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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0 개 2,056 박지원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쓰는 생활을 마감한 것이 14살 때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드디어 내 방이 생겨서 너무도 기뻤지만, 집이 좁은 탓에 부모님의 옷장이 내 방에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으면 웃풍 때문에 머리가 바람에 간간히 흔들렸고, 창틀과 문지방이 휘어있어서 창과 문이 잘 닫히지 않았다. 건물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집이었다.

독립을 원했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문틈으로 부모님이든 누구든 나를 볼까봐 두려웠고, 창문에 부착되어 있었던 열리지 않는 방충망은 - 창 밖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몰래 담배를 피웠던 나를 곤란하게 했으며,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서 백수상태였던 내게 동향의 창문은 가뜩이나 싫어하던 아침을 지독히도 싫어하게 만들었다. 방 벽에 가학적인 낙서를 했다. 그것을 보신 부모님은 낙서 위에 세계지도를 커다랗게 붙이셨다.

지금처럼 인테리어 정보가 가득한 포털사이트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무렵이었기에, 나는 티비나 영화 같은 것에서 보았던 것들로 내 방을 꾸몄다. 방에 향과 촛불들을 피우고, 책꽂이를 종이 같은 것으로 가려 벽처럼 만들고, 고양이 인형 같은 것을 구입해 스탠드 위에 걸어두었다. 아침의 끔찍한 햇살과, 습한 웃풍, 문틈 사이의 불안 같은 것들이, 내가 만드는 방 풍경으로써 메워져 있었으면 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를 구하기가 쉬웠던 홍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드나들기 시작한것도 그 때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타면 2시간 넘게 걸렸던 그 곳에서 다양한 작가들과 동경할 만한 그림들과 색깔들을 만나 내 공간을 상상했다. 내 미래 공간의 목표는 차츰차츰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방향은 아주아주 요란할 것.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악취미스러운 화려한 공간. 다른 방향은 - 매우 간단명료할 것. 방에 들어가면 가구 같은 것은 침대와 책상 단 두 개만 보이게 할 것. 이를테면 극도의 미니멀리즘과 극도의 맥시멀리즘이었다.

스무살 첫 독립 후 나는 내 공간을 찾아 헤맸다. 아파트, 하숙집, 기숙사, 원룸, 옥탑방, 오피스텔, 반지하. 그나마 그 중에서는 오피스텔이 내 취향대로 그럭저럭 꾸며졌었다. 콘크리트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효과를 준 벽과 바닥, 옵션으로 붙어있던 TV는 치워버렸고, 오로지 책상과 기타, 침대만이 내 방에 있었다. 옷장은 베란다에 두었고 방벽에는 우쿨렐레 하나만 걸어두었다. 처음에 방에 놀러왔었던 친구들의 말들은 모두 한 가지 의견으로 통일되었다. 야, 정신병 걸리겠다.

정신병이 걸릴 법한 방을 나와 잠깐 본가에 머물다가 뉴질랜드에 왔다. 주당 120달러짜리 웰링턴시티 근처의 집이었다. 돌이켜보면 굉장한 곳이었다. 내 방만 유독 카펫이 없었고, 덕분에 구멍이 뻥뻥 뚫린 마룻바닥에서는 때때로 조그만 쥐들이 나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거기서 살아보겠다고 천장에 야광별을 잔뜩 붙이고, 책상도 만들어보고, 빨랫줄로 방구석과 구석을 이어보고, 2층 침대를 사서는 1층을 비우고 복층의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거의 창고 혹은 car park 수준이었던 그 곳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 명료하다고 판단했었다. 때문에, 내 멋대로 꾸미고 살았다. 그 곳에 살던 시절 잠깐 웰링턴에 놀러오셨던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니..”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때 만났던 그 곳의 landlord는 “방을 잘 꾸몄다”며 바로 보증금을 건네주었다.

지금 사는 곳도 꽤 잘 꾸미고 산다.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언제 어느 때라도 내 방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있다. 내 공간에 대한 확신. 예전에는 몰랐지만, 공간은 결국 자신을 보여주는 시각적 향수 같은 것이다. 내 방의 구조는 내 글과 같다. 나의 세계. 생각해보면 나의 음악도, 나의 영화나 글도, 모두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심플하거나 독특하거나 극단적이거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세계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지금의 내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의 세계를 내 스스로 방관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빛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도 같다. 내 세계의 실종. 그 말인즉슨 나를 향해 내가 쏘아 올린 수많은 조명들이 모두 까맣게 종료되고, 내 그림자를 버리고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비록 폐쇄적일지언정 간혹 나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내 공간을 꾸미고 만들며 사랑한다. 이곳과 이것은, 내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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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7 |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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