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아버지 그리고 갈대와 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추억속의 아버지 그리고 갈대와 나

0 개 1,576 오소영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설 때의 일탈감은 늘 새로워 설레이게 마련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던 고집은 어디에다 숨겨 버렸을까?..

그 곳을 지날 때는 항상 반겨주는 나만의 친구(?)가 있다. 길게 기찻길을 따라 도열해 있는. 하얀 갈대들의 너울 춤에 반해 그들을 친구 삼은지가 오래 되었다. 짜릿한 낭만속으로 풍덩 빠져들게 하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불현듯 변덕을 부리고 나선 길이다.  

사실 지금은 제철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의식속에 자리잡은 추억이라도 더듬고 싶었다.  

출발지에서 먼저 타신 분들이 반겨주는 가운데 버스에 올랐다. 혼자서 넓은 창을 차지해 마음껏 자연을 끌어안을 수 있는 행운의 좌석이 뒤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좋은 자리가 나를 기다려 줄줄은 정말 몰랐다.

단체여행이란 언제나 시끌벅적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늘 보던 만남이지만 오늘은 좀 색다른 기분으로 톤이 다소 높은 잡담들로 떠들석했다. 어느 남자 어르신께서 조용히 좀 하라고 한 말씀 하시어 분위기를 갈아앉혔다. 집 나서면 그래서 좋은 여자들의 마음을 못 참아주시는구나 하고 혼자서 웃었다.

한바탕 거친 비가 쏟아질 것 같이 잔뜩 내려앉은 잿빛하늘. 들판에 질펀이 깔린 초록의 융단은 눈을 마냥 시원하게 해 준다. 버스는 정신없이 달리고. 창 밖으로 핑핑 달아나는 풀을 뜯는 검은 소들. 흰 양떼들을 만나면서 아주 멀리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시 여행고픔의 허기를 달래주기도 한다. 잠깐만 맘 먹고 나서면 느낄 수 있는 이 평화로운 풍광을 왜 우리는 자주 접하지 못하고 혼탁하게만 사는지?...

드디어 내 기다림의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휘청거리는 길다란 몸에 미친듯이 너울거리는 흰 머리카락. 감질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친구들 갈대. 여자의 변심을 갈대의 마음이라고 흔히들 비유하지만 나는 그렇게 가녀린 몸으로도 꿋꿋하게 허공에 떠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당당하고 멋져서 늘 경외스러움으로 좋아하고 즐긴다. 나그네의 마음을 휘어잡고 낭만을 일깨우는 기찻길 옆 갈대들. 한번도 지나치는 철마(鐵馬)를 본적없는 외로운 길인데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변함없이 지키고 있질 않은가.   

“너는 마치 갈대를 닮은게야. 왜 그리 가늘어. 힘이 있어야 거친세상 살아내지” 허약함을 타고난 딸의 모습이 안쓰러워 하시던 친정아버지의 걱정이셨다.

그런 동질감 때문일까? 내가 갈대를 좋아 하는건... 힘쓰며 사는 일은 안 해보고 살았기에 모르겠지만 비록 빈(貧)티나는 휘청거릴망정 지금까지 잘도 살고 있는데... 아버지 가신 나이보다 훨씬 긴 세월이 지나갔다. 내게 유난히 사랑이 깊으셨던 자상한 아버지. 왜 그리 서둘러 일찍이도 저 세상 가셨는지 모르겠다.   

아득하게 추억속으로 멀어져 간 아버지가 오늘따라 어린애처럼 그리워진다.   

며칠 전 추석 성묘하며 남동생이 찍어 보내준 어머니 묘소가 생각났다. 먼저 화장(火葬)으로 모셨던 아버지와 합장(合葬)으로 계신 묘소다. 묘소앞에 심어놓은 어린 화양목이 많이도 자랐다고 대견해 하는 동생에게 면목이 없었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불효여식을 꾸짖는 것으로 들려 한동안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다.

이 때다. 누군가 내 꿈을 깨는 사람이 있었다. 종아리에 이물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을 때다. 건너편 좌석에 앉으신 어르신이 내게 뻗어왔던 지팡이를 걷우시며 손을 내밀어 뭔가를 건네주신다. 혼자서 창밖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내가 고독해 보이셨을까?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허허로워 하는 내 기분을 빨리도 알아차리셨다. 손바닥을 펴 보니 우유빛깔 잴리 두개. 그 것을 입 안에 살며시 넣었을 때. 웬지 옛날 아버지의 체취같은게 절박하게 느껴졌다. 만날 때마다 애들을 챙기듯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시는 정말로 아버지같은 자상한 분이시다. “고맙습니다.”

