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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0 개 1,768 박건호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 처음 내가 접했던 종교는 불교였다. 10살 무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던 산 속의 어느 조그만 절. 그 절은 정말 깊은 산 구석에 있었는데, 절이라기보다는 암자에 가까운 곳이었다. 아스팔트가 없는 흙길 위로 여름이면 뱀이 스멀스멀 지나다녔고, 겨울이면 소리없이 다녀간 토끼와 노루의 발자국을 볼 수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산짐승들의 발자국 꿈을 꾸며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부모님은 안 계시고 스님이 계셨다. 

겨울, 선선한 풍경소리 위의 갈색마룻바닥을 쭉쭉, 목탁처럼 규칙적으로 닦았다. 나는 오후의 불경소리가 좋았다. 햇살은 적당히 따사롭고 공기는 차갑다. 문풍지는 가만가만 떨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불경을 듣고 있으면, 그냥 그 박자라든가, 멜로디의 어떤 규칙성이 마음에 들었었다.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부모님은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날 이후 조그맣던 절은 조금씩 변해갔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몇몇 의견을 무시한 채 가파른 절의 입구에 크기가 애매한 돌계단을 설치했고, 굉장히 낡았던 절도 곧 리모델링을 하겠다고 하였다. 절이 워낙 가난했기에 신도를 늘리고자하는 마음이었는데, 아버지는 절이 순수를 잃었다며 다시는 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11살의 나도 다시는 그 절을 가지 못했다.

그 후의 종교적인 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간 성당이었다. 아주 작은 컨테이너 박스의 성당이었는데, 모두를 고동색 직선의자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람(누군지 모르겠다)의 말을 경청했다. 꽤 열심히 들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노래를 부르고, 한 명씩 앞으로 불러 볼에 밀가루 같은 것을 묻혔다. 성당 앞 야외에서 주는 소고기국은 모락모락 김을 내였고, 나는 그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성당에 대한 기억은, 밀가루와 소고기국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17살, 가출을 했을 때, 당시 첫날밤을 보낼 곳이 없었기에 친구를 찾아갔는데,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방벽들이 가족사진과 십자가로 가득한 그 친구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 처음으로 교회를 가보았다. 교회에서는 또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강단 위에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또 말했었는데 아직도 그 분의 말씀은 기억에 남는다. 수박, 호박 같은 것들은 다 땅에서 자라고, 포도나 사과같은 것들은 모두 나무에서 자란다고. 왜 그런고 하니, 열매가 떨어졌을 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 했다. 나는 야자수 열매! 를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친구의 아버지이기에 참았다. 왼쪽 오른쪽으로는 스테레오 사운드로 아멘, 아멘의 소리가 들려오고, 마지막 노래를 하는데 왠 할머니께서 보라색 세무바구니를 내미셨다. 헌금을 하라는 것이다. 친구는 냉큼 돈을 냈지만 나는 가출을 해서 먹고 살기도 바빴다. 돈이 없다고 하자 나를 노려보셨다. 그리고는 보라색 세무바구니를 한번 더 흔들더니 혀를 차며 떠났다.

나는 절도 성당도 교회도 더는 가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아오는 신의 존재유무에 대한 회의를 애써 억누르는 것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요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인자함을 빙자한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신에 대한 의문이 과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인간의 도전을 이끌어낸다. 물론 신에게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같은 길을 바라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종교의 이해타산적 전염성 그리고 편리한 비논리는 개인의 머릿속에 소파처럼 쉽게 안착한다. 적어도 (한국인 기준으로) 내 주변에는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친구들이 이런 소파 위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네트워크를 원하는 외로운 친구들이거나.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인생이지만, 강요은 그들의 인생이 아니라 남들의 피해다. 나는 “전도활동”이라는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왜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나 전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에 대해 믿기로 했다면, 신에 대한 의심부터 하고 믿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원시종교도 아니고, 기원하고 빈다고 다가 아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자기위안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혹은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종교활동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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