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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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0 개 1,971 박건호
영화제의 분위기는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단편영화 섹션이 그렇다. 상기된 표정의 감독들과 스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 평소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단편영화에 익숙치않은 관객들이 웅성거리며 앉는다. 손가락으로 브로슈어 위에 인쇄된 영화제목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죽인 기대감에 대한 속삭임이 은은한 극장 속 조명 아래로 퍼져나간다.

단편영화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모두 화면 속으로 집중한다. 뇌에 대한 자발적 폭력의 공간은 때때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올해 뉴질랜드 NZIFF의 단편영화들은 <Eleven>, <UFO>, <School Night>, <Over The Moon>, <Cold Snap>, <Ross & Beth>.. 총 여섯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여섯 번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마다 이루어진 박수소리들은 개개인들 머릿속 태엽소리처럼 들려왔다. 장편영화와는 달리 호흡이 짧기에 그만큼 더 네러티브의 치열한 응집력을 가져야만 하고, 소재 하나에 모두를 집중시키게 만들어야 하는 단편영화들의 매력. 어떤 블록버스터영화보다도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뉴질랜드에 온 이후에는 1년에 한 편 정도의 단편영화를 찍고 있지만,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많게는 다섯 편, 적게는 세 편을 연출했었다. 혼자 찍기도 했고, 50명의 스텝들과 함께 찍어 보기도 했다. 액션, 실험, 퀴어물, 스릴러, 로맨스 등등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영화장르를 했다. 보통 시나리오 쓰는데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네 달이 걸린 영화도 있었고, 촬영도중 지붕이 무너져서 아찔했던 경험, 제작비 부족으로 시나리오 세 장을 대사 하나로 처리해야했던 일들.. 결론적으로 영화는 내가 했던 혹은 하는 활동 중 가장 고통스러운 분야이며, 가장 오기가 생기는 분야이다. 영화제작이 끝난 후 시사회에 “감독 자격”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후회에 빠져든다. 내가 왜 저걸 저렇게 찍었지? 왜 저기서 저 대사를 저렇게 치는 거지? 편집점을 왜 저렇게 잡았지? 그리고 시사회가 끝나고 다시 보완하고 다시 찍고, 다시 자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하고, 다시 찍고. 한 3편정도 찍었을 때, 그런 자문자답을 촬영현장에서 하게 되었고, 6편 정도를 완성했을 때는 세상이 물음표로 가득찼다. 해가 뜨면- 저 해를, 저 색깔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찍을까. 먼지 같은 것을 보면- 매크로렌즈, HMI, 포커스, 드라마.. 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나 같은 경우는- 그 후로 영화도 잘 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 현장 Budget이 먼저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렀었으니까. 50명의 스텝들 중 25명이 나를 욕하고, 25명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던 그 상황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인생에게, 더욱이 아직 20대 초반이었던 그 때 내게 영화현장이란 너무 힘든 곳이었다. 또한 고백컨대 내 영화를, 내 표현을 세상의 한켠에 둘 수 있다는 것. 초당 몇 프레임으로 그려낸 내 생각이 어떤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거나 자극이 된다는 것은 내 삶에게 던져질 수 있는 특별한 위로였다.

나의 영화들을 포함한- 한국 단편영화들에 비하면 뉴질랜드 단편영화는 확실히 “독하게 찍었겠구나” 하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크레딧을 보면, 한국에서 5명이 찍을 수 있는 영화를 여기서는 30명의 스텝들이 찍으니까. 그렇지만 아시아의 많은 단편영화처럼 헐리웃의 스타일이나 특정감독의 스타일들을 숨가쁘게 따라가는 영화는 보이지 않았다. 감독 개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편이고, 전체적으로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는 않는 유연한 단편영화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런저런 단편영화들을 볼 때마다- 내가 나에게, 다시 영화 한 편 해보자, 라고 채근하듯 심장이 뛰는 것이었다. 내 자신에게 슬프고 웃기고,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열망과 체념, 증오와 애정이 들끓는 것이 직업이 된다면 혹은 직업이 되었다면 나는 내 자신에게 조금 덜 미안할 수 있었을까. 혹은 덜 고마울 수 있었을까.

어떤 일이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세상의 규칙이라면, 늘 나 자신을 0으로 맞추고 사는 것이 행복한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각자 갖고 있는 내 안의 소재가 0을 중심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단편 영화의 방법론처럼. 한없이 자유로운 빛의 파동. 골똘히 생각하는 그림자.

나는 0의 침묵을 조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 0 위의 시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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