
‘크리스마스 데이’에 밖을 나가보니 너무나 조용했다. ‘쇼핑 몰’까지 문을 닫으니 세상이 달라진듯 한산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 일까?. 그들에겐 일년을 기다려…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노르웨이) 1편

댓글 0 | 조회 1,944 | 2013.03.27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밤새 북쪽으로 올라 간 페리(D. F. D. S WAYS)에서 아침을 먹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