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서바이벌

0 개 1,727 박건호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종영한 것으로 보아 일종의 파일럿프로그램이었던 듯하다.

당시 내가 작곡을 시작한지는 2013년 4월 무렵부터였으니 반년이 약간 넘어갔던 시점이었다. 일단 곡들은 꽤 많이 만들어 놓았었고, 이것으로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거의 반장난으로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내게 되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서라는 게, 참 많이 웃겼다. 작곡서바이벌이라면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 부모님의 직업까지.. 개인의 많은 부분을 대중들과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물론 곡을 쓰든 글을 쓰든 자신의 인생이 배어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이 프로그램은 어찌되었든 예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위시하지 않으면 화제거리를 만들어낼 수 없는 예능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한 개인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드라마를 원하고, 그것을 티비에서, 조금 더 사실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그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를 갖기 위함인데, 나는 이것이 굳이 작곡가 서바이벌에까지 적용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지원서를 썼었다.

한 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구이라는 통기타 가수가 있었다. 어보리진 원주민으로, 어려서부터 시각장애자였던 그가 여느 때처럼 버스킹을 하던 도중, 한 기획자(그는 후일 구루물 음악인생의 친구가 된다)의 눈에 띄어 캐스팅된다. 그는 원주민의 언어로 대부분의 노래를 불렀고, 이것은 그의 사연과 함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개인적으로는 호주의 광활한 대지를 앞에 두고도 암흑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사람의 울림이 느껴진다. 그러나 통기타 한 대로 이끌어가는 음악이 그렇듯, 그의 음악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즉 1위까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드라마와 잘 어우러진 한 편의 위로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온 것뿐이다.

나는 저 정도의 드라마는 없기에, 지원서에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다고 정말 솔직하게 적었고, 따라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라는 절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지원한, 인생에 큰 드라마가 없는 평범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예전의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각색하여 지원서를 낸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 한 사람의 스타성을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미디어카르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이렇게 했으니까 국민여러분, 당신들이 힘든 거 별 거 아니야, 힘내, 라는 “위로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그것을 “작곡서바이벌”이라는, 비교적 기술적인 힘을 겨루는 프로그램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서바이벌 예능이 힘든 것을 이겨내는데 방점을 둔다면 오히려 우리 삶을 지나친 서바이벌로 만들어낼 여지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돈이 많은 사람이 이유없이 욕을 먹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돈이 많네, 힘든 일을 겪지 않았겠구나? 하는 결과주의가 역으로 팽배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서바이벌은 결과만 남기 때문이다. 돈은 그저 그 사람이 서있는 계단을 한 단계 올려줄 뿐, 그것이 100%, 일종의 드라마적 서사를 저해한다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드라마가 있고, 힘든 일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사회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줄 구조적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에, 로또와도 다를 바 없는 “인생역전 한 방의 기회”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혹은 예능이 -개인의 딱한 사연에 의한- 단순한 감성적 위로만을 하고 있는 이 사회가, 뭔가 뒤틀려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뉴스는 입을 다물고 예능은 오히려 역경을 이겨내라고 채찍질하는 모순의 미디어가 그 한장의 지원서에 들어있었다.

이제는 제 2의 폴 포츠 같은 편리한 수사학적 헤드라인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저, 모두가 당당하게 제 1의 자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댓글 0 | 조회 2,061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더보기

공간

댓글 0 | 조회 2,057 | 2014.10.30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2,025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 더보기

혼란: 독재의 잔재

댓글 0 | 조회 2,005 | 2014.04.09
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8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1,981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1,974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 더보기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댓글 0 | 조회 1,971 | 2014.08.13
영화제의 분위기는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단편영화 섹션이 그렇다. 상기된 표정의 감독들과 스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 평소 영…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956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942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 더보기

운동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댓글 0 | 조회 1,934 | 2014.07.08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이란 것을 키워봤다. 펑크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비쩍 마른 몸을 좋아했다. 44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상체에 디올옴므 모델과도 같은 …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1,928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더보기

영어

댓글 0 | 조회 1,925 | 2015.01.13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외국인에게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던 것이 비결 아닌 비…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6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상류

댓글 0 | 조회 1,901 | 2014.11.26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이다. 지금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와, 이것저것하며 돈을 모은 뒤 지금은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1,877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1,845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9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1,822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7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기대

댓글 0 | 조회 1,755 | 2014.09.24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더보기

江(Ⅱ)

댓글 0 | 조회 1,731 | 2015.02.11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 더보기

현재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8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8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