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날 ‘경로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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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우리 날 ‘경로잔치’

0 개 2,371 오소영
여느 날과 다를바 없는 이웃들은 마냥 조용하기만 한데 혼자서만 들떠서 설레는 자신이 철부지 아이같아 웃습다. 오늘은 우리 세속 명절. ‘설날 경로 잔치’가 있는 날. 

긴 세월 몸 담아 살아온 둥지를 떠나서 낯선 사람들속에 섞여 고국 정서를 그리는 우리 노인들에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특별한 뜻을 가진 ‘하이웰’ 사장님의 남다른 마음으로 가져온 매년 행사가 벌써 4회째로 접어들었다. 한결같은 정성과 수고로 이뤄지는 잔치에 고국의 향수를 달래며 따뜻한 위로속에서 하루를 즐기며 또 내년을 기다리게 되는 큰 행사다.
 
나이 먹으니 때로는 옷 갈아입는 것조차 귀찮아 간편한 옷차림이 좋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잔치에 갈 때 깔끔한 차림은 내 기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라고. 노년의 게을러감을 일깨우는 지침서도 있기에 신경을 써야한다. 오늘만은 명절답게 우리 고유의 한복으로 아름답고 기품있는 맵씨를 여기 사람들에게 뽑내고 싶어 얌전히 다려놓은 치마 저고리로 치장을 한다.  

현관문을 열고 한발 나서니 찬란한 햇살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안으며 반기는듯 했다. 빨간색 저고리가 잘 익은 가을단풍 물을 들인듯 유난히 투명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때문일까? “와 뷰티풀. 우---러부리..” 역시나.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으로 반겨주는 이웃들. 색감에 둔해진 그들에게 한복의 화사함을 눈요기 선물로 안겨주며 코리안의 위세를 잠시 떨쳐보는 기분좋은 순간이기도 하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손녀같은 학생들의 정성어린 손길로부터 빈틈없는 보살핌의 도우미들이 환하게 맞아주어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차량 봉사부터 시작한 배려로 금방 그 넓은 홀이 사람물결로 가득했다. 그동안 격조했던 얼굴들도 만나고 모두가 반가운 표정들이다. 매년 모시는 참전용사 가족들도 변함없이 많이 참석해서 우리 미풍양속의 훈훈함을 마음에 가득 담아가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맙고 정스럽다. 내년에도 한 분 빠짐없이 모든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안녕하세요?” 우리말 인사로 시작되는 ‘죤 키’총리의 축사를 들으면서 소수민족인 우리도 이 나라에 당당히 뿌리내린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 해진다. 이렇게 큰 행사를 마련하려면 여러가지 어렵고 힘든 일도 많을텐데 기쁨으로 이 날을 기다리게 된다는 주최측 사장님의 인삿말이 깊이 인상에 새겨졌다. 문득 나눠쓸줄 아는 저런 분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살이 훨씬 편하고 좋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 틈에 섞이면 웬지 늙은게 부끄러움으로 뒷전에 밀렸는데 오날만은 가슴 활짝펴고 당당히 세배도 받고 푸짐한 선물도 받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나. 하지만 잔치집 음식이 변변찮으면 불꺼진 난로나 다름없다는 우스개 말도 있다. 누군가가 쥐어주는 접시 하나씩 들고 기차놀이 하듯 긴 줄끝에 매달려 장난끼섞인 수다도 떨면서 따라 들어가는 것도 동심을 일깨워 재밌다. 갖가지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 맘껏 담아와 포식을 하면서 어느 것 하나 정성없이 된것은 없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느라 밤을 새웠을 고마운 젊은이들. 불황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많은것 다 아는데 마음이 짠했다.

속도 든든히 채웠겟다. 다음은 우리 옛날 전통게임을 시작하는 순서다. 먼저 까맣게 잊고 살았던 제기차기에 접하면서 아득히 먼 추억여행을 떠나 어렸을적 집 앞 공터에 서 있다. 사내 아이들은 제기차기를 하고 여자애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떠들석하게 놀고있다. 새까만 고무신에 바지를 반쯤 걷어올리고 수십 수백번을 거뜬히 잘도 차댄다. 그런 세대의 분들이 자신있게 나서는 분들이 없다니?... 모두가 너무 연로하셨다는걸 깨달으며 안타까웠다. 우리들 세대가 가고나면 제기차기 같은 놀이는 그나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세월이 무상 할 뿐이다. 화살을 몇 걸음 떨어진 병에다 던져넣는 투호(投壺) 놀이는 궁궐이나 양반가에서만 하던 놀이라 흔히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제인가 ‘한국민속촌’에 가서 몇 번 던져본 경험이 있는데 곧게 날아가 병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야만 하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런 흥미로운 놀이까지 준비한 우리 설날 잔치가 너무 멋지고 훌륭해서 찬사가 절로 나왔다. 외국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가 대단했지만 그 쉽지않은 놀이에 식은 땀을 흘리는 것 같아 보기에 민망했다. 보다못한 주최측 사장님. 조금씩 앞으로 밀어주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애교의 제스츄어가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잘 안되는걸 어떡해.. 그래서 웃고 저래서 웃고... 무대에 나와 노래 부르는 동료들 신나게 응원하고 잘 했다고 박수치며 또 웃는. 웃음천국 우리들의 날. 더도 덜도 말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오늘만 같아라.

호수에 가면 잔잔한 물위에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를 만나고 사람들은 그 우아한 몸짓에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떠 다닐 수 있는건 물 밑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하는 발짓 때문이라는 것까진 생각 않는다. 우리들이 신나고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 누군가는 실종된 치매 노인을 찾으려고 길을 헤매고 다녔기에 두어시간. 백조의 몸짓으로 잔치를 진행한 사람들은 속이 까맣게   탔었음이 뻔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음식을 마련해 온 어느 식당 사장님은 뒷정리 하느라 흘리는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등을 아주 잠깐 가볍게 쓸어주면서 내 가슴이 마냥 따뜻해 지는 전률을 느꼈다.  

뉴질랜드에 이민와서 사는 우리들은 대견하고 고마운 젊은이들 속에서 제대로 대우받으며 살아가니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주최하신 ‘하이웰’ 사장님을 비롯해서 축하하고 격려 해 주신 기관장님들. 내빈들 그리고 따뜻한 봉사의 손길로 하루를 같이해준 도우미 학생들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배까지 받았으니 세배돈을 대신해 덕담이라도 한 말씀 드려야겠죠. 청마같이 힘차게 달려서 소원성취 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우리 어른들의 열심한 기도가 작은 보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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