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0 개 1,844 오소영
아홉 살 어린 나이 때, 아버지께서 퇴근 해 집에 오시자마자 부르는 이름. 

“영아~ 저 아래 내려가서 남가네 막걸리 좀 받아오렴”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늘 남가네 시원한 막걸리로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냉장고도 없던 시절. 하루종일 사업에 시달린 스트레스를 어둑한 큰 독에 서늘하게 보관된 시원한 막걸리로 풀으셨던 것 같다.

해넘이 초겨울 저녁, 겁많은 어린 아이는 골목을 갓 덮은 어둠이 무서워서 주춤거렸지만 꼼짝없이 엄마가 부엌에서 건네주는 작은 주전자를 받아들고 집을 나선다.

이 때부터 가슴이 오그라드는 겁보 어린 딸의 마음을 아버지는 모르셨을까?

키다리 전봇대에서 내리비치는 희미한 백열등 불빛에 따라 오는 그림자도 무서웠다. 교교한 골목. 잔뜩 겁에질려 웅크리고 가는 아이의 치마자락을 흔드는 짓궂은 바람에도 흠칫 흠칫 놀래고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도 소름이 돋았다.

가계들이 있는 ‘큰  우물거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웅크렸던 가슴이 조금 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대중 목욕탕처럼 커다랗게 네모진 우물벽이 마치 괴물같다. 놀이터처럼 넓은 대동 우물 주변에 김칫거리도 씻고 빨래도 하느라 늘상 시끌법석이던 낮과는 달리 적막속에 잠긴 그 우물 곁. 남가네 막걸리집 기둥에 희미하게 남포불이 흔들린다. 반가워서 한걸음에 뛰어든다. 다시는 안 나올 것처럼... 

침침한 안에서 나온 누군가에게 주전자를 맡기면 큰 독에 걸쳐진 손잡이가 긴 바가지로 휘휘 저어 찔끔 떠 담아 건네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뒤돌아보니 더 짙게 어두워진 거리. 저 곳을 어찌 또 지나가나? 작은 가슴이 쪼그라들기 시작하지만 자박자박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해 짧은 겨울. 이렇게 무서움을 타는 아이라는걸 알면 아마 오빠나 언니를 시킬 것 같은데도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느끼는 아이는 마다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새들이 둥지를 찾아드는 소릴까? 바람도 잔잔한데 갑자기 나뭇잎이 흔들린다. 이렇게 무서울 땐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귀신 이야기가 꼭 떠 오른다. 어디선가 시커먼 손이 나와 덥석 끌어 갈 것만 같은 생각에 빠른 걸음도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누가 뒤따라 오는 걸까! 걷는 발걸음을 똑 같이 따른다. 빠르면 그도 빠르게 천천히 걸어보면 천천히... 누군가가 놀리나싶어 돌아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바짝 긴장해서 빠른 걸음을 옮기는데 어쩌면 그리도 발걸음이 똑 같은지.... (어떡해 ...어떡해...) 까무라칠듯 혼미해져 오는 정신으로 엉겁결에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뛰기 시작했다.   

“엄마아~~” 대문을 박차고 대청마루까지 한 걸음에 뛰어 올라 그냥 동그라졌다.

“얘가 왜 이래?” 놀래서 뛰어나온 식구들 “응? 근데 이게 뭐냐?”  

엄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셨다. 한바탕 집안에 웃음보가 터졌다.

가슴이 짓눌려 금방 죽을 것만 같은데 웃는 식구들이 미웠다.

“연 줄이 애 발에 얽혔네”

전깃줄에 걸렸던 연(鳶)이 바람에 떨어져 딩굴다가 하필이면 겁쟁이 아이의 발에 감기다니...

그 날 이후. 이젠 그만 두라고 하시길 바랬는데 그 다음부터는 오빠와 동행을 시킨 아버지. 

세살 위인 오빠에게 쥐어박히기도 하고 싸움도 곧잘 했는데 밤 심부름엔 손을 꼬옥 잡고 그리 믿어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짖꿎어 밉던 오빠가 너무나 정겹고 따뜻해 졌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방법으로 자녀들을 훈육하셨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마 그 때부터 였을거다. 오빠를 믿고 따르면서 결혼 할 때까지 연인처럼 붙어다녔던 남다른 특별한 남매가 되었던 것이... 

