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고수(高手), 피노누아(Pinot 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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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고수(高手), 피노누아(Pinot 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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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에나 고수(高手)는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를 이룬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겐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남이 알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대체로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어사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목메어 찾아 다닌다. 와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명품(名品)일 수록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최고조의 성숙을 이룰 때까지 인고(忍苦)의 세월을 묵묵히 기다린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의 등장은 명품을 손꼽아 기다린 애호가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의 지존(至尊)은 누구인가? ‘세계의 100대 와인’이라는 주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매년마다 생산되는 와인을 선정한다. 미국의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도 매년 두각을 나타낸 세계의 와인 중에서 대략 1만병을 선정해 100병을 골라내는 일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과 피노누아도 빠지지 않고 항상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영국의 와인잡지 ‘디캔터(Decanter)’는 최근에 죽기 전에 먹어 봐야 할 100대 와인을 선정했다. 그 중 최상의 10개중 3개는 프랑스의 ‘로마네 콩티 와인어리(Domaine de la Romanee Conti)’에서 차지했다. 62에이커의 자그마한 와인어리에서 생산되는 10만병 중에서 귀하신 몸, 100퍼센트 피노누아의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는 일년에 6200병(500상자)정도를 생산한다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와인의 최고봉이다.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악평가들과 평론가들도 30년 동안이나 성숙되어가는 그 앞에서는 무릎을 끓는다. 라벨엔 아무런 문양도 없이 포도원의 이름만이 달랑 적혀있는 이 와인은 그 해 생산된 와인 한 병이 600만원을 호가하고 테이스팅을 한 와인 평가관이 결국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는 전설의 와인이다. 이 와인은 피노누아를 통해서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내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영어명칭은 Burgundy)지방에서 탄생되었다. 이 와인은 과일 맛이 강하고 이상적으로 숙성이 되었을 경우에는 버섯 향기가 난다고 하는 피노누아의 최고 걸작품이다. 이 와인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에 하나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멜로가 보르도지방의 대표적인 품종인 반면 피노누아가 주요품종인 부르고뉴는 보르도와는 사뭇 다른 와인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 바닷가(대서양)에 인접한 보르도와 내륙에 위치한 부르고뉴는 기후, 토양 등 포도가 자라는 자연환경이 대조적이다. 또한 와인을 만들 때 보르도 지방에서는 반드시 두 개 이상의 품종을 섞어 맛의 조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단일 품종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 힘차고 개성이 강한 와인이 생산된다. 이 때문에 보르도 산은 여성적인 반면 부르고뉴 산은 남성적이라는 비유도 있다. 특히 피노누아의 경우엔 포도주의 맛을 내기 위해 다른 포도와 블랜딩(Blending)하는 일은 결코 없다. 피노누아 품종만으로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이 아닐까? 

피노누아(Pinot Noir)는 수 많은 와인 메이커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그들에게 처절한 실패의 쓴 맛을 안겨 주었으면서도 그 도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귀족적인 포도 품종이다.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병충해에도 매우 약하다. 뉴질랜드도 세계적인 피노누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말보로지역과 마틴보로지역에서 생산되었으나 최근에는 퀸스타운을 가까이에 둔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 지역의 와인이 부르고뉴와는 다르게 상큼하고 신선하며 활기차고 젊은 스타일로 주목을 받으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피노누아는 색깔이 진하지 않고 화려한 인상의 밝은 연홍색(Pale Red)이고 체리의 붉은 빛깔을 띠며 딸기나 과일 향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포도의 특성 때문에 프랑스의 샤앙파뉴 지방에서는 피노누아를 훌륭한 샴페인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피노누아의 주요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은 메마른 땅으로 석회질과 점토질, 규산토 같은 서로 다른 토양이 1미터씩 파이 껍질처럼 겹쳐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석회질의 토양에서는 향기가 좋은 와인을, 점토질의 토양에서는 성숙되고 진한 와인을, 그리고 규산토의 토양에서는 가볍고 부드러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이렇듯이 그 각각의 토양에 의한 요소가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감미로운 명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는 타입을 보면 성격이나 취향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와인 전문가들이 있다. 피노누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섬세하고 내성적이며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 탐구하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철학자 스타일이라고 한다.

젊은 한때 정의(正義)만이 오로지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를 자유케할지도 모를 진리(眞理)를 찾아 헤매고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서적 한 두 권쯤은 겨드랑이에 끼고 교정을 걷거나 그 두꺼운 책을 잔디밭에 베고 누워 낮잠 자는 것을 겉멋으로 즐겼다. 그 시절과 다름없는 오늘의 군웅할거(群雄割據)하는 세상 속에서 고수(高手)들은 우리에게 묵묵히 장인(匠人)정신을 충고한다. 명품(名品)은 갈고 닦는 자기성찰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의 삶은 너무도 진지한 것이며 진실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삶의 현장에 있고 희망은 철학(哲學)도 신(神)도 아닌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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