여행은 별것 아닌 사소한 것으로도 감동받고 현실과 먼 딴 세상과도 소통할 수가 있어 늘 좋다. 새로움을 경험하고 지나간 일들을 반추하면서 낭만이라는 멋진 말로 즐긴다.

바람처럼 바쁘게 스쳐가는 갈대들의 향연. 그들은 이 길을 지나칠 때 마다 흘리고 가는 내 마음속 여백의 말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하얀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는 속에서 문득 언니의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언제나 어머니처럼 동생을 챙겨주는 언니. “타국생활 혼자서 어떻게 사느냐고 잘 챙겨먹고 살라”고 신신당부 하신다. 형 만한 아우 없다더니 나는 언니께 해 드린게 없다. 그냥 열심히 살면서 그 분을 편케 해 드리자는 마음뿐. 언니의 머리카락도 이제 하얀 갈대를 닮아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언니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제철엔 무더기로 어울려 군무를 출 그들.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꽃처럼 예쁜 아름다움이 없어서 사랑받지 못해도 항상 그들 위에 군림하는 위엄이 멋지다. 모진 바람에 휘청거려도 결코 쓸어지지않는 강인함도 나는 좋다.  

막힌데 없는 허공에서 맘껏 춤을 추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갈대들. 그 영혼을 닮아 살고싶다.

6월, 겨울꽃이 더 고운 이유

댓글 0 | 조회 1,404 | 2019.06.25
6월.“내가 이렇다구...”5월의 바톤을 넘겨받은 첫날부터 무섭게 엄포를 놓으며 달겨들었다. 사나운 돌풍과 더불어 기세가 대단했다. 매일 비를 뿌린다. 종잡을 수… 더보기

그 특별했던 날의 긴 하루

댓글 0 | 조회 1,407 | 2017.08.22
평상시 외출에는 버스가 마냥 편하다. 그 날은 상황이 달라서 서둘러 차를 몰고 나서야 했다. 며칠전, 새로 개통된워터뷰(water viwe)터널을 신선한 기분으로… 더보기

사탕, 달다

댓글 0 | 조회 1,422 | 2017.06.27
우는아이 달래주고 웃는아이 울리기도 하는 달디단 사탕. 달콤한 말로 남의 비위를 맞추어 살살 달랜다는 사탕발림이란 어른들의 말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사탕 하나가… 더보기

‘모스크바(MOSCOW)’의 하얀 밤(白夜)에 깜짝 선물을 받다

댓글 0 | 조회 1,453 | 2019.01.30
2012년 8월 어느날. 친구 C와 나는 인천공항에서 SU(러시아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삼년동안이나 별러서 이룬 여행이었기에 두 사람은 많이 들떠 있었다.나는 … 더보기

아기처럼 웃고 살고싶다

댓글 0 | 조회 1,482 | 2017.01.25
유모차에 실린 아기가 버스에 올랐다. 머루같이 까만눈이 초롱초롱하다. 커다란 눈속에 많은 것을 담으려는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눈이 마주치자 낯가림도 없이… 더보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댓글 0 | 조회 1,496 | 2014.08.27
오늘은 예순 아홉번 째로 맞는 ‘광복절(光復節)’ 입니다. 여기는 지금 한겨울, 팔월의 칼바람속을 산뜻하게 때묻지 않은 새 ‘태극기’가 하늘을 향해 팔랑거리며 올… 더보기

모자(帽子)의 여인

댓글 0 | 조회 1,505 | 2016.05.26
외출 할 때마다 항상 모자를 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멋을 내기 위함인줄 알고 흔히 ‘멋쟁이’(?)란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천만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 더보기

28세 천방지축 신림동 땡칠이​

댓글 0 | 조회 1,510 | 2018.04.24
가을비 촉촉히 내리는 날 따끈한 커피 한잔 들고 무료히 창가에 앉으니 별별 일들이 다 떠오른다.반세기도 전에 살았던 신림동의 한 세월이 떨어지는 빗속에서 스멀스멀… 더보기

자만인가, 착각인가

댓글 0 | 조회 1,516 | 2017.02.22
평생을 살집없는 몸매로 튼실한 부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젊었을 때는 날씬(?)하다는 부러움으로 그런대로 살만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쪼그라드니 이젠 배곯고… 더보기

엘리자벳이 남긴 선물

댓글 0 | 조회 1,516 | 2020.10.28
회초리같던 어린 장미가 이젠 나무가 되었다. 어느새 그리 자랐는지 실하게도 컸다. 옆집 할아버지 지팡이 만큼이나 굵어져서, 번들거리는 윤끼에 날카로운 가시가 보기… 더보기