너무도 여리고 겁보인 어린 딸에게 험한 세상 잘 살아가도록 담력도 키워 주셨고 남매간의 우애로 가족간의 확실한 개념을 일깨워주신 아버지. 그 때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철이 들고서야 알게되었다.

이제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는 싯점에 서 있다.   

어려운 일, 두려운 일, 참 많이도 경험하며 살아온 긴 인생길. 절망의 늪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온 것도 어렸을 적 아버지의 조용한 훈육의 힘이었을 것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던가.

하지만 어둔 밤길만은 지금도 두렵다. 이제 옆에 동행 해 줄 오빠는 물론. 한때 지킴이가 돼주던 남편. 그 다음 자식들. 모두가 떠나고 없다. 겁도없이 너무 먼 길을 와 버렸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일까? 늙으면 애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보다.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시드니를 흔들다!(Ⅱ)

댓글 0 | 조회 4,135 | 2015.11.25
마치 죽음처럼 깊이 잠 들었던 호텔에서의 첫 밤이었다. 눈을 떠 보니 새벽 네 시. 옆 사람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일어나 욕조에 더운 물을 한가득. 그 안에서 며칠… 더보기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시드니를 흔들다!(Ⅰ)

댓글 0 | 조회 2,082 | 2015.10.29
대체로 좋은 꿈은 빨리 깨어나서 아쉽다. 그리도 기다렸던 3박 4일간의 ‘시드니’ 일정이 어느새 하룻밤의 꿈처럼 아련하게 지나가 버렸다. 다행인 것은 만나는 사람… 더보기

현재 혼자 걷는 밤길은 지금도 무섭다

댓글 0 | 조회 1,845 | 2015.09.23
아홉 살 어린 나이 때, 아버지께서 퇴근 해 집에 오시자마자 부르는 이름. “영아~ 저 아래 내려가서 남가네 막걸리 좀 받아오렴” 아버지는 저녁 반주를 늘 남가네… 더보기

강력한 no! no!.--그리고 sorry!

댓글 0 | 조회 2,212 | 2015.08.27
지금 내 처지에 ‘공’까지 잘 맞기를 바란다면 그건 분명히 지나친 과욕이다. ‘십팔 홀’을 거뜬히 걷기만 해도 그것으로 만족. 감사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골프… 더보기

나의 7월, 생각이 머무는 그 곳에...

댓글 0 | 조회 1,948 | 2015.07.28
참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혀지지가 않는 그 곳. 아니 점점 더 선명하게 떠 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정확하게 55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각하고 … 더보기

그녀가 떠났다

댓글 0 | 조회 1,688 | 2015.06.24
어느 날. 문득 그 집 쪽으로 시선이 멎었을 때다. 무언가 전과 다른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 정적이 감돈다고나 할까. 창마다 얌전… 더보기

그 카페

댓글 0 | 조회 1,683 | 2015.05.26
예전에는 혼자서만 쓸 수 있는 호젓한 시간이 참 많이도 아쉬었다. 이젠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데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가 없으니 사람 살아가는 이치가 그런건가… 더보기

‘세익스피어 파크’에서

댓글 0 | 조회 2,412 | 2015.04.30
이민 보따리를 풀고 한참 지나서 처음 나드리 가 본 곳이 ‘쉑스피어 팍’이었다. 벌써 십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느낀 인상 때문인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가 … 더보기

감동의 메아리

댓글 0 | 조회 2,027 | 2015.03.25
가끔씩 나른한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 기쁘다. 아주 오래된 일임에도 그 찐한 감동은 조금도 변함없이 가슴을 파고들어 찌든 삶에 새로운 윤활… 더보기

‘오클랜드’ 구정 명절이 행복하다

댓글 0 | 조회 2,130 | 2015.02.25
고국에선 설 명절 연휴에 무려 78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가 차례보다는 해외여행이 우선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 어느 해 보다 많은 인파로 ‘인천공항’이 귀성길 못잖… 더보기

겉모습이 달라도 마음은 하나

댓글 0 | 조회 1,852 | 2015.01.28
어떤 사진이든. 사진은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담은 하나하나의 영상들이기에 모두가 지나간 추억이 묻어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더욱 특색있는 인상으로 자주 드려다…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1,573 | 2014.12.23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서. 지나 온 나날들을 뒤돌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일년동안의 과제를 마치고, 추수를 끝낸 느긋한 농부의 마음으로 새해 맞… 더보기

