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主婦) 실종시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주부(主婦) 실종시대

0 개 2,886 오소영
정신없이 흐려지는 시각을 거역이라도 하듯.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진정성은 더더욱 뚜렷해 지고 있으니 이것이 늙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늘상 보던 주변의 물건들을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며 꿰뚫어 보게되는 새로운 버릇도 그렇거니와. 아주 작은 화분속에서 삶을 지탱 해 가는 여린 꽃잎새를 보면서도 생명의 소중함이 경이로워 눈물겹다.

돌을 던지면 쨍 하고 깨질 것만 같은 높다랗게 투명한 하늘. 그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하듯 맘껏 뻗어 키 자랑을 하는 해바라기 꽃, 접시 꽃들. 그들을 시샘이라도 하려는가. 댓돌밑에 우짓는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을 성급하게 재촉한다.     

바쁜 일손 틈내 잠시 고국 나드리에 나서는 아이에게 “나도 가고싶다”고 철부지처럼 투정이 나오던 이유가 생각 해 보니 가을이면 도지는 스산해진 내 계절병 때문이었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 늘상 혼자인데 낙엽 떨구는 찬바람이 가슴으로 스며들면 부쩍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든다. 여기저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간절한 충동도 모두가 이 계절에 통과의례처럼 겪는 내 병이기에 한바탕 혼이 날 것은 뻔한 일. 그게 벌써부터 두렵다. 살만큼 살았다는 듯 또레 친구들이 하나 둘 삶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이 가을은 또 다른 쓸쓸함으로 촉촉해 지는 가슴을 어찌 달랠지 겁이난다.

이럴 땐 틀에 박힌 생활에 작은 변화를 시도해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서 바빠져야만 한다.

매일. 남자같이 밖으로만 돌아치던 발길을 멈추고 모처럼 여자가 되어 오랜동안 일탈했던 주부의 위치로 되돌아가 무관심으로 방치했던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대충으로 살았던 그동안의 게으름이 여기저기 눈에 띠어 마음이 성급해 진다.   

먼저 꿉꿉한 여름을 몰아내려면 습기 제거부터... 거미줄 걸린 방에서 어찌 그리도 잘 지내 왔을까?. 너무 쓸고 닦아서 결벽증 엄마라고 아이들에게 별명을 듣고 살았는데 언제부터 이리 느긋 해 진걸까?  

질리도록 따가운 볕에 한번씩만 걸쳤던 여름 옷가지들을 찾아 빨아 널고 철 지난 옷들을 바꿔 정리 하면서. 하루에 사 계절이 다 있다는 이 나라에서 문득 내가 지금 한국식 일을 하면서 괜한 수선을 떨고 있구나 싶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전업 주부로 살림 재미붙여 살 때가 좋은 시절이었기에 차라리 그 때 일을 추억하는게 훨씬 더 마음에 위로가 된다.  

여름내 뿌옇게 빛을 잃은 장농에 기름 걸레질도 하고 무거운 겨울 이불들을 전부 끌어내 빨랫줄에 널어 거풍을 시킬 때는 정말로 힘들었었다. 다시 개켜 제 자리에 넣을땐 부풀은 부피때문에 힘겨운 씨름으로 한바탕 늦땀을 흘리지만 상큼하게 만져지는 개운함이 기분 좋기만 했다. 내친김에 창문 커텐까지 두툼한 것으로 바꿔달면 여름은 언제 지나갔는지 옛날 일. 사뭇 아늑해진 분위기가 멋지고 새삼스러웠다. 가벼운 설레임으로 식구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그 순간 이야말로 주부만이 느끼는 특별한 기분. 그게 바로 행복이었다.  

