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야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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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야기 1편

0 개 2,050 송영림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 

여름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번에 소개할 옛이야기들은 귀신(鬼神)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무서운 이야기들에서는 귀신이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귀신’하면 특히 흰 소복 차림에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칼을 입에 물거나 입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귀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상상을 하니 글의 초입부터 이미 오싹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귀신의 특징을 잘 살펴보면 무조건 무서워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귀신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 또는 이승과 저승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켜야 할 도리가 있으며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의 이유와 치유의 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은 기이담(奇異談)을 많이 수록하고 있는 한문야담에 주로 전해 내려온다. 야담이란 민간에서 떠돌던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들을 이야기꾼이 일차적으로 종합한 것인데, 조선 후기의 사회적·경제적인 변화와 관계된다는 점에서 전대의 설화와 차이가 있다. 한문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 한문으로 기록한 것이 야담집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귀신 이야기들은 야담 연구에 조예가 깊은 이강옥 선생(『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보림, 2004, 참조)이 쉽게 풀어 쓴 이야기 중에서 골랐다. 지면 상 더 많은 이야기들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귀신 이야기 1
젊은 시절 김 재상은 영월암에 있는 암자에서 과거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이 깊도록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멀리서 여인의 통곡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차츰 그 소리가 가까워져 바로 창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 재상이 큰 소리로 귀신인지 사람인지 밝히라 하니 사람은 아니라고 하였다. 김 재상이 귀신이 살 곳이 아닌데 어찌 왔냐고 물으니 귀신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억울함을 풀지 않고는 저 세상으로 갈 수 없고 그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은 도련님뿐이라며 간곡히 청을 하였다. 김 재상이 문을 활짝 열고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모습을 보면 놀랄 거라는 말소리만 들렸다. 김 재상이 괜찮으니 나와서 얘기해 보라고 하자 그제야 젊은 여인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여인은 역관(통역을 맡아 보는 관리)의 딸로 젊은 역관에게 시집을 갔는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어떤 여자와 좋아 지내게 되었다. 그 여자는 여인을 내쫓기 위해 온갖 나쁜 소문을 지어 퍼뜨렸고 남편은 그 소문을 믿고 한 밤중에 여인을 이곳으로 데려와 절벽 아래로 밀어뜨렸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여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여인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것도 원통한데 누명까지 쓰게 되었으니 참으로 원통하다며 김 재상의 앞날을 예언하였다. 여인은 김 재상이 과거에 급제하여 나중에는 형조(지금의 법무부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관청) 참의(형조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정3품 벼슬)가 될 것이고 형조는 형벌을 도맡은 관청이니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고 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김 재상은 절벽 아래 구렁을 뒤져 여인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김 재상은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마침내 형조 참의의 벼슬을 하게 되자 여인의 남편을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다. 마침내 절벽으로 데려가 자백을 받은 후 죽은 여인의 부모를 불러 시신을 제대로 묻어 주게 하고 남편 역관은 사형에 처했다. 그날 밤 김 재상이 영월암 암자에 올라가 촛불을 켜고 앉아 있는데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그 모습은 예전과는 다르게 머리는 단정히 쪽을 찌고 옷차림도 깨끗하고 고왔다. 김 재상은 그녀를 가까이 오게 하여 다시 자기의 앞날에 대해 물었고 과연 그는 원귀의 예언과 똑같은 일생을 보냈다.

- 계서야담(溪西野談. 조선 후기 이희평(李羲平:1772~1839)이 편찬했다고 전하는 야담집. 편찬 연대는 1833~39년으로 추정된다. 『청구야담』, 『동야휘집』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야담집이라 일컬어진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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