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Ⅱ)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江(Ⅱ)

0 개 2,003 박지원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안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거대한 주황색 당근 하나가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럴싸하게 바닥에 꽂혀있었다. 운전 내내 입을 다물었던 대머리 아저씨가 저 당근이 오하쿠니의 상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오오. 우리는 감탄했다.

대머리 아저씨가 내려준 숙소에 내렸다. 큰 잔디밭 위에 많은 집들이 있었는데, 부자들의 별장들처럼 보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들 중 하나인 우리 숙소의 구조는, 1층은 식당으로, 2층을 숙소로 쓰는 백패커 같은 곳이었다. 곳곳에 달려있는 박제된 순록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겨울에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오늘은 너희 둘 밖에 없을 거야. 대머리 아저씨는 그 말과 더불어 5일간 배를 탈 때 먹을 것을 사두라고 하고는 비린 버스를 타고 떠났다. N과 나는 짐을 풀고 배럴 별로 들어갈 것들을 의논하고 그날그날의 메뉴를 간단히 정했다. 이미 많은 즉석식품들을 사왔기에 살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오하쿠니 구경도 할 겸 거리로 나섰다.

오하쿠니의 뉴월드는 정말 작은 곳이었다. 두 명의 캐셔들이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바코드처럼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오는 사람들도 관광객과 동네 사람 정도인 것 같았는데 지루할 것도 같았다. 그들이 지루하다고 해서 내가 딱히 뭘 해줄 것은 없었고, 그냥 지루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지루하면 생각을 많이 비울 수 있다. 생각을 많이 비우면 생각을 풍경으로 채울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멍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지루하고 우울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N과 나는 뉴월드 가방을 들고 태양 아래를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지글지글 승천하는 투명한 뱀들이 검은 도로 위를 빼곡히 점령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였다. 거대한 당근도 햇빛에 익어가듯 꽂꽂이 서 있었다. 당근 주변의 그네와 미끄럼틀 같은 것들로 인해서인지 그것은 팀 버튼 영화처럼 보였다. 심지어 저 편에는 만년설이 쌓여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또렷하게 잡힐 듯이 보였다. 그러니까, 깔끔하고도 환상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드넓은 잔디밭,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길을 잃어서 한 시간을 뛰어다니다가 겨우 집을 찾았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웠다.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 채.

다음 날 아침 6시, 우리를 왕가누이 강의 상류로 픽업하기 위해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만큼이나 매끈한 승용차가 숙소 앞에 멈춰섰다. 한 시간 정도를 간다기에 멀미약까지 챙겨먹었는데, 비린 버스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 흐린 날이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승용차로 어느 창고 옆 공터 같은 곳으로 이동했는데, 배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우리는 차를 봉고차로 옮겨 타고 뒤에 매달린 트레일러에 두 척의 배를 실었다. 대머리 아저씨 대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약간 불안했지만 우리는 미리 잠을 자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가는 아일랜드 커플이 우리와 같은 코스라고 운전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듯한 입술로 얘기했다. 우리는 뒷자리에 앉은 아일랜드 커플과 인사를 했다. 내가 잠깐 축구선수 로이 킨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했다. 그렇지만 N과 나는 우선 잠이 들기로 했다.

잠에서 일어났을 때, 잔잔해 보이는 녹색 강이 우리 앞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녹색 강이 있었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구명조끼와 배럴들을 배에 실어주고 약간의 주의사항을 가르쳐주었다. 배는 두 명이 앉을 수 있었고, 노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것이었다. 우리 배의 이름은 Explorer 31이었다. 한 명은 앞을 보고 한 명이 뒤에서 방향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주보는 것을 상상했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노를 저어본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일랜드 커플은 바다에서 타보았다고 했고 우리는 한 번도 그러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배를 강 위에 띄어주었다. N과 나를 향해 앞으로 먼저 가보라고 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배 위에 앉았다. 노를 저었다. 배가 뒤로 가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N이 세게 저어보자고 했다. 배가 뭍의 나무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조그만 선착장에서 아일랜드 커플과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아가고 싶었다. 배는 다시 다른 쪽의 뭍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뭍 앞 강 위에 조그맣게 잠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벌레들이 놀라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N과 나는 절규하며 노를 휘둘렀다.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이 여전히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도 돌아가고 싶었다.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210 | 1일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69 | 9일전
Consultation on Acti…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4 | 10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2 | 2025.12.10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4 | 2025.12.10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44 | 2025.12.10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2 | 2025.12.10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42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7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7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73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34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41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35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11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8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49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6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19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9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7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4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62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4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 더보기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31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