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한국에서

0 개 1,766 박건호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꿈틀거리며 각자의 짐을 쥐고 이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꽤 얇은 옷을 입은 채 바스락거리며 흩어지는 겨울의 입 김을 한 움큼씩 내뿜으며 버스를 타려고 공항의 문을 열었다.

3주 간의 긴 휴가. 공항 문을 나선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미래에 놓여질 과거들이 퍽 3인칭스레 내 곁에 머물다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펭귄이 날 수 있느니 못 나느니로 대화를 나누고, 가끔 밀리 터리 무늬의 캡 모자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웃으며 거수경례를 한다. 나는 쓸데없이 거만한 한국의 예비역답게 거수경례를 받아주곤 했었다. 한국에 와서는 마치 이등병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쏟아지는 인공의 불빛들을 헤매고 다녔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어느덧 퇴역장교처럼 피곤한 표정으로 돈에 관해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쟁이라도 끝난냥 해가 지면 술을 들이키며 내게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헐떡이며 털어놓았다. 나는 이등병처럼,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꾸역꾸역 안주(2년 동안 이게 제일 그리웠다)를 입에 쑤셔넣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꽉 막힌 호리병 구간 위에 서 있는 차량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질문하는 뉴질랜드의 생활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뒤로 내쳐둔 채 갓길 위를 질주하는 어떤 차량을 보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갓길로 차량을 움직이기 위해선, 법을 떠나 용기가 필요하다. 일부는 내게 갓길로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리로 나갔다.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은 늘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내가 예전에 그 거리로 다시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때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변하지 않은 채로 그 거리에 그대로 서 있을까. 내가 거리에게서 위로를 얻어내는 기분이 들까, 혹은 내가 거리를 위로하는 기분이 들까. 찬바람 속 파란 햇빛을 걸어가며 이른 거리 속은, 다가가면 사라지지만 뺨에 촉촉한 땀방울로 맺히는 새벽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물건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도 많고, 물건들도 많았다. 뉴질랜드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입고 면도도 안한 채 돌아다녔더니 사람들이 나를 물건보듯 쳐다보았다. 명품에 제일 관심이 없는 나라에서 명품수요가 제일 높은 나라로 왔더 니 명품 그 자체는 온데간데없고 시선을 의식한 소비들만이 분수처럼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분출하는 분수 속에서 수많은 이웃의 시선들이 정신없이 이웃들을 과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광고들, 거북한 안도와 우아한 좌절들, 소비를 위시한 시선들이 거대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속의 이방인은 코를 훌쩍거리며 자기만족의 푸른 수염을 쓰다듬고, 한 손으로는 타인의 가치를 자신의 방에 차곡차곡 죽여내고 있었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편협한 것은 좋지 않다.

그 거리에서, “생각이 다른 것”이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수없이 제제했다. 알고는 있지만 잊기도 쉬운, 삶의 여유와 다짐들. 내가 마주보아야 할 것은 비난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몫의 전부다. 작은 일들, 작은 몫들이 삶을 이룬다. 작은 일들과 작은 몫들은, 작지만 적지는 않은 채로 우리를 지나간다. 결국 그 중에서 무엇을 잡을지, 무엇을 볼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들. 삶은, 그 작은 시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갓길인생이라 할지라도.

댓글 0 | 조회 2,061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더보기

공간

댓글 0 | 조회 2,057 | 2014.10.30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2,025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 더보기

혼란: 독재의 잔재

댓글 0 | 조회 2,005 | 2014.04.09
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8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1,981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1,974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 더보기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댓글 0 | 조회 1,971 | 2014.08.13
영화제의 분위기는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단편영화 섹션이 그렇다. 상기된 표정의 감독들과 스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 평소 영…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956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942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 더보기

운동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댓글 0 | 조회 1,934 | 2014.07.08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이란 것을 키워봤다. 펑크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비쩍 마른 몸을 좋아했다. 44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상체에 디올옴므 모델과도 같은 …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1,928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더보기

영어

댓글 0 | 조회 1,925 | 2015.01.13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외국인에게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던 것이 비결 아닌 비…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6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상류

댓글 0 | 조회 1,901 | 2014.11.26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이다. 지금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와, 이것저것하며 돈을 모은 뒤 지금은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1,876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1,845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9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1,822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 더보기

현재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7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기대

댓글 0 | 조회 1,755 | 2014.09.24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더보기

江(Ⅱ)

댓글 0 | 조회 1,731 | 2015.02.11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7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7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