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기대

0 개 1,754 박지원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아래, 내 몸 어딘가에 내리고 있었다. 남들이 부추겨놓은 나의 잠재, 무심코 던진 한 가닥 한 가닥의 희망들이 거대한 빛이 되어 구름 사이를 가느다란 커튼의 흔들림처럼 내 안을 훔치고 들어올 때, 나는 몸서리치며 괴로워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다짐하고는 했다. 남들이 거는 기대에 의존하지 말아야지, 그 기대를 따라가려는 사람이 되어야지.

때때로 그 기대는 기회처럼 내 삶 어딘가에 나타나 나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은 어두운 심연 속에 빛나는 하나의 기회이자 용기와도 같았다. 남들이 모르는 은밀하고 사소한 용기. 아직도 나를 버리지 못한 거울 속의 나는,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커다란 조각 같은 것에 갇혀있었다. 거짓 자존심의 크기는 비참함과 반비례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비참함은 다시 허망함의 무게와도 같은 자리에 놓인다. 생각해보면 모두들- 한 순간 한 순간을 어떤 기대감을 가진 채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기대감을 부추겨줄 도구인, 용기를 가지고 싶어 구름 속을 헤엄쳐 들어거면, 때때로 그 곳에 다다랐을 때의 손끝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패배감이 거미줄처럼 엉켜들었다. 너무 너무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라 누군가에게 말할 수조차 없는 그런 용기. 모두에게 그런 것들이 있다. 모두에게 그런 사실이 있고, 모두에게 그러한 결과들이 있었을 것이다. 엉켜있는 거미줄처럼, 풀려하면 되레 찢겨져 산산조각나는 그런 단단해보였지만 허망한 용기들. 결과물들.

그러한 용기들이 나를 채찍질하는 기대로부터 온다. 희망으로부터 온다. 절망으로부터 온다. 그러한 희망과 절망은 흩날리는 비처럼 나를 아프게 한다. 나를 달리게 한다. 나를 헤엄치게 한다. 구름 낀 거리의 머릿속은 지독한 악취로 가득 찬다. 창문에 비칠 정도의 악취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아, 나는 또 한번 자책한다. 이게 아니었는데. 과정 중에 지독한 오류가 생기고, 착오가 생긴다. 세상과의 타협과 세상을 향해 가져야할 오만함과 겸손의 은밀함이 뚝뚝, 분절되어 불붙은 수수깡처럼 알록달록 녹아내린다. 이쯤되면.

이쯤되면 기대가 그저 희망인지 희망사항인지 혹은 그저 자발적인 강박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희망의 목적을 다잡고자 애쓴다 해도, 그것이 늘 변치않는 상태로 고정되어있기는 힘들다. 상황은 시시각각 “거의 강박적으로” 변하고, 재빨리 움직이는 만큼 유연해져야하는데 쉽지는 않다. 또한 머리에 구름이 있든 악취에 가득 차 있든 그런 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결국 세상이고, 세상과 함께 걷기에는 아직 나의 그릇이 작다. 세상으로 달려들어야만 내가 세상과 함께 걷는 사람이 된다. 내가 세상을 걷게 만드는 세상이 된다. 조그만 어항에서는 고기가 끝끝내 자라지 않는 것처럼. 그 물고기는 어항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어항을 바꿀 수 없다. 멈출 듯 하는 아가미를 거칠게 헐떡이며 낯선 땅을 헤집고 나가야만 거대한 물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실상 운도 좋아야만 한다.

내 머릿속에는 황금빛 물고기 비가 내린다.

내 머릿속에는 헐떡대는 아가미들이 출렁거린다.

온갖 기대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시적 침묵에 빠진 회색빛 군중처럼 잠영(潛影)한다.

나는 또다시 머릿속 구름의 편안하고 불안한 대기 속으로 숨어버린다.

댓글 0 | 조회 2,061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더보기

공간

댓글 0 | 조회 2,057 | 2014.10.30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2,024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 더보기

혼란: 독재의 잔재

댓글 0 | 조회 2,005 | 2014.04.09
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8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1,981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1,974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 더보기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댓글 0 | 조회 1,971 | 2014.08.13
영화제의 분위기는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단편영화 섹션이 그렇다. 상기된 표정의 감독들과 스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 평소 영…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956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942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 더보기

운동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댓글 0 | 조회 1,934 | 2014.07.08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이란 것을 키워봤다. 펑크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비쩍 마른 몸을 좋아했다. 44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상체에 디올옴므 모델과도 같은 …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1,928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더보기

영어

댓글 0 | 조회 1,925 | 2015.01.13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외국인에게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던 것이 비결 아닌 비…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6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상류

댓글 0 | 조회 1,901 | 2014.11.26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이다. 지금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와, 이것저것하며 돈을 모은 뒤 지금은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1,876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1,844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9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1,822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6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현재 기대

댓글 0 | 조회 1,755 | 2014.09.24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더보기

江(Ⅱ)

댓글 0 | 조회 1,731 | 2015.02.11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7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7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