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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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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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조금만 산만해지면 뭐든지 간에 금방 잊어버려서 곤란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이래저래 무얼 하든, 무슨 말을 듣건 간에 항상 바짝 감각을 곤두세우고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는 바람에 신경이 늘 곤두서게 되고, 그래서 쉬이 피곤해진다.

좋아하는 것에 관련된 정보는 거의 절대로 잊지 않는 편이지만 (한 때는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기도 했었다), 반대로 관심이 없는 건 좀 심하게 쉽게 잊어버린다. 이쯤 되면 일부러 그러는 거지? 싶을 정도로. 양심 불량은 아닌가, 싶어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미안합니다, 고의로 그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망각. 옛날의 모든 부끄러운 일들도 잊지 못하게 되어도 좋으니,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바라곤 한다.

주변인들의 말마따나, 뭐든지 그 자리에서 듣고 그 자리에서 까먹어버리면 나야 편하지만 정작 괴로운 건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고, 일을 부탁하면 앗차, 까먹어 버렸다! 라며 대답해버리는 데에야, 웬만한 사람들은 복장이 터지겠지.

그래서, 요즘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한 번만 말해도 이해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그 방법 중 하나는 상대의 말이 끝나면 바로 따라서 똑같이 반복해 말하는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처럼. 좀 바보 같아 보이긴 해도 의외로 확실히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요령이다.

아니면, 부탁을 받을 경우엔 받은 직후 바로 그 맡은 일을 해치워버리는 게 있다. 그러면 기억도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는 일이 빨리 처리되니 기쁘겠지. 조금 번거롭긴 해도.

내가 가장 약한 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키는 것. 자주 보거나 특별히 인상 깊은 사람이 아니면 목소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무례하게 보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럴 땐 식은땀까지 줄줄 흐른다.

전화를 싫어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긴장하게 되어버리는데, 누군들 만나고 싶을까.

이런 나의 건망증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거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차리면 매우 기뻐한다. 드디어 기억해줬구나! 라면서. 그럴 땐 매우 쑥스럽고, 조금 뿌듯하고, 그리고 아주 많이 부끄럽다. 당연한 일인데도 나한텐 그게 당연하지 못하고,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

가끔 성격이 안 좋거나 성질 급한 사람들은 화까지 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무척 미안하고 당혹스럽다. 나도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데, 하고.

나 개인적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건 조금은 섭섭하지만 그렇게 마음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이름을 두 번 세 번 물어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답해준다. 어차피 그렇게 기억되고 싶지도 않고.

자기가 하는 말이든 지시든, 아니면 본인 자신이든 간에, 남에게 잊혀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필멸성이 무의식 중에 그 무엇보다도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인간성이. 비록 사람의 기억이란 모래보다도 더 지워지기 쉬운 것이라고 해도.

웃기는 건, 난 사람보단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더 잘 기억하고, 정작 그네들은 자기들이 기억되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단 것일까. 그런 점에서 좀 더 자유로운 동물들의 기억에 대한 지각이 부러울 따름이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또 잊어버릴지 난 가늠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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