바람 성기운 마당에 호박 썰어 널고. 가지 데쳐 말린 나물들로 정월 대보름을 준비하면서 가을겆이 농부들처럼 마음 뿌듯했던 그 시절. 누구의 아내이면서 아이들의 엄마로 한 가정의 살림을 책임진 주부가 자투리 시간에 책이라도 읽을 짬이 생기면 그 또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맴도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견딜 수 없는 회의가 밀려오면 자유롭게 훨훨 여행도 하고싶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싶은 충동. 느긋하게 친정 나드리도 그리워 눈물 지을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살림하는 여자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도 없어 나 스스로를 위한 일을 못 해 늘상 그게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남는게 시간뿐이다. 그 때 그리도 아쉬었던 그 시간들이... 

세상 좋아져서 이제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젊은 여인들은 거의 없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고학력 시대. 자기 개발을 위하여 또는 자아실현을 위하여 사회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금전 만능 시대에 남편 혼자는 힘들어 떠밀리듯 일을 찾아 나서는 여인들도 있다. 주부가 따로 있을리 없는 세상. 앞치마 두르고 주방을 서성이는 남자들도 많아 이젠 주방 정서도 낯설다.   

어딜 가도 따뜻하게 정성드린 집 밥 얻어먹기가 쉽지않다. 가족들끼리도 한 자리에 밥 같이 먹기가 어려우니 주부의 가치도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가족은 있어도 가정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 하나보다.     

4, 5월. 아직도 낯선 가을이지만 조용히 앉았으면 빛깔곱게 잘 마른 태양초 고추 찾아 ‘경동시장’을 누비고 김장철에 쓸 곰삭은 젓갈 고르러 ‘소래포구’를 맴돌던 내 모습이 그려져 그리움을 자아낸다. 싱싱한 꽃게 욕심으로 들고 오다가 게발에 찔려 빨갛게 피를 흘리며 집에와서 패대기를 치고 주저앉아 울먹이던 생각.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아픔을 보상 받았던 살림꾼 그 이름도 거룩한 전업주부였다.   

그 때는 그런 일들이 힘들고 귀찮아도 행 불행을 함께 경험하며 당연한 운명이라고 체념하듯 살았는데. 지금 그 때를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재미있는 그리움으로 떠 오른다.   

누가 뭐라해도 가족들 속에 핵심 주부로서의 역활이 뚜렷이 있을 때가 여자의 인생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얌전히 집에서 문 열어주는 엄마. 정성과 사랑의 조미료로 만든 내 엄마의 손맛이 최고라고 맛있게 먹어주는 끈끈한 피붙이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이 곁에 있을 때 이니까....

[363] 제니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2,803 | 2007.08.28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발로 서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름이 뭐게?" 어렸을때 수수께끼로 재미있어 했던 놀이였다. 허지만 철없던 시절 사람이… 더보기

[312] 민들레 김치

댓글 0 | 조회 2,815 | 2005.09.28
비가 자주 내리더니 말라 붙었던 잔디가 기승을 부리듯 살아나고 온갖 잡초들이 서로 다투어 키자랑을 하듯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빠질세라 민들레도 한 몫끼어 …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2,823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

[341] 모든 것의 고마움을

댓글 0 | 조회 2,830 | 2006.09.25
아침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제치니 예사롭지 않은 바람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아마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렸나 보다. 따뜻한 이불 속이 너무나 좋아 마냥 게으름… 더보기

[316] 목련이 피었네, 뚝뚝 떨어지네

댓글 0 | 조회 2,831 | 2005.09.28
자두빛 물먹은 목련이 피었네, 분홍색 화사한 벗꽃도 피었네. 소리없이 살금살금 봄이 찾아온 모양인가. 우리는 아직도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데…. 볕발 좋으면 까짓… 더보기

소통하는 영원한 벗, 한송이 빨간 장미

댓글 0 | 조회 2,832 | 2016.02.24
혼자 밥 먹는게 지루하고 따분할 때. 무심히 놓인 식탁 한켠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놓칠세라 내 시선을 붙잡는다. “어머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더보기

굴뚝이 있는 집

댓글 0 | 조회 2,834 | 2016.08.25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아예 굴뚝이 없다. 굴뚝이 있는 옛날 집들도 이젠 연기가 나질 않는다.내가 처음 왔을 때 만해도 티티랑이 동네 어귀엔 나무 타는 냄새가 야… 더보기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2,836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2,837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324] Oh, my God! 雪花 秀

