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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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

0 개 1,660 김지향
퇴근길의 차량들이 줄지어 달려가는 해질녘에 단풍이 든 거리의 나무들은 촉촉한 비를 맞으면서 차분하면서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수수 떨어진 노란 낙엽들이 화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낭만을 더해주며, 스퀘어 전체의 나무마다 빽빽하게 앉아 있는 새들은 너 나 없이 시내 전체의 소리들을 잡아먹으려는 듯, 혼이 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해 뜨기 직전의 기온이 하루 중 가장 낮고, 따스한 봄이 오기 전에 가장 추운 겨울이 있듯이 새들 역시 잠들기 전에 가장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승용차를 나무 밑에 주차해두었다간 차 전체에 새똥세례를 받기 일쑤지요. 

엊저녁에 시내에 나가서 스퀘어를 걷다가 시끄러운 새소리와 오후 5시를 알려주는 시계탑의 종소리와의 아름다운 조화에 감탄을 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지혜가 하나를 이루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 일었습니다. 

시내에 나가는 시간에 맞추다 보니 메시 대학을 거쳐서 파미 서쪽 지역을 돌아가는 버스를 타게 되어 40분 동안 가을 끝자락의 거리를 마음껏 보았습니다. 사색의 시간과 더불어 새들의 합창까지 곁들어 듣는 행운을 누렸군요. 오전에 중고차 한 대를 산 기념의 축제 같군요.

앞으로 혼자 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땐,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걸핏하면 시내에서 픽업을 요청했었던 딸들도 버스 시간표에 의존하기로 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승용차를 곱게 몰면서 꼭 필요할 때만 사용을 하고 내부 청소도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차 관리에 소홀하지 말고 보험 역시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큼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차와 내 몸을 함부로 다루면서 살았습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려서 설마 나한테? 란 생각으로 곳곳의 위험에 대한 대처도 없이 대충대충 살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수 없이 크고 많은 사건들을 겪었는데, 운명적인 사건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 언젠가의 원인에 의한 결과인 것이지요. 그래서 똑같은 일들이 자꾸 반복적으로 일어날 땐, 습관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죠.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사라지도록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우리들의 의지가 참 허약한 것 같습니다. 결국 나쁜 습관에 중독이 되어 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나야말로 의지박약한 자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금연을 늘 실패하는 사람들이나 모든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나 자신도 속해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게 더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자기위안일 뿐으로 여겨지는군요.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숙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은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충분히 제 2의 제 3의 희생자를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도 보건당국의 안일한 방책으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내가 근 50여 년 동안 나쁜 습관으로 살아 와서 건강을 해친 것이나 보험을 미루다가 차 사고가 나서 큰 손실을 보게 된 것이나 한국의 메르스 공포 실정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더군요. 모두 다 한꺼번에 변화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가을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나 자신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겨울을 춥지 않게 잘 버텨서 따스한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든든한 월동준비를 하려 합니다. 

이곳 상황대로 맛있는 김장도 담그고, 몸도 마음도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세세한 준비를 하려 합니다. 막내가 사 준 겨울 잠옷과 나이트가운을 입으니 한결 더 따스하네요. 이미 마음은 벌써 훈훈하게 데워졌습니다. 고국의 메르스 공포 역시 얼른 사라질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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