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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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江(Ⅰ)

0 개 1,580 박지원
등산이 인생이다,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때때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혐오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을 못 오르는 편은 아니고, 오히려 아주 잘 오르는 축에 가깝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별 건 없었다. 등산로는 이렇게 평탄하고, 아무 생각없이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왜 이걸 인생이라고 할까. 낮은 곳에 올려다보면 정상에서 평지로 내려오는 아주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던 산이, 내 발 밑으로 오면 볼 수 없는 것도 슬펐다. 이렇게 경치를 볼 거면 헬기를 타겠다. 즉, 어떤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산을 인생에 비유하고 싶다면 히말라야를 가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린, 아마 조금 철없고 어린 나로써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오히려 인생이라면 인생일 수 있겠다. 죽음과 물리적 고통에 대한 공포와 맞서 싸우며 쾌감을 느끼는 순간순간. 그 순간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이 되고 스스로가 풍경으로 뛰어 들어가는 인간의 의지. 오히려 이러한 것이 인생에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를 할 기회는, 아직은 내 두려움이 떡하니 막아서고 있다.

강. 북섬의 왕가누이 강(아마 퐝가누이라고 표기해야겠지만)을 요번 연말여행지로 택한 것은 실은 인생 운운 따위 이유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江은 물과 소리 음이 만나서 표기된다. 나는 잔잔한 소리가 나는 물을 상상했고, 여자친구 N 또한 그러했다. 정말 한강에서 한가로이 노를 저으며 가끔 새들한테 밥 주고 배 위에 나란히 앉아 도시락 까먹는 것을 떠올렸다. 우선 가격도 저렴했고, 5일 간 장소를 옮겨가며 강가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약간의 자료조사와 예산정리 후 클릭 몇 번으로 예약을 마친 후 우리는 성탄절 휴가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중간에, 뉴질랜드에서 캠핑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예행연습 겸 키위친구들과 하루 캠핑을 떠났다. 음식들, 술들, 한가로움, 한밤 중 포썸의 눈빛들.. 모든 것은 완벽했다. 우리는 다시 성탄절 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텐트와 큰 배낭 두 개를 각자 메고 N과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유럽인들은 어떻게 이걸 메고 걷는 거지? 툴툴거리던 N과 나는 무사히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짐을 싣고, 버스가 출발했다. 불스라는 곳에 들러서 버스를 갈아타고, 오하쿠니에 도착하기까지 총 다섯 시간이 걸렸다. 졸다가 눈을 뜨고 창밖을 보면, 하얀 양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것처럼 초록의 벌판에 흩뿌려져 있었다.

도착했다. 오하쿠니에는 몇 개의 레스토랑과 몇 개의 백패커들이 있었다. 나는 개척도시의 초창기 모습 같다고 생각했고, N은 가방이 무겁다고 했다. 우리는 예약해놓은, 배와 장비들을 대여해주는 예티투어에 들렀다. 빨간 페인트를 칠해놓은 배를 간판 삼아 지붕 위에 올려놓은 그 곳은, 강물 냄새가 나는 컨테이너 박스 느낌의 사무실 겸 창고 같은 곳이었다. 대머리 아저씨가 유행 지난 남방과 반바지 차림으로 우리에게 공부를 하라며 지도를 복사해주었다. 지도는 빼곡하게, 이 지점은 유속이 빠름, 이 지점은 돌이 많음 등의 지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씨도 너무 작았고, 하여간에 읽기 힘들게 빼곡했다.

대머리 아저씨가, 5살 아이만한 배럴 여섯 개를 배에 실을 수 있다고 말하며 파란 드럼통들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그것은 마음에 들었다. 무엇인가 단단해보였기 때문이다. 두 개는 침낭, 두 개는 먹을 것, 한 개는 옷, 나머지 하나는 쓰레기통으로 쓰고, 텐트는 위에 올리면 이렇게 되지, 하며 배에 배럴들을 스트랩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오이

댓글 0 | 조회 1,701 | 2012.11.28
그는 지금 웰링턴에서 가장 바쁘다는, 조그만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12평 남짓한 그 식당엔, 17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일본,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더보기

벙어리 장갑

댓글 0 | 조회 1,694 | 2016.05.26
너는 장갑이 싫다고 했다. 장갑이 왜 싫으냐, 물었더니 장갑은 다섯손가락 모두를 만들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만들기가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56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반뼘

댓글 0 | 조회 1,615 | 2014.12.09
새벽 6시 30분에 일을 시작했다. 오후 2시쯤 퇴근해서 밥을 먹고 멍 때리다가 친구가 의뢰한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작업을 했다가 밥을 먹었다가 작업을 했다가 … 더보기

침몰

댓글 0 | 조회 1,607 | 2014.11.12
“도” 음정이 맞지 않는 “도”가 또 한 번 울렸다. 청색 지붕, 처마 밑에 자리한 일곱 개의 검은색 확성기가 하늘 아래 햇살을 반사시키며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더보기

현재 江(Ⅰ)

댓글 0 | 조회 1,581 | 2015.01.29
등산이 인생이다,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때때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혐오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을 못 … 더보기

오늘

댓글 0 | 조회 1,575 | 2014.06.11
뜻하지 않은 일로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뭐랄까, 먹는 것보다 싸는 게 더 힘든 느낌이 든다. 오늘. 예정대로라면, 나는 발매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뮤직비디오 편집…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61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56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복종과 공격

댓글 0 | 조회 1,513 | 2012.12.24
1998년 6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빌 클린턴 앞에서 진정한 하의실종을 보여줬다. 당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했었던, 이 가학적이면서도 키치…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504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6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질의응답의 시간

댓글 0 | 조회 1,479 | 2012.10.24
CV만 40장째였다. 차가운 웰링턴의 바람만큼이나 핸드폰 수화부에도 스산한 침묵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포화상태를 이룰 때쯤,… 더보기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8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56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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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48 | 2014.07.22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 처음 내가 접했던 종교는 불교였다. 10살 무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던 산 속의 어느 조그만 절. 그 절은 정말 깊은 산 구석에 있었는…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42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江(Ⅲ)

댓글 0 | 조회 1,440 | 2015.02.25
노로 어떻게든 뭍을 박차고 배의 방향을 겨우겨우 돌려, 우리는 다리를 저는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21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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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08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403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작업기(Ⅳ) 기다림의 결과

댓글 0 | 조회 1,399 | 2015.03.25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과정을 모르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그러하다. 마치 누군가가 미래의 로또번호를 가르쳐주긴 했는데 몇 회 차인지 가르쳐주지 않…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4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

찌꺼기 혹은 빛나는

댓글 0 | 조회 1,362 | 2012.11.14
그는 J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한국에서 다니던 영화 관련 직장을 때려 치우고 외국으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뒤이어 그는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워크비자 … 더보기

얼굴

댓글 0 | 조회 1,361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