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가을이지만 계절은 가을과 겨울의 중간쯤 되는 과도기가 다시 찾아왔다. 이른바 스웨터의 계절(sweater weather)인 것이다. ‘스웨터의 계절’. 정말 적당한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스웨터의 계절은 말 그대로 티셔츠를 입기엔 좀 쌀쌀하고, 코트를 걸치기엔 너무 따뜻하니 스웨터를 입기 적절한 때를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과도기가 그러하듯 어중간하니 미적지근한 이 시기는 어딘가 느슨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비성수기랄까, 모두가 조금은 넋을 놓고 있고, 쉬이 피로해한다.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거실에 앉아 비 오는 창 밖을 내다보며 따뜻한 차나 한 잔 하고 싶어지는, 여유를 불러오는 시기.
정작 나는 스웨터의 그, 털실 특유의 따가움이 싫어서 스웨터를 거의 입지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도 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스웨터 대신 담요라도 상관 없다. 담요든 이불이든 둘둘 말고, 전기 장판을 켜놓은 따끈한 침대 안이나 오래 누워 있어 뜨뜻해진 소파라면 안성맞춤이다.
뉴질랜드의 스웨터의 계절은, 사실 스웨터보단 우산이 더 잘 어울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겨울의 폭풍을 예고하듯 비가 마구마구 오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만 오면 또 모를까, 바람도 휘몰아치고 심한 경우엔 이른 폭풍우까지 쏟아지니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다. 거기에 잠깐 태양이 나왔나 싶으면 또 금방 비가 내려버리고, 결과적으론 기껏 조금 말려놓은 빨래들을 다 적셔버리게 된다.
......굳이 우산의 계절이 아니라 눅눅한 빨래의 계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미권에선 우스갯소리로 스웨터의 계절은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몸을 가릴 수 있는 두터운 스웨터는 확실히 자기 몸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적절한 타협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쪽으로 보기보단, 난 스웨터의 계절엔 좀 더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더 네이버후드(The Neighbourhood)란 밴드의 동명의 곡이 한 몫 했다.
이 노래, ‘스웨터의 계절(Sweater Weather)’의 후렴구는 이렇다.
[왜냐면 여긴, 지금은 ‘Cause it’s too cold
네게는 너무 추우니까 For you here and now
그러니 네 손을 잡아줄게 So let me hold
내 스웨터의 구멍에 네 두 손을 Both your hands in the holes of my sweater]
흔히들 ‘늑대 코트’니 ‘여우 목도리’니 하는 옛 농담들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색다르고, 십대의 풋풋한 느낌이 진하게 풍기는 표현은 처음이었다.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지만 혼자일 땐 좀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을 피하는 - 또는 외면하는 -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어떤 문제든 피하거나 외면할 수 있게 도와주긴 하겠지만, 적어도 고독은 완전히 해결될 테니까.
뉴질랜드의 스웨터의 계절은 아직 한 달 가량 남은 것 같고,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나는 스웨터 대신 담요와 (별로 낭만적이진 않아도) 내복을 껴입는다. 그렇지만 이제 곧 그마저도 부족해지고 코트 없인 버티지 못할 계절이 또 오리라. 코트와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해도 파고들 바람은 모조리 파고들어 밖에 나가기 더더욱 싫어지는 시간이.
별로 고대하고 있진 않다. 비도, 비바람도, 올해도 분명 찾아올 폭풍도. 그렇지만 뭐든지 올 것은 오는 법이고, 버텨야 하는 것은 버텨야 하는 법이니.
내년에도 같은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