검은마대(麻袋) 바지 ‘몸빼’ 그리고 달달이

댓글 0 | 조회 1,531 | 2018.12.21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주름진 나일론 천에 알록달록 꽃무늬가 요란스럽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라고 ‘라벨’이 붙은 몸빼 바지다.말 그대로 편하기로 치면 그… 더보기

특별한 감사를....잘가요 2020년

댓글 0 | 조회 1,543 | 2020.12.23
'감사! 또 감사!! 2020년에는 20배로 더 웃자’금년초, 내 카톡 프로필 란에 써놓은 메세지다. 꼭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강한 마음의 소리였음은 두말할 나… 더보기

과격한 사랑

댓글 0 | 조회 1,545 | 2020.01.29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처럼 곱고 아름다운 여인은 본적이 없다.요즘 배우나 탈랜트중엔 비길만한 미인이 많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형으로 만들어낸 인물들도 있어… 더보기

‘렌’을 처음 만나던 날

댓글 0 | 조회 1,546 | 2019.03.27
주말오후 말동무 오랜지기와 나란히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급환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나왔다는 친구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더보기

ㅎㅎㅎ 웃자구~요

댓글 0 | 조회 1,548 | 2020.09.22
코비드19란 요물인지 괴물인지가 사람들 발을 묶어 바쁜 생활인들을 일시에 집 안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제 모두가 지쳐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러 길에 나다니는 … 더보기

꽃보다 어여뻐라, 민경씨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1,557 | 2022.03.22
작년 1월이었다. 견딜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보려는 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계절 바뀌면 포근하게 입으라고 바지 몇개를 준비해 평소처럼 우체국으로 갔더란다. 그런데 … 더보기

연둣빛 행복이 움트는 목장을 가다

댓글 0 | 조회 1,557 | 2020.11.24
11월 중순 지금보다 더 포근하고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구월 어느 날이었다. 길을 나설 때면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은 예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 더보기

구공탄 2개 그리고 빨래판

댓글 0 | 조회 1,567 | 2019.07.23
백발이 성성한 칠십대 사촌동생이 늙은 누나를 부추겼다.자기 부모님들 옛날 행적이 궁금해서 알고 싶어 했다. 일찍 저 세상 가신 아버지의 한(恨)이 아직도 가슴속 … 더보기

뱃길 삼십분

댓글 0 | 조회 1,568 | 2018.03.27
뱃길 삼십분은 짧은 여행길이다.쾌적해서 기분좋게 타는 훼리(ferry). 감질나고 아쉽다.특별한 볼 일이 없으면 마냥 누워서 뒹구는 날이 있다. 그러나 편한 것은… 더보기

잔인한 달, 나의 4월

댓글 0 | 조회 1,576 | 2017.05.23
4월 1일은 만우절(萬愚節)이다. 누군가 실없는 말로 내 웃음보를 자극해 올 것만 같은 기대로 첫날을 맞았다.고국은 지금 봄이 무르익는 좋은 계절이다. 울긋불긋 … 더보기

현재 추억속의 아버지 그리고 갈대와 나

댓글 0 | 조회 1,577 | 2014.09.23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설 때의 일탈감은 늘 새로워 설레이게 마련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던 고집은 어디에다 숨겨 버렸을까?.. 그 곳을 지날 때는 항상 반겨…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1,584 | 2014.12.23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서. 지나 온 나날들을 뒤돌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일년동안의 과제를 마치고, 추수를 끝낸 느긋한 농부의 마음으로 새해 맞… 더보기

“텔미”야! 같이놀자, 우리가 뛰거든...

댓글 0 | 조회 1,586 | 2018.11.27
“너도 날 좋아 할 줄은 몰랐었어 어쩌면 좋아 너무나 좋아...”귀가 간지럽게 민망하고 깜찍한 노래다. 가사를 가려 듣기에도 번거로운 빠른 템포는 또 어떻고...… 더보기

땡 할비 꽃밭

댓글 0 | 조회 1,597 | 2019.11.26
할아버지 집에 며칠째 인기척이 없다. 커튼도 젖혀진채 그대로인데...아침 7시면 어김없이 쇼핑가방을 들고 집 앞을 지나시는 분이다. 늦잠으로 게으름을 좀 떨다보면… 더보기

쉼표없는 낭만이정표

댓글 0 | 조회 1,599 | 2020.07.29
‘코리아 포스트’가 지난달 6월에 창간 28번째 돌을 맞았다고 한다.늦었지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21번째로 접어든 내 필력(筆歷)도 자축을 겸한다.‘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