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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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나가

0 개 1,711 김준
“이런 스타일의 문제는 요렇게 풀라고 학교에서 배웠을거야. 그런데 다른 방법이 하나 있어. 전에 배운 요러요러한 컴셉있지? 그걸 이렇게 적용하면 전혀 바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석할 수 있게 되.”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제 공부하는 과정 Syllabus에 있는거예요? 못본거 같은데..”

“그렇지?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 알아 놓는것이 좋을것 같아”

“음.. 제 생각엔 그냥 학교에서 배운 만큼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가 하는 방법만 잘 기억해서 사용할래요.”

“흠... 그럼 그렇게 해라. 하지만 한가지만은 기억 했으면 해..”

“꼭 그래야 할 필요가.....”

내노라 하는 공립학교인 오클랜드 보이즈 그래마에 다니던 학생과의 실제 대화 내용이다. 필자는 학생의 지적 능력과 열성에 맞춰 자꾸 더 깊이있는 내용을 가르치려 했지만 대부분 학생의 거부반응을 경험해야 했다.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H의 이런 성향은 처음 필자를 만난 Y11 때부터 볼수 있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소위 ‘머리가 커지면서’ 이런 부정적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한마디로 ‘당신은 내가 물어보는것만 알려주면 되. 뭘 공부할지는 내가 선택해.’라는 식의 태도... Y13에 올라가서는 내가 이 아이를 계속 가르쳐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어서 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그만 손을 놓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차마 그러지 못하고 꾹꾹 참아가며 수업을 했다. 하지만 수업 후 학생집을 나설때마다 필자가 전해 줄수있는 여러가지 내용을 다 가르칠수 없었다는 속상함이 항상 머리 뒤꼭지에 달라붙어 있었고 때로는 이런 마음이 나무람으로 혹은 높은 언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Y13 말이 되어 원서를 쓰고 서류가 합격되고 전화인터뷰를 하는 정신없는 날들이 지난간 후 어느날, 학년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문제를 풀던 중 갑자기 H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문제가 너무 어려워? 그럴만한 문제는 아닌데..”

“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하는 대학 안될거 같아요...”

“뭐? 그걸 어떻게 아니? 혹시 인터뷰때 안 좋은 이야기 있었어?” 인터뷰를 마치고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대화 내용을 얼버무리던 H를 기억하며 되물었다. 

“사실은....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선배들이 그래서 그런줄 알았는데... 중간에 갑자기 이러이러한 화학문제를 물어봤어요. 단순한 문제라서 아는대로 자신있게 설명했는데 그 문제를 물리적 방법으로 다시 설명해 볼 수 있냐고 묻더라구요. 갑자기 머리속이 깜깜해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인터뷰를 끝냈어요..” 거의 울것 같은 목소리로 H가 말을 이었다. 

“음.. 그랬구나... 참내...”

‘앗차’ 싶었다. 그 부분은 물리적 화학을 중시하는 미국 AP과정에서 필수로 가르치는 부분이었고 필자도 수업중 항상 거론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가르쳐 놓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거 봐라. 그 좁쌀만한 지식으로 세상 전부를 알고있는양 다 필요없다고 자신만만 하더니.. 세상 쓴맛을 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그건 거짓일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H는 천만다행히 그 대학에 합격 했다. 그 합격소식을 전화를 통해 들으며 내가 H에게 해 줄수 있는말은 한가지 뿐이었다. “고전 물리의 최고 석학인 Newton이 그랬다. 자기는 아직도 지식의 바다에 발도 못 담근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겨우 돌맹이나 줍는 아이와 같다고.. 너가 알고 있는, 혹은 학교에서 배운것이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아. 대학에선 새로운 지식과 탐구에 무한히 긍정적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H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환자라 표현하는 이유는 이들이 병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계속 공부를 잘해왔던, 특히나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수업과 책만 가지고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왔던 학생들에게서 많이 볼수있는 소위 “내가 제일 잘나가” 병이다. 부모님은 그동안 알아서 공부를 잘해왔다고 말씀하시지만 주목할 것은 그 기간이 길어야 Y11까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Y12로 올라가는 순간 ‘앗.. 이게 아닌데... 왜 수업이 어렇게 어렵지? 저 친구는 어떻게 저렇게 대답을 잘하는거지? 난 뭐지?’ 라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부랴부랴 사교육 방도를 찾아 헤메서 어떻게든 소위 ‘과외’를 하게 되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이 수업 첫시간 부터 ‘미래를 고려한 적절한 인도’를 거부할 마음부터 먹는다. 예의 그 ‘자존심’ 때문에..
 
뉴질랜드 교육 특성상 Y10까지는 매년 배우는게 그게 그거일 정도로 학년별 차이가 없기에 책 좀 읽고 복습만 좀 하면 우수한 성적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보상은 노력에 비해 엄청나다. 높은 학교 평가와 선생님들의 애정, 부모님의 자랑과 친구들의 존중감을 얻게되는데 이런것이 사실상 아이에게는 손쉽게 얻은 ‘달콤함’이 되고 결국 자신을 무언가 대단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시작한다. 가끔은 아이의 그런 심적변화를 부추키는 부모님도 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자존감이라면 무슨 문제가 될까마는 아직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보니 ‘내가 제일 잘나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실질적 교육과정이 Y12, 13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고 이 말은 Y11까지 아무리 잘해도 그 이후에 힘들어질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항상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학생은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위해 스스로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리더란 전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이제 학년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할수 있는 학생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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