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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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Ⅲ)

0 개 2,133 박건호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떨어질 듯 걸쳐진 고물 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의 조그만 창에는 Bebe의 Cuanto+Me Sujetas의 이국의 기다란 언어가 깜빡깜빡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남자는 조금 듣다가 계속해서 약간 칠이 벗겨진 은색의 forward 버튼을 누른다. 설정되어 있는 설정 탓인지 곡은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6번 트랙 위에 머물러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남자는 자신의 왼손을 들고 서 있다. 창 너머의 밝음으로 인한 역광의 배경 위로 남자는 그림자라도 딘 듯 까매진 모습으로 손을 들고 서 있다. 구름 같은 기억의 오선지를 손가락으로 더듬거리기라도 하듯이, 치켜든 손가락들을 음악에 맞추어 간헐적으로 까딱까닥하고 있다.

길었다면 길었던 콘서트. 내겐 이따금 기억의 타브가 없다. 그것들은 중간중간 비어있다.

음악소리가 점점 커지고, 방 전체가 악보가 된다. 남자는 자신의 왼팔을 든다. 대기 중의 악보 속을 헤치며, 팔을 이동하여, 롱커튼의 끈을 잡는다. 빛들이 비켜나기라도 하듯 커튼 너머로 차단된다. 남자의 마른 왼손 아래로 차갑고 맹렬한 피가 흐른다. 남자의 뒤로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려던 태양이 가볍게 흔들거리다가 이내 사라진다.

호텔 방의 바닥 속
도마뱀 한 마리는 갈색 나무구조물의 질감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조그만 얼굴의 도마뱀은 꼬질꼬질한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여 앞으로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어디에선가로부터 들어온 꽃잎의 조그만 조각을 하나 덥석 깨물었다. 꽃잎은 부서지며 향을 냈다. 퍼져가는 향이 공간의 환청을 유발했다. 시이이익, 시이이익. 도마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도마뱀은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한 미치광이 바퀴벌레가 홀로 중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가 너무 길어져 지구를 관통한 세계의 피노키오 연인들은 들으라. 너희 가는 길에 서로의 축복이 있을지니 모두 즐거운 허밍을 하며 각자의 길어진 코끝을 보며 살아가도록 하라.

바퀴벌레는 죽은 것처럼 바닥에 붙어 더듬이를 끄덕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퀴벌레 옆의 치즈조각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짓된 세상처럼. 연인들의 길어진 코에 배인 그 구멍들에는 누군가의 눈물이 고여있기라도 한 듯, 녹색 곰팡이들이 흐르듯 묻어나고 있었다. 도마뱀이 눈을 반짝이며 그런 치즈와 바퀴벌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텔의 바닥 위로부터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와 여자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갔다. 잠시간의 정적. 여자가 자신의 소지품을 서둘러 챙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가 바닥에 자꾸만 서둘러 떨어지고 서둘러 줍는 소리에, 도마뱀은 고개를 들어 자꾸만 자신의 칠흑과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문소리가 들리고. 여자가 남자를 향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라면 다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린 끝났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마뱀이 갸우뚱거리는 고개를 멈추고, 재빠르게 움직여 바퀴벌레를 십어먹기 시작했다. 바퀴벌레가 중얼거렸다. 이제 끝났다고. 자신의 배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죄 같은 이빨이 느껴졌다.

호텔 방 안의 테이블 위
호텔 방의 테이블 위에 까맣게 타들어간 장미가 있다. 장미에서는 신문지 냄새가 났다. 오래된 모든 것에서 그렇듯이, 눅눅한 잉크의 냄새들이 호텔 방의 테이블 위에 쌓여있었다.

누군가가 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남자가, 늙은 소년이,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새벽녘 익숙하면서도 낯선 호텔 방 안에서, 눈을 뜬다. 착륙불능의 지점 위에 착륙을 시도하듯, 침대 위에서 하나 둘 씩 내려오는 남자의 다리는 바닥과 약간의 공간을 둔 채 흔들거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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