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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Ⅳ)

0 개 2,025 박지원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있다는 초록색 팻말을 보았다. 우리는 두 번째 캠프사이트 Poukaria에서 숙박하기로 했었기에 다시 온 힘을 다해 이동을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뉴질랜드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노 젓는 법을 배운다고 들었다. 학교 체육 시간에 오로지 축구 혹은 농구, 뜀틀 정도를 배웠던 나와 N이 구조대원 내지는 가이드 한 명 따라붙지 않는 이 와일드한 강물 위에서 당황한 것은 자명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몇 척의 배가 우리 옆으로 지나갔다. 우리는 노를 못 젓는 것이 아니라 안 젓는 척 하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절경, 몇 줄기 폭포들, 한가로이 날거나 앉아있는 이름 모를 새들로 이루어진 디자인들이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결 사이로 노를 젓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며 우리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2인용 배 경우의 이야기이다. 앞에 탄 사람이 선장이고, 뒤에 탄 사람은 선원이다. 선장이 왼쪽으로 노를 젓고 선원이 왼쪽으로 노를 젓는 경우, 배는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선장이 오른쪽, 선원이 왼쪽에서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배가 직선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다) 노를 지나치게 강 안으로 꽂아서 젓기보다는, “강을 민다”는 느낌으로 물결을 따라 노를 저어야 하며, 선원과 선장의 노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여야 배의 속도가 조금 빠르게 느껴진다. (느껴진다는 얘기는 체감의 차원이지, 실제로 그런지는 모른다)

하나둘셋넷, 눈으로 배운 대로 노를 잡고, 구령을 넣어가며 물살을 헤치고 나갔다. 가끔씩 강폭이 좁아지면서 물살이 거칠게 변할 때마다 겁을 먹으며 다른 쪽으로 조심스럽게 피해갔다. 눈 앞에 두려운 현실이 있을 때 그저 피해가는 것만이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던 유일한 것이었다. 우선 왼쪽 오른쪽 방향이라도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풍경은 사실 잘 보이지 않았고, 여러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우리가 5일 코스를 완주할 수는 있을까. 이 배를 빌리는데 한 사람당 225불이 들었는데, 생명증서에 싸인까지 하고 오긴 했지만 만약에 빠진다면 구조요원이 오기는 오는 건가 등등.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첫 캠프사이트 Poukaria에 이를 수 있었다. 30불을 주고 예약했던 캠프사이트 Poukaria 는 “척박”, “공포”, “날 것”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었다. 세 개의 큰 잔디계단으로 이루어진 캠핑장은, 계단 하나당 텐트를 두 세 개 정도 칠 수 있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크기의 캠핑장이었고, 역시 계단 하나당 만든 지 오래되어 보이는 평상 같은 것이 있었다. 이 평상 위에 텐트를 치는 것인지, 평상 위에서 밥을 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캠핑장 주변에는 산풀들이 우거져 있었고, 거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잔디 상태는 그리 고르지 못했고, 비가 와서 땅은 온통 젖어있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두 번째 계단 위에 터를 잡았다. 강가에 묶어둔 배에서 우리의 짐이 든 무거운 배럴 여섯 개를 가지고 올라와야했는데, 제법 고된 일이었다.(나는 사실 당연히 관리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배럴 여섯 개를 모두 옮긴 후, 텐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노란 원터치 텐트의 활약은 첫 날부터 시작되었다. 영화촬영을 목적으로 샀던 5만원짜리 텐트는 단 2-3분 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텐트를 보아하니, 폴대부터 설치하고 텐트 위에 달린 구멍에 폴대를 꽂아 구부리는 식이었다. 우리의 텐트가 알게 모르게 주목을 받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옷을 입고 핸드폰이고 지도고 아무 것도 없던 N과 나는 뜬금없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겐 서로가 함께-라는 것과, 원터치텐트뿐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손목시계, 카메라, 카메라배터리만이 우리가 가진 전자기계의 전부였다.

우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끈을 묶어 젖은 옷을 걸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배도 고프고 추웠기에 당장 저녁을 먹기 위해 물을 뜨러 화장실과 수돗가가 있는 제일 윗계단으로 올라갔다. 물은 펌프식의 수도꼭지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젠장,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제법 충격적이었다. 화장실에 혹시나 수도꼭지가 있을까 해서 가보니, 배설을 위한 거대한 구멍과 수천마리 벌레들만이 조그만 간이 화장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우리는, 강물을 뜨기 위해 두 번째 계단에서 강가로 몸을 움직였다. 나는 강물을 코펠에 떴다. N은 세 번 뒤집어진 배에 가득 찼었던 물을 열심히 배밖으로 퍼냈다. 우리 둘은 두 번째 계단 위로 다시 올라가 강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강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안 보이던 모래들이 물 속에서 용솟음쳤다. 배가 너무 고팠다. 소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쌀을 물 속에 붓고 밥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마파두부덮밥, 비빔밥을 먹으며 잠시나마 몸 속의 냉기를 온기로 바꾸어주었다. 밥을 생각보다 너무 많이 했던 탓에, 가지고 온 종이컵에 밥을 넣고 은박지로 감싼 후 평상 위에 올려놓았다. 도란도란. 조금 느긋해진 마음으로 우리가 145Km의 뱃길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강물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한 후 오후 8시에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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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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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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