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와인을 만났을 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김치가 와인을 만났을 때

0 개 2,419 피터 황
534.jpg

한국인들의 음주문화는 술에 따라 안주가 정해지는 편이라면 와인 문화권은 음식에 맞춰 와인을 선택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마셔 온 와인은 당연히 음식과 어울림을 고려해서 발달해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음식의 가짓수만큼이나 와인 또한 수 천 수 만가지 일 수 밖에 없다. 와인은 신토불이처럼 같은 땅에서 재배된 재료로 만든 음식과 좋은 매칭을 이룬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마리아주(Marriage)라고 하며 서로간의 장점을 살리고 맛과 향을 최상으로 돋보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와인의 종류에 따라 음식과의 궁합은 전통적인 기본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다양한 응용은 마시는 사람의 몫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의 기본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라는 점과 와인의 주요한 구성은 단맛, 신맛, 떫은 맛 그리고 알코올이라는 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둘의 결합으로 맛을 상승시킬 수도 있고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와인의 알코올은 미각에서 느껴지는 무겁다거나 가볍다거나 하는 질감(Body)에 영향을 준다. 

와인을 마시는 전통은 없었지만 한국의 음식은 의외로 와인과 잘 어울린다. 우리 음식은 적당한 염분, 감칠맛을 주는 매운맛, 부드러운 단맛, 기분 좋은 신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풍부한 과일 향, 균형 잡힌 산도, 둥글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와인을 선택하면 실패는 없다. 먼저 와인의 매칭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주재료, 조리한 방식, 첨가된 소스나 양념이다. 대체로 우리의 육류요리는 레드와인과 잘 어울리고 생선과 야채는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 특히 제사나 명절 음식처럼 담백한 음식은 드라이하고 쌉싸름한 화이트 와인과 찰떡 궁합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자. 주물럭이나 갈비찜은 단맛이 있고 소스가 많은 요리이므로 타닌성분이 많고 풍미 있는 풀 바디(Full Bodied)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좋고, 불고기는 소스가 많으나 진하지 않으며 단맛이 있기 때문에 카베르네 멜로나 멜로와 같은 중간 정도의 밀도(Medium Bodied)를 가진 와인이 좋다. 삼겹살에는 가볍고 섬세한 피노누아가 좋고 매콤한 족발엔 카베르네 소비뇽이 제격이다. 레드와인의 타닌이 지방분해를 도와주고 풍부한 과일 향과 맛이 돼지고기의 냄새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로스구이나 등심구이는 과일 향이 풍부한 멜로, 통닭구이는 산뜻한 맛의 소비뇽 블랑이나 로제(Rose) 또는 부드러운 피노누아, 생선구이에는 산미와 떫은 맛이 적당히 있고 부케(Bouquet, 숙성된 향)가 강한 고급 샤도네이가 좋다. 야채를 위주로 한 음식은 상큼한 맛의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는데, 특히 신선한 봄나물이 듬뿍 들어간 비빕밥엔 그린 애플 향을 중심으로 짙은 과일 향을 가진 피노 그리스가 신선한 재료의 풍미를 살려주고 매운 맛은 덜 느끼게 해 준다. 결국 와인과 음식의 매칭은 상반성을 피하고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김치와는 어떨까? 서구의 술과 가장 한국적인 것의 만남은 의외로 묘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입안을 자극하는 김치의 맛깔스러움에 와인은 곧 바로 적응된다. 와인의 밋밋함과 허전함을 김치의 넉넉함과 감칠 맛으로 감싸 안는다. 특히 하얀 속살을 드러낸 백 김치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세련됨 앞에서 와인은 녹아 내린다. 담백함과 짭조름함, 게다가 고소함까지 백 김치는 와인의 쓴 맛을 포용한다. 

와인과 김치는 태생이 많이 닮아있다. 둘 다 발효음식이고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특히 각 지방의 특성과 풍토에 따라 와인과 김치는 팔색조처럼 변신한다. 김치의 백미는 충분히 숙성되면서 나타난다. 잘 익은 김치는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과일 같고 오미(五味)가 두루 갖춰지게 된다. 장독에 담겨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농익은 맛을 만들어 내는 김치처럼 와인 역시 숙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풋김치, 푹 삭은 김치, 신 김치와 같이 와인도 숙성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전해 주는 것이다. 

