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정원일은 매우 피곤하다. 특히 정원이나 원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꾸거나 키우는 것은 싫어하고, 과수원에 가거나 울창한 숲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무 자체를 직접 심는 것엔 관심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을 돌보는 일은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또는 식물이든. 어쩌면 식물에게 더 미안하기도 하다. 동물이나 사람은 소리를 내거나 해서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식물은 그러지 못하니까.
어릴 적, 학교에서 간혹 여름 방학 숙제로 봉숭아나 강낭콩 키우기 따윌 숙제로 내주면 치를 떨었다. 어느 정도는 그들의 무성의함에 화가 나서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열댓 살 된 아이들에게 생명을 맡기다니. 제정신인 걸까.
키우고 심는 것 외에도 식물들은, 정원은, 관리하는 것이 고역이다. 잡초를 뽑고, 낙엽을 긁어 모으고, 잔디를 깎고. 물론 동물처럼 몸이 젖으면 파르르 털어버리거나 소리를 꽥꽥 지르는 일은 없어도, 왜인지 나는 식물들이 동물보다 더 어렵고, 보람 없다.
굳이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대부분의 식물들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일까.
과일을 따거나 꽃을 꺾는 것은 아주 좋아한다. 더욱이 과일나무는 집의 풍족함을 더해준다. 그건 내 가족도 마찬가지라서, 여태까지 살았던 집들엔 - 아파트를 제외하고 - 항상 과일나무가 있었다. 레몬나무나 귤나무나 석류나무. 특히 어렸을 때 살았던 집엔 앵두나 살구, 보리수 같은 특이한 나무들이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고, 열매가 열릴 때마다 하나씩 따먹곤 했었다.
마당 딸린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들이 내가 제일 선호하는 주거지이긴 하다. 높고, 편리하고, 무엇보다도 정원이 없다는 점!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할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니 마음 놓이기 그지없다. 혹시 꽃을 키우고 싶다면 화분을 사용하면 되고, 나무들이야 아파트 주변에 한 가득 심어놓으니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들은 정원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봄이면 창문 너머로 벚꽃 구경을 할 수 있고, 가을엔 길이 온통 낙엽으로 뒤덮인다.
딱 한 번은 자의로 꽃을 키워보고자 한 적이 있었다. 봉숭아였는데, 그것도 내 기준에선 매우 실용적인 목적 - 꽃을 피워서 손톱을 물들이기 위해 -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씨를 구해 심은 것까진 좋았다. 심지어 떡잎 하나까지 틔울 정도로 자랐는데, 마침 그때 타이밍 나쁘게 한국에 가야 했던 탓에 결국 불쌍한 내 봉숭아는 말라 죽고 말았다. 내가 없는 동안 물을 달라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했는데도, 작은 봉숭아 새싹에게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식물의 그런 불안정한 점이 불안해서 일부러 키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약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소홀하면 금방 죽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마치 나를 탓하는 것 같기도 해서 더더욱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 자체를 바친, 무언의 문책.
물론, 좋던 싫던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정원이 있고, 잔디밭이 있고, 꽃과 나무가 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부주의로 애꿎은 식물이 죽어버리지 않도록.
식물은 죽으며 (인간에게) 책임감을 남긴다.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