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느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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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

0 개 1,458 박건호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고 그것이 연애에도 적용되기도 했다. 사회에서의 정치적으로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진심마저 처세로 대해 버렸던 나의 모습이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번갈아 오가던 말도 안되는, 훗날 사과조차 못할 연애들이 살인자의 노래처럼 내 귀를 울린다.
 
2. <Gravity>를 보았다. 내가 본 헐리우드 영화 중 가장 고독한 블록버스터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3D 안경 너머로 눈물을 흘렸다. 우주에 홀로 버려진 그 영상들. 살려고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모습은 실상 우주를 배경으로 한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방도, 내 머릿속도 하나의 우주가 아닌가. 결국 외부에서 오는 시련들을 맞아가며 살아내려 버티고,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고, 죽기를 결심하고... 우주선 유리창의 균열은 내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고독은 영화에서의 롱테이크처럼 지루할 듯 지루하지 않을 듯한 인생처럼 끊임없이 순환된다. 반짝이는 별들이 무섭다.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고독을 비출 때, 그것은 가까운 미래의 비참한 외로움을 예견하는 빛이 되어버린다. 아름다운 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들 틈 속의 나를 견딜 수 없다. 내게는 그런 중력의 영화였다.
 
3.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안달이고,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의 나는 어떻게든 숨고 싶어 안달이다. 이 두 가지의 모순 속에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사라져 버려야 한다. 숨는 것이 아니라 나조차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사라져 버려야만 한다. 곧은 마음과 비틀어진 마음들 그 자체를 멍하게 쳐다보고 앉아있어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와 세상 모두를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숙명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를 감싸 쥐고 있었다.
 
4. 낯선 곳이 두렵지 않다. 난 어디를 가도 내 공간이라고 정확하고 명백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집을 내 공간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게는 낯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디를 가든 낯선 곳이라고 느끼는 버릇이 생긴 이유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뭔가 행동을 할 때도 아, 이렇게 살다가도 갑자기 차가 날 치인다거나, 내가 넘어졌는데 머리부터 넘어진다거나, 해서 굉장히 허무하고 우스꽝스럽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다음 일을 알 수 없는 허무한 찰나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그 허무가 내겐 낯설다. 즐겁게 웃다가 죽는다면 죽는 순간에도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우습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공포와 허무에 대한 방어는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계속해서 낯설어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확실히 있다. 고로 나는 낯선 시간 그 자체가 되고 싶다.
 
5. 지느러미의 날이 곧게 서 있는 생선 한 토막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을 실고 가던 트럭의 틈에서 떨어진 듯, 한 낮의 검은 아스팔트 위에 청명한 비늘을 드리우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팔락이는 지느러미의 의미를, 나는 눈으로 열심히 좇고 있었다. 그 생선은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트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저 생존을 목적으로 목적지 없는 지느러미를 그렇게도 까딱였던 걸까.

오이

댓글 0 | 조회 1,701 | 2012.11.28
그는 지금 웰링턴에서 가장 바쁘다는, 조그만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12평 남짓한 그 식당엔, 17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일본,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더보기

벙어리 장갑

댓글 0 | 조회 1,695 | 2016.05.26
너는 장갑이 싫다고 했다. 장갑이 왜 싫으냐, 물었더니 장갑은 다섯손가락 모두를 만들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갑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만들기가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56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반뼘

댓글 0 | 조회 1,615 | 2014.12.09
새벽 6시 30분에 일을 시작했다. 오후 2시쯤 퇴근해서 밥을 먹고 멍 때리다가 친구가 의뢰한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작업을 했다가 밥을 먹었다가 작업을 했다가 … 더보기

침몰

댓글 0 | 조회 1,607 | 2014.11.12
“도” 음정이 맞지 않는 “도”가 또 한 번 울렸다. 청색 지붕, 처마 밑에 자리한 일곱 개의 검은색 확성기가 하늘 아래 햇살을 반사시키며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더보기

江(Ⅰ)

댓글 0 | 조회 1,581 | 2015.01.29
등산이 인생이다,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때때로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혐오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을 못 … 더보기

오늘

댓글 0 | 조회 1,575 | 2014.06.11
뜻하지 않은 일로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뭐랄까, 먹는 것보다 싸는 게 더 힘든 느낌이 든다. 오늘. 예정대로라면, 나는 발매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뮤직비디오 편집…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62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56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복종과 공격

댓글 0 | 조회 1,514 | 2012.12.24
1998년 6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빌 클린턴 앞에서 진정한 하의실종을 보여줬다. 당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했었던, 이 가학적이면서도 키치…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504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6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질의응답의 시간

댓글 0 | 조회 1,479 | 2012.10.24
CV만 40장째였다. 차가운 웰링턴의 바람만큼이나 핸드폰 수화부에도 스산한 침묵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포화상태를 이룰 때쯤,… 더보기

현재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9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57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종교

댓글 0 | 조회 1,448 | 2014.07.22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 처음 내가 접했던 종교는 불교였다. 10살 무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던 산 속의 어느 조그만 절. 그 절은 정말 깊은 산 구석에 있었는…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42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江(Ⅲ)

댓글 0 | 조회 1,441 | 2015.02.25
노로 어떻게든 뭍을 박차고 배의 방향을 겨우겨우 돌려, 우리는 다리를 저는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22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허세

댓글 0 | 조회 1,408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403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작업기(Ⅳ) 기다림의 결과

댓글 0 | 조회 1,399 | 2015.03.25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과정을 모르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그러하다. 마치 누군가가 미래의 로또번호를 가르쳐주긴 했는데 몇 회 차인지 가르쳐주지 않…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6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

얼굴

댓글 0 | 조회 1,362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

찌꺼기 혹은 빛나는

댓글 0 | 조회 1,362 | 2012.11.14
그는 J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한국에서 다니던 영화 관련 직장을 때려 치우고 외국으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뒤이어 그는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워크비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