사실 맵고 새콤한 김치를 직접 와인과 매칭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약간의 각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김치에 들기름을 넣은 고소하고 매콤한 김치 볶음밥, 김치를 넣은 피자나 김치 빈대떡으로 변신시키면 쉬라즈나 쉬라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잘 익은 붉은 과일 향과 맵싸한 향이 넉넉하고 묵직한 타닌과 알코올의 균형이 정열적인 프랑스 론 지방의 기운을 전해주면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을 선사한다. 

탐욕에 눈이 먼 상인들로 인해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시대다. 하지만 김치 한 가지에 밥을 먹는 사람은 세상에 죄 지을 일이 없다. 그들에게 음식은 절실함이며 세상에 대한 정직함이고 당당함이다. 진수성찬, 산해진미를 찾는 이들이 세상의 죄란 죄는 모두 짓고 산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을 되돌이켜 보라. 음식은 현재 내 삶의 자세이고 본질이며 내 몸의 미래다.   

레드와인의 고관절, 타닌(Tannin)의 정체

댓글 0 | 조회 2,623 | 2012.02.15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벌이는 한판승부는 이제 처절한 몸부림을 넘어서 병적인 ‘몸매강박증’에 가깝다. 전국민의 빨래판복근, 식스팩을 조장하는 프로그램들이 앞을… 더보기

와인 매너 - 원 샷만은 참으세요

댓글 0 | 조회 2,620 | 2015.08.12
드라큘라 주는 폭탄주의 일종이라고 한다. 레드와인과 위스키를 원료로 만든 폭탄주의 사생아가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마시고 나면 입가에 흘러내리는 빨간색의 레드와인 … 더보기

FTA와 뉴질랜드 와인의 전망

댓글 0 | 조회 2,592 | 2015.07.15
인간이 땅(Earth)의 소중함을 잃어 갈 수록 뉴질랜드라는 국가적 브랜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위대한 자… 더보기

아는 만큼 느낀다 - 코로 와인 마시기(Ⅰ)

댓글 0 | 조회 2,495 | 2015.01.14
지구상에 존재하는 1만 여종의 포도 품종 가운데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인정한 양조용 포도(쎄빠쥬, Cepages)는 200여 가지, 하지만 실제로 와인제조에 사용되… 더보기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2,493 | 2013.12.10
풍류(風流)를 좋아하는 우리는 모이면 술을 곁들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야 직성이 풀린다. 예로부터 음주가무(飮酒歌舞)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술 익는 마을 마… 더보기

명품조연, 메를로(Merlot)의 생존법

댓글 0 | 조회 2,481 | 2014.07.09
언젠가부터 우리사회는 실패(失敗)가 인정되지 않고 그 아픔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최선을 다했어도 실패했다면 비아냥거리고 엿… 더보기

웰컴 투 보르도(Bordeaux)

댓글 0 | 조회 2,472 | 2015.11.12
세계와인의 표준, 프랑스. 와인 하면 어째서 프랑스를 세계 제일로 여기는 것일까? 이유는 와인을 만들어 온 역사가 깊다는데 있다. 로마인들이 갈리아를 정복하고 포… 더보기
Now

현재 김치가 와인을 만났을 때

댓글 0 | 조회 2,420 | 2014.10.15
한국인들의 음주문화는 술에 따라 안주가 정해지는 편이라면 와인 문화권은 음식에 맞춰 와인을 선택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마셔 온 와인은 당연히 … 더보기

왕년의 감기 퇴치법

댓글 0 | 조회 2,403 | 2020.05.13
편도선염이 심했던 초등학교 시절, 난 가장 먼저 감기에 걸리는 편에 속했다. 어머니는 한솥가득 보릿잎으로 된장국을 끓여 주셨지만 질기고 깔깔한 잎이 목에 닿아서 … 더보기

초콜릿을 사랑한 아이스(Ice)와인

댓글 0 | 조회 2,369 | 2016.07.14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닮아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초콜릿과 와인은 닮은 점이 많다.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 빈이 전혀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맛과 성질… 더보기

야식만만, 서바이벌 다이어트

댓글 0 | 조회 2,276 | 2015.04.15
운동을 통한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TV프로그램, 바디쇼(Body Show)의 등장은 당당하고 건강한 몸매를 원하는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대변한다. 다이어트는 … 더보기

