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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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났다

0 개 1,980 오소영
어느 날. 문득 그 집 쪽으로 시선이 멎었을 때다.

무언가 전과 다른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 정적이 감돈다고나 할까. 창마다 얌전하게 드리워진 하얀 레이스 커텐은 변함없이 여전한데도 왠지 빈 집같이 썰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일까? 자세히 살피니 아뿔사! 그 실하던 꽃밭이 텅 비어 있질 않은가.

시샘하듯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갖가지 꽃들은커녕 푸른 이파리 하나 없이 흙이 몽땅 뒤집힌 상태였다. 어느틈에 이사를 갔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갑자기 집을 비우면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라도 간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데 이사를 간거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위안은 잠시뿐. 갑자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서운한 마음이 끓어올랐다.

인사 한마디쯤 남기고 갈 사람이 그냥 갔다는 섭섭함이 마치 버림을 당한 기분으로 영 게운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매정하게 떠날 수 밖에 없었음은 매일 밖으로만 나도는 내게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을 꾸짖으니 섭섭한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퍼시픽’ 아일랜더였다.

그들이 그렇듯이 그녀 또한 숯 많은 새까만 머리에 검은 피부의 평범하게 생긴 여자로 쉽게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겉과 달리 마음씨 하나만은 너무나 맑고 밝은 사람이기에 표정 교감만으로도 그동안 정이 담북 들어버린 이웃이 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이사 왔을 때다. 그들과 함께 하기에 나는 너무나 모르는게 많아 은근히 겁을 내면서 짐을 풀었다.  

혼자서 조용히 짐 정리를 하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느닷없는 검은 여자를 보면서 거부감과 두려움이 앞서 주춤거릴 때 였다. 자기는 앞 동에 사는 ‘릴리앙’이라고 하면서 뭐 도와 줄 일은 없느냐고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말도 서툰데 당황해서 엉겹결에 그냥 되었다고 사양을 했다. 그녀는 천천히 나를 이끌어 밖으로 나오더니 이것 저것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잘못 알아듣는 내게 조신조신 친절하게도 알려줬다.   

혼자 살아낼 두렵고 어려운 맨 처음 관문을 멋지게 통과시켜 준 사람. 그녀와 친구가 된 계기였다.
칙칙한 피부의 사람들을 선입견으로 잘못 보았던 나를 일깨워 주듯 그녀의 집은 너무도 아름다운 작은 궁전처럼 만들어 살고 있어서 놀랬다.

창가에 놓인 예쁜 동물 인형도 그렇고 집안 구석구석 빈 곳 없이 끼워 맞춘듯한 조형물들이며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난 솜씨였다. 내 취향과 너무도 닮아서 더욱 빨리 친해질 수가 있었던 것 같다.   

허름한 옷 차림에 한 손에는 바케츠. 또 한 손에는 꽃삽을 들고 이웃집 가든까지 거침없이 돌봐 주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손색없는 일류 가드너. 아마도 그랬을거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매일을 흙과 친하게 지내는. 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언제나 부티나게 탐스럽다. 이름도 예쁜 ‘릴리앙’. 아줌마표 꽃들이...

아주 드문 일이지만 그녀의 외출 차림은 거의가 하얀색 긴 치마 정장이다.

흑단같은 긴 머리에 검은 피부. 거기에 극과 극의 순백이 화려한 조화를 이루며 깔끔하고 멋스럽다. 해 질 무렵 아마도 그가 좋아 한다는 ‘댄스’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달밤에 보는 소박하게 핀 박꽃이라고나 할까, 어둠을 나서는 흰 옷차림의 그녀가 내겐 늘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외출할 때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세워 ‘뷰티풀’을 외쳐주던 그녀. “옷! 이냐? 나! 냐?” 아이처럼 들떠서 재롱섞인 제스츄어를 보이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둘 다’라고 알린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외출하는 날은 하루종일 발걸음이 가볍다.

요즈음 그의 옆에 중국인 젊은이가 이사를 왔다. 물론 그녀에게도 최대한 친절을 베풀어 내가 슬며시 질투의 감정을 체험하는 철부지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는데...

그녀가 떠나고 없다. 너무나 허전하다.   

그가 떠나고 내 마음이 이토록 황량 할 줄은 생각도 안 해 봤다.  

멀리 있는 동기간 보다 가까운 이웃이 났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그동안 눈빛 만으로 교감을 했어도 많이 의지가 됐던 사실을 깨닫는다.

이젠 나를 신나게 띄어 줄 그 누구도 없다. 썰렁하게 빈 그 집 앞을 지나는게 너무나 싫다. 장바구니를 든 그녀가 저 쪽 길에서 나타나 크게 웃어줄 것만 같은 기대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려간 꽃들은 지금 어디에서 몸살을 하며 피고 있을까?(언제 어디서든 한번쯤은 꼭 만나봐야지) 버려지지 않는 미련이 마음속 깊이 도사려 있다. “마음씨 예쁜 릴리앙 건강하게 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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