댓글 0 | 조회 2,848 | 2006.01.16
雪花! 그 글씨만 보아도 백옥같은 눈꽃이 눈에 시원하다. 요즈음 한국은 눈꽃 속에 파묻힌 하얀 나라란다. 싸한 바람 속에 소복 단장한 고궁 뒷 뜰을 산책하고 싶다… 더보기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2,852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337] 비 속의 요정들! 겨울꽃

댓글 0 | 조회 2,854 | 2006.07.24
춥고 축축하고 구질구질한 매일 매일의 겨울날씨. 제습기가 빨아 먹고 쏟아 내는 엄청난 물의 양에 놀래면서 내가 마치 물 속에서 사는 듯 후줄근해져 이 겨울이 지루… 더보기

[307] 진이의 유학일기

댓글 0 | 조회 2,854 | 2005.09.28
아주 가끔씩 나는 진이와 현이 남매가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 한국에서 어찌 지내고 있을까?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아니면 돈 번다고 정말로 우유배달을 하고… 더보기

잃은 것과 남은 것

댓글 0 | 조회 2,855 | 2020.08.25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자세 때문일까요?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으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차도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운동장 … 더보기

[306] 다알리아 아줌마

댓글 0 | 조회 2,858 | 2005.09.28
소담스럽게 핀 다알리아꽃이 방긋방긋 웃으며 휀스넘어로 윙크를 보내오는 그 집. 유난스럽게 키가 크고 잘 생긴 갖가지 색깔의 꽃들을 보며 길을 지날 때마다 그 집 …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2,859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훈훈한 감동을 심어준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방송 뉴스시간에 … 더보기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2,865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 더보기

[365] 오빠와 취나물

댓글 0 | 조회 2,866 | 2007.09.26
이 나이에도 친정 식구들을 떠올리면 그냥 그때의 아이로 돌아 가는 게 그리 좋다. 언니가 보고싶어 목소리라도 들어야 한다며 전화를 주실 때, 외국생활 힘들지 않느… 더보기

[333] 핑크빛 골프장갑

댓글 0 | 조회 2,873 | 2006.05.22
오래전부터 내 옷장서랍 한 견에는 작은 비닐백에 들은 임자 잃은 골프장갑이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나는 언제 주인님 손에 끼워져 바깥세상 구경을 하나요?”서랍을… 더보기

지붕위의 여자

댓글 0 | 조회 2,879 | 2016.10.26
뒷집에 새로 이사와 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항상 후두로 머리를 덮은 파커차림이다. 뒷모습 말고는 얼굴을 본 적이없어 나이를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남자처럼 키…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85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옷인들 신경 써서 입으면 뭘하나 츄리닝이나 걸치고 헐렁하게 살아야지" 그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해서 한결같… 더보기

현재 주부(主婦) 실종시대

댓글 0 | 조회 2,887 | 2014.04.24
정신없이 흐려지는 시각을 거역이라도 하듯. 사물을 보고 느끼는 진정성은 더더욱 뚜렷해 지고 있으니 이것이 늙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늘상 보던 주변의 물… 더보기

[288] 영정 사진을 찍으며

댓글 0 | 조회 2,900 | 2005.09.28
아직은 아니에요. 10년쯤 후에나 찍으세요” 누군가가 던진 달콤한 위로의 말에 귀에 솔깃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어본다. 어느 포토 샵에서 영정 사진을 찍… 더보기

[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댓글 0 | 조회 2,920 | 2007.01.30
해가 바뀌니 내가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또 나이 하나를 보탠다. “형님은 이제 ㅇ십대네요. 나는 아직 ㅇ십대인데…” 세살 아래인 흉허물없는 사이의 어떤 자매님이 …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2,923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모처럼 귀한 비가 밤새 제법 많이 내린 어느 날이다. 메말랐던 세상이 한껏 물끼를 머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데 그쳤는가 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