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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0 개 1,853 김지향
숲의 향기가 집 문턱까지 다가온 일요일 아침에 욕실 유리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목욕물을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 잠든 시간에 새소리를 들으면서 목욕을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방음시설이 잘 안 된 집이라서 세찬 물소리가 잠자는 가족의 귀를 간질이지만 늘 피곤한 일요일 아침에는 새소리도 물소리도 그들을 깨우기는 힘이 듭니다.

욕탕 안에 물이 찰랑거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새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옵니다. 욕탕 가득 물을 담아 놓고 내 온 몸을 그 안으로 쏙 집어넣고 한참을 누워 있으면, 꿈속에서 조차 아파서 절절 맸었던 팔이 편안해지면서 몸이 후끈해집니다.

살며시 일어나 차가운 타일을 밟고 창문가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새벽의 숲 향기가 코를 찌르며 뿌연 안개 속에서 새가 후다닥 날아올랐습니다. 한층 선명하게 들려오는 새들의 요란하고도 정겨운 지저귐 소리가 따뜻한 물에 녹아들어 아팠던 몸과 팔이 한결 더 가벼워졌습니다.

약하게 태어나서 그런지,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난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엄마 체질을 닮아서 그럴 겁니다. 하지만 늘 아픈 엄마처럼 살기는 싫었고, 부지런하고 건강한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흉내를 내다가 힘이 들면 다시 원래로 돌아오면서 살았지만, 엄마처럼 병원을 자주 오가면서 살기는 싫었습니다.

어려서 엄마를 일찍 여읜 우리 엄마는 계모 슬하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몸이 약하십니다. 폐결핵으로 1년 동안 가족과 격리 되어 요양소 생활을 하셨고, 독한 약 때문에 얻은 위장병과 자잘한 병 치례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팔순을 앞두고 양쪽 고관절이 부러지는 일까지 겪으셔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놀라셨는지 모릅니다. 아내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답니다.

난 이렇게 아파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기에, 마음이 강인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에,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따라서 건강할 것으로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아이 한 명을 낳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고, 허리가 아파서 식은땀을 흘릴 때도, 빈혈로 머리가 하얘질 때도, 교통사고로 다친 목 때문에 책을 읽기가 힘들었을 때도, 팔다리에 쥐가 나서 눈물이 쪽 빠졌을 때도, 내 마음이 시원찮아서 몸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존경하면서 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여든 되시기 전까지는 충치 하나 없이 건강하게 사셨던 분에, 암까지도 이기신 강인한 분이셨기에, 사람들이 나한테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면 은근히 기분이 좋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아버지보다 엄마를 더 닮아 있었기에, 아버지 흉내를 내다가 앓아눕기가 일 수였습니다.

요즘 나 자신을 예전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규정 되어 있는 틀에 끼어 맞출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애증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진 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한 자기사랑이 싹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자기사랑에 싹을 틔우는 일마저도 오랜 시간의 산고를 겪으면서 지낸 것을 생각하면, 삶을 통한 고통이야말로 우리에게 지혜를 안겨주는 스승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 집에 튼 둥지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온 제비 새끼들이 무척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그 녀석들의 우악스러운 짹짹거림은 다른 새소리들을 뛰어 넘습니다. 알에서 깨어 나오느라 애를 많이 써서 유별나게 허기가 더 지나 봅니다. 엄마가 알아서 골고루 먹이를 입에 넣어 주겠지만, 서로 먼저 달라고 아우성들입니다. 얼른 자라서 엄마처럼 세상을 날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지구 저 반대편인 이곳에 온지도 13년이 넘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은 곳에서의 높은 담에 부딪힐 때마다 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었습니다. 마음에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도 속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이 한심하지도 속상하지도 않습니다. 서당 개 13년에 눈칫밥 13년 덕분에 나름대로 살아갈 힘이 생겼으니까요. 

새소리와 함께 온욕을 즐기면서 내 날개를 느껴보았습니다. 멋지게 날 수 있는 날개는 아니지만, 갸륵하고 고맙고 소중한 날개더군요. 13년 동안 열심히 노력을 하였다면 보다 더 튼튼한 날개를 달 수 있었겠지만, 이만하게라도 달게 된 것을 감사로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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