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는 많은 아내들의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주변의 많은 부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깝게는 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동생 부부와 주변 친구들 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곱디곱게 외동딸로 태어나고 자란 나의 외할머니가 고된 시집살이 속에서 그리워했을 하늘나라와 같은 친정, 그리고 중매결혼을 한 나의 어머니가 비록 당신이 직접 선택한 아버지와의 결혼이었지만 결혼을 하여 막상 살러 오니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는 그 심정, 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평생 살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어둠이 한동안 어머니의 마음을 지배했다고 한다. 가정적인 아버지로서 평생을 가족만을 위해 산 아버지였음에도 그리고 우리 삼남매를 낳고 살면서도 어머니는 순간순간 다음 생에는 새로 태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식이 몇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내들은 직접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평생 자유롭고 싶다는 의지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날개옷으로 나의 어머니는 새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 뉴질랜드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이곳으로 시집와 살고 있는 여인들을 보며 더욱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특히 이곳이 시댁이고 홀로 친정에서 떨어져 나와 시집을 온 여인들을 보면 더욱 그 외로움과 쓸쓸함이 사무친다. 더구나 남편이 아내보다는 어머니와 한편일 때 아내가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그가 그리워할 친정인 하늘나라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남편은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치우쳐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처자식에 기울어져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불효와 도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중간자로서 적절한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아내도 역시 온전히 남편을 믿고 그의 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여동생이 결혼할 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라 안 계셨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동생을 제부에게 보내자니 수십 년 간 소중하게 갈고 닦은 보석을 도둑놈에게 빼앗기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내 기준에서이긴 하지만 동생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해 보이는 제부가 참 마땅치 않았었다. 또 나의 친구들 중 몇몇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정아버지가 딸을 보내며 그렇게 울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섭섭함이 옥황상제나 선녀의 언니들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기분 때문에 남동생의 아내인 올케에 대해서는 더욱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말없는 어머니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제부와 올케 앞에서 딸이나 아들의 편을 든 적이 없고 제부와 올케를 탓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앞으로 세상이, 부부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으나 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여전히 널리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부부와 그 주변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요즘 <선녀와 나무꾼>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으면서 좀 더 기쁜 결혼 소식들이 들리기를 바란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