(꽁트) 큰 소리로 노래하리라

댓글 0 | 조회 2,082 | 2014.11.25
태어나서 육십여년 긴 세월을 살았던 땅. 조상의 뼈가묻힌 조국을 뒤로하고 신천지 뉴질랜드에 온 것은.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고 삶의 질을 높여 살고싶은. 그들 자… 더보기

라일락꽃 향기 속에서

댓글 0 | 조회 2,071 | 2014.10.30
아! 그렇지 ‘라일락꽃’ 향기. 너무 반갑다. 잊고 사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제 철을 알리는 그 향기를 어찌 기억 못할까? 높다란 철제 휀스위에 탐스럽게 매달린 연… 더보기

추억속의 아버지 그리고 갈대와 나

댓글 0 | 조회 1,565 | 2014.09.23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설 때의 일탈감은 늘 새로워 설레이게 마련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던 고집은 어디에다 숨겨 버렸을까?.. 그 곳을 지날 때는 항상 반겨… 더보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댓글 0 | 조회 1,481 | 2014.08.27
오늘은 예순 아홉번 째로 맞는 ‘광복절(光復節)’ 입니다. 여기는 지금 한겨울, 팔월의 칼바람속을 산뜻하게 때묻지 않은 새 ‘태극기’가 하늘을 향해 팔랑거리며 올… 더보기

오늘

댓글 0 | 조회 2,247 | 2014.07.22
‘오늘’이란 날은 당일을 말 함이지만 삶의 여생(餘生)중에 가장 젊은 날 이기도 하다. ‘오늘’은 내일을 바라보는 미래의 시발점으로 첫 걸음을 하는 날이기에 어제… 더보기

노(老)제자와 여(女)스승

댓글 0 | 조회 1,640 | 2014.06.25
잔인한 달. 사 월은 갔지만 끝없이 어둡고 답답한 오월의 나날들도 속절없이 흘러 흘러가고 있다. 상큼하게 가슴 뻥 뚫리는 그 무슨일은 없을까? 고국은 물론이지만 … 더보기

추모사

댓글 0 | 조회 1,642 | 2014.05.13
그들은 이제 겨우 열 일곱살. 싱싱한 나무에 곱게 부풀은 꽃봉오리었습니다. 하지만 그 꽃봉오리들은 활짝 피워 보지도 못한채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즐거이… 더보기

주부(主婦) 실종시대

댓글 0 | 조회 2,875 | 2014.04.24
정신없이 흐려지는 시각을 거역이라도 하듯.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진정성은 더더욱 뚜렷해 지고 있으니 이것이 늙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늘상 보던 주변의 물… 더보기

꽁트 한마당(공선생의 하루)

댓글 0 | 조회 2,396 | 2014.03.26
베란다에 들어오는 햇볕이 눈이 시리도록 밝고 화창한 날이었다. 할 일 없는 ‘공명수’씨는 흔들 의자에 기대앉아 가볍게 눈을 감았다. “공선생님은 아직도 젊으셔요 … 더보기

기쁜 우리 날 ‘경로잔치’

댓글 0 | 조회 2,056 | 2014.02.25
여느 날과 다를바 없는 이웃들은 마냥 조용하기만 한데 혼자서만 들떠서 설레는 자신이 철부지 아이같아 웃습다. 오늘은 우리 세속 명절. ‘설날 경로 잔치’가 있는 … 더보기

웃음소리

댓글 0 | 조회 1,395 | 2014.01.30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낯선 길을 걷고 있었다. 옆에 동행하던 누군가 가 분명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혼자가 되어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같이했던 사람은 누구이며… 더보기

피붙이의 힘

댓글 0 | 조회 2,572 | 2013.12.24
불을 끄고 마악 첫잠이 들려는 찰나. 어둠의 정적을 깨고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무섭게 울려댄다. (이 밤에 누구야 오늘밤 잠은 다 틀렸네) 보통의 상식을 깬 이런… 더보기

그렇게 산다. 우리는 지금...

댓글 0 | 조회 1,988 | 2013.11.26
옆집의 ‘베티’ 할머니가 휠체어로 외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쓰럽다. 세상을 넓게만 살려는 듯 마냥 뚱보가 될 때부터 불안했다. 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