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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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Ⅱ)

0 개 1,729 박지원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안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거대한 주황색 당근 하나가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럴싸하게 바닥에 꽂혀있었다. 운전 내내 입을 다물었던 대머리 아저씨가 저 당근이 오하쿠니의 상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오오. 우리는 감탄했다.

대머리 아저씨가 내려준 숙소에 내렸다. 큰 잔디밭 위에 많은 집들이 있었는데, 부자들의 별장들처럼 보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들 중 하나인 우리 숙소의 구조는, 1층은 식당으로, 2층을 숙소로 쓰는 백패커 같은 곳이었다. 곳곳에 달려있는 박제된 순록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겨울에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오늘은 너희 둘 밖에 없을 거야. 대머리 아저씨는 그 말과 더불어 5일간 배를 탈 때 먹을 것을 사두라고 하고는 비린 버스를 타고 떠났다. N과 나는 짐을 풀고 배럴 별로 들어갈 것들을 의논하고 그날그날의 메뉴를 간단히 정했다. 이미 많은 즉석식품들을 사왔기에 살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오하쿠니 구경도 할 겸 거리로 나섰다.

오하쿠니의 뉴월드는 정말 작은 곳이었다. 두 명의 캐셔들이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바코드처럼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오는 사람들도 관광객과 동네 사람 정도인 것 같았는데 지루할 것도 같았다. 그들이 지루하다고 해서 내가 딱히 뭘 해줄 것은 없었고, 그냥 지루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지루하면 생각을 많이 비울 수 있다. 생각을 많이 비우면 생각을 풍경으로 채울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멍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지루하고 우울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N과 나는 뉴월드 가방을 들고 태양 아래를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지글지글 승천하는 투명한 뱀들이 검은 도로 위를 빼곡히 점령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였다. 거대한 당근도 햇빛에 익어가듯 꽂꽂이 서 있었다. 당근 주변의 그네와 미끄럼틀 같은 것들로 인해서인지 그것은 팀 버튼 영화처럼 보였다. 심지어 저 편에는 만년설이 쌓여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또렷하게 잡힐 듯이 보였다. 그러니까, 깔끔하고도 환상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드넓은 잔디밭,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길을 잃어서 한 시간을 뛰어다니다가 겨우 집을 찾았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웠다.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 채.

다음 날 아침 6시, 우리를 왕가누이 강의 상류로 픽업하기 위해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만큼이나 매끈한 승용차가 숙소 앞에 멈춰섰다. 한 시간 정도를 간다기에 멀미약까지 챙겨먹었는데, 비린 버스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 흐린 날이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승용차로 어느 창고 옆 공터 같은 곳으로 이동했는데, 배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우리는 차를 봉고차로 옮겨 타고 뒤에 매달린 트레일러에 두 척의 배를 실었다. 대머리 아저씨 대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약간 불안했지만 우리는 미리 잠을 자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가는 아일랜드 커플이 우리와 같은 코스라고 운전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듯한 입술로 얘기했다. 우리는 뒷자리에 앉은 아일랜드 커플과 인사를 했다. 내가 잠깐 축구선수 로이 킨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했다. 그렇지만 N과 나는 우선 잠이 들기로 했다.

잠에서 일어났을 때, 잔잔해 보이는 녹색 강이 우리 앞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녹색 강이 있었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구명조끼와 배럴들을 배에 실어주고 약간의 주의사항을 가르쳐주었다. 배는 두 명이 앉을 수 있었고, 노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것이었다. 우리 배의 이름은 Explorer 31이었다. 한 명은 앞을 보고 한 명이 뒤에서 방향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주보는 것을 상상했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노를 저어본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일랜드 커플은 바다에서 타보았다고 했고 우리는 한 번도 그러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배를 강 위에 띄어주었다. N과 나를 향해 앞으로 먼저 가보라고 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배 위에 앉았다. 노를 저었다. 배가 뒤로 가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N이 세게 저어보자고 했다. 배가 뭍의 나무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조그만 선착장에서 아일랜드 커플과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아가고 싶었다. 배는 다시 다른 쪽의 뭍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뭍 앞 강 위에 조그맣게 잠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벌레들이 놀라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N과 나는 절규하며 노를 휘둘렀다.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이 여전히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도 돌아가고 싶었다.

작업기(Ⅳ) 기다림의 결과

댓글 0 | 조회 1,396 | 2015.03.25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과정을 모르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그러하다. 마치 누군가가 미래의 로또번호를 가르쳐주긴 했는데 몇 회 차인지 가르쳐주지 않… 더보기

江(Ⅲ)

댓글 0 | 조회 1,436 | 2015.02.25
노로 어떻게든 뭍을 박차고 배의 방향을 겨우겨우 돌려, 우리는 다리를 저는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더보기

현재 江(Ⅱ)

댓글 0 | 조회 1,730 |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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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Ⅰ)

댓글 0 | 조회 1,576 | 2015.01.29
등산이 인생이다,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때때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혐오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을 못 …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10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영어

댓글 0 | 조회 1,924 | 2015.01.13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외국인에게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던 것이 비결 아닌 비… 더보기

한뼘

댓글 0 | 조회 1,353 | 2014.12.24
카페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각 오후 6시. 조금씩 지면을 향해 낙하하는 노을들이 수면 위의 카페를 빛내고 있었다. 폐선을 개조해서 만든 건지. 디자인 컨셉을 그렇… 더보기

반뼘

댓글 0 | 조회 1,614 | 2014.12.09
새벽 6시 30분에 일을 시작했다. 오후 2시쯤 퇴근해서 밥을 먹고 멍 때리다가 친구가 의뢰한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작업을 했다가 밥을 먹었다가 작업을 했다가 … 더보기

상류

댓글 0 | 조회 1,899 | 2014.11.26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이다. 지금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와, 이것저것하며 돈을 모은 뒤 지금은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 더보기

침몰

댓글 0 | 조회 1,604 | 2014.11.12
“도” 음정이 맞지 않는 “도”가 또 한 번 울렸다. 청색 지붕, 처마 밑에 자리한 일곱 개의 검은색 확성기가 하늘 아래 햇살을 반사시키며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더보기

공간

댓글 0 | 조회 2,055 | 2014.10.30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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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2,192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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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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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281 | 2014.09.10
정보로만 존재하는 행성에 대한 시놉시스를 쓴 적이 있다. 그 곳에서는, 실체는 없고 모두 정보로만 존재한다. 아무 소통도 접촉도 없이 정보들이 둥둥 떠다니는 셈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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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2,062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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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970 | 201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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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46 | 2014.07.22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 처음 내가 접했던 종교는 불교였다. 10살 무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던 산 속의 어느 조그만 절. 그 절은 정말 깊은 산 구석에 있었는… 더보기

운동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댓글 0 | 조회 1,932 | 2014.07.08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이란 것을 키워봤다. 펑크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비쩍 마른 몸을 좋아했다. 44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상체에 디올옴므 모델과도 같은 …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2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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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572 | 2014.06.11
뜻하지 않은 일로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뭐랄까, 먹는 것보다 싸는 게 더 힘든 느낌이 든다. 오늘. 예정대로라면, 나는 발매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뮤직비디오 편집… 더보기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7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6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4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혼란: 독재의 잔재

댓글 0 | 조회 2,003 | 2014.04.09
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 더보기

담배

댓글 0 | 조회 2,698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