피맛골 이면수와 막걸리(makgeolli)

댓글 0 | 조회 2,226 | 2013.09.11
일주일은 누구에게나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이지만 우리에겐 비가 오는 날을 뜻하는 비(雨)요일을 합쳐 모두 8일이었다. 비 요일은 언제나 다른 요일에 비해 우선… 더보기

부활과 언약의 피, 포도주

댓글 0 | 조회 2,209 | 2012.03.28
산타클로스의 선물에만 즐거운 것이 성탄절이 아니듯이 초콜릿 토끼를 먹는 날이 부활절은 아니다. 성탄절에도 부활절에도 주인공인 예수는 없고 상업적 목적만이 그자리를… 더보기

와인의 몸무게, Body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2,192 | 2016.10.11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봄 햇살을 즐기며 풀숲에 평화롭게 누워있다. Fat Cat, 이 그림이 그려진 와인을 마신 후에 느껴지는 느낌이 상상이 되는가? 이 그림을… 더보기

카베르네 소비뇽, 강한 것은 부드럽다

댓글 0 | 조회 2,190 | 2013.11.12
차창 밖에서 코끝에 익숙한 고기 굽는 냄새가 와 닿았다. 연기에 섞여 나오는 바로 그 냄새,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달달 한 맛, 주머니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던… 더보기

소주(燒酒)의 씁쓸함에 대한 몇가지 단상(斷想)

댓글 0 | 조회 2,186 | 2012.04.24
옛 어른들은 술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꺼렸던 모양이다. 반야탕, 곡차, 미록,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의 망우물 그리고 현재도 점잖은 말로 약주라고도 한다. 은유적인… 더보기

속도중독, 느리게 살 수 있는 용기

댓글 0 | 조회 2,131 | 2016.09.15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 느리게 따라가다 보면 상위무리에서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이 모두를 괴롭힌다. 근면한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이 지금의… 더보기

테루아, 다르다는 것의 가치

댓글 0 | 조회 2,128 | 2012.02.29
빨간라면국물의 통념을 깨고 성공을 거둔 이경규의 꼬꼬면을 두고 사람들이 이유를 주목하고 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 더보기

빈티지(Vintage), 타이밍의 미학

댓글 0 | 조회 2,097 | 2015.02.11
8090년대 거대한 문화복고의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다. 쇼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옛 가수들의 콘서트가 불씨가 되어 영화, 음식까지 청년세대뿐 아니고 장년층까지 어려… 더보기

창업노트(Ⅱ) 베껴라 그리고 창조하라

댓글 0 | 조회 2,092 | 2014.11.11
창업을 한다고 누구나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아이템을 독특하게 포장해야만 한다. 그래서 벤치마킹의 일환으로 시장조사가 매우 중요… 더보기

쉐리(Sherry)와 포트(Porto)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26 | 2012.05.22
가정의 달, 5월이 간다.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제위기로 붕괴되어 가는 가정, 그속에서 무한경쟁의 불안감으로 흔들리는 아… 더보기

심장(心臟)도 근육이다

댓글 0 | 조회 1,973 | 2014.06.11
문제는 두뇌(頭腦)가 아니고 심장이다. 심장은 온몸에 피를 돌게 하는 엔진이다. 인간의 몸이든 국가(國家)든 심장부가 있게 마련이다. 애당초 병약한 심장을 가지고… 더보기

악마의 유혹, 샴페인(Champagne)

댓글 0 | 조회 1,970 | 2012.06.12
거품이 나는 음료는 다양하다. 소풍날 싸가던 김밥에도 소화제를 대용해 사이다와 콜라가 함께 있었다. 수 많은 거품 방울들이 목을 간질거리며 트림을 만들어내고 식사… 더보기

광화문에서 나는 숲을 보았다

댓글 0 | 조회 1,955 | 2016.12.06
세상 모든 것이 모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냐고 들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굶을 때면 제일 무서운 것이 그 목구멍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먹을 수만… 더보기

돈으로 고상함을 사지말라

댓글 0 | 조회 1,934 | 2012.01.31
‘비쌀수록 잘팔린다’는 귀족배짱마케팅이 시장에 적용된지는 오래다. 심지어 수십만원하는 네모난 수박이 없어서 못팔정도이고 천문학적 숫자의 금띠 두른 속옷코너를 싹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