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이사

0 개 1,906 박건호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그리고 저번 주 일요일, 약간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고,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아, 얘들이 돈을 아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구나” 혹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게으르구나, 나도 옛날엔 저랬을까”라는 결론 아닌 결론이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금방 고쳐주겠다고 했다. 마치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느낌이랄까(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한 7명이 살고 있는 플랫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자 애인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여자아이는 남자친구 집에 가서 지내기에 거의 방에 없다시피 하고, 영국에서 온 여자는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질 않는다. 나머지 키위 네 명은 두 쌍의 커플로, 하루 종일 방에서 섹스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TV나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그 중의 하나인 사람들이다.
 
키위 중 한 명이 플랫의 대표격인데(인터넷 사용료가 많이 나왔다며 월 초에 아무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기계를 치웠던 녀석이다) 인터넷을 고쳐보자고 제안하는 내게 그가 물었다. 너 게임하니? 아니 난 게임은 전혀 안 해. 그런데 왜 필요한 거야? 인터넷은 내게 일종의 학교 같은 거라서, 이것저것 배우고 자료도 찾아봐야 돼. 음.. 그냥 핸드폰으로 해, 난 인터넷 안 필요하고, 필요하면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할 수 있거든.

참 이기적이고 불쌍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다른 키위들은 이렇지 않다) 인터넷을 생산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소비의 엔터테인먼트일 뿐. 즉 그래서, 그들의 하루일과는 보통 이러하다. 밥먹기→학교→집→밥먹기→알바하는 여자친구 데리러 가기→ 여자친구 데리러 갔다온 후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소리 죽여 섹스하기→밥먹기→TV시청 혹은 디브이디 시청→ 잠자기→ 반복, 가끔 장보기. 당연히 인터넷이 필요하지 않을 수밖에. 나도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갖가지 연애에 열을 올린 적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단순하게는 살진 않았다. 저렇게 살 순 없었다.

싱가포르 여자아이가 이 플랫에 들어오기 전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키위 한 명이 있었다. 확실히 나이가 조금 있고, 사회인이라 그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게감이 있었다. 뭔가 고장나면 말없이 수리에 나서는, 플랫의 리더였다. 밤에 플랫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가고 난 뒤, 학생들만 있으니 집이 엉망이다. 오로지 조용한 것을 원하는 것은 나뿐인 것 같으니 혼자 시끄럽다고 말하기도 참 그렇다. 19-20살 밖에 안 된 녀석들한테 말해봤자지 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티 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주당 125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습관적으로 우물우물 반복해서 씹어댔다.

이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살벌하게 시끄러운 대학생인 지금, 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사실 이번 인터넷 사건을 통해 이들과 약간 다툰 후, 화해는 했지만 이미 정이 심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플랫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홈스테이에서 두 달을 살고, 이어 살게 된 이 방은 아는 한국인 형으로부터 인계받았던 것이라, 엄밀히 말해 내가 직접 방을 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뉴질랜드에 온 지 1년 여만에 내 손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고, 운이 좋았는지 집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격은 비슷하게, 하지만 아주 깔끔한 곳으로.

2006년쯤부터 지금까지 8번의 이사(아파트, 하숙, 기숙사, 원룸, 옥탑방, 오피스텔, 반지하 등등..)를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플랫. 7명(때로는 그 이상)의 공동생활은 군대를 제외하곤 처음이었고, 내 이사의 이력 중 사실상 가장 더러운 곳이었다. 나름대로는 잘 지냈지만, 처음 온 사람 모두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니”, 라는 표정을 짓는 곳이었다. 쥐가 방을 놀이터 삼고, 내 방엔 심지어 카펫도 없어서 페인트 묻은 나무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창틀은 오랜 세월에 지쳐 삐뚤어졌으며, 옷장은 경첩 몇 개가 이미 떨어져나가 닫으려면 약간의 노동이 필요하고, 바로 윗방이 화장실인지라 천장 구석마다 곰팡이가 조금씩 피어있는 곳이었다.
 
이 곳 플랫메이트들이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지라 동네에 아무도 없었던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모여 하루 종일 파티를 했고, 가끔씩 마당에 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산다면 앞으로도 인터넷 등의 불상사가 계속 발생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을 빼야 할 타이밍.

뉴질랜드에서의 1년. 삶의 질을 조금 높인다 생각하고 이제 투 룸의, 단 둘이 사는 널찍한 플랫으로 옮기게 된다. 뭔가 알맞은 리듬이라 생각하고 이삿짐의 마지막 박스를 소파 위에 올린다.

댓글 0 | 조회 2,061 | 2015.10.29
일어났다. 나는 푸른 약과 붉은 약을 한 알 씩 따뜻한 물과 함께 삼켜냈다. 오전 2시. 춤을 추고 싶어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미… 더보기

공간

댓글 0 | 조회 2,057 | 2014.10.30
공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아파트로 이사가기 전의 어렸을 적에는, 그리 독립된 생활을 하지는 못했었다. 부모님과 방을 같이 쓰다가, 할머니 할아버… 더보기

江(Ⅳ)

댓글 0 | 조회 2,025 | 2015.04.15
그렇게 세 번째 뒤집혔던 배를 타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뒤집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찰나에 첫 캠프사이트 Ohinepane가 … 더보기

혼란: 독재의 잔재

댓글 0 | 조회 2,005 | 2014.04.09
최근에 나는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었다. 그 때 촬영을 맡긴 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8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남겨진 것들

댓글 0 | 조회 1,981 | 2015.09.09
이사 뉴질랜드에 와서 네번째 이사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웰링턴이 아닌 다른 먼 지역으로 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힘에 부친 일이기도 했다. 처… 더보기

거미집(Ⅱ)

댓글 0 | 조회 1,974 | 2016.01.13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누렇게 뜬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하나 쳐져 있었다. 거미줄 위에 다리가 긴 거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 … 더보기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

댓글 0 | 조회 1,971 | 2014.08.13
영화제의 분위기는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단편영화 섹션이 그렇다. 상기된 표정의 감독들과 스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 평소 영… 더보기

신해철

댓글 0 | 조회 1,957 | 2015.05.13
오랜만에 글을 쓴다. 뭔가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물을 쓰다보니 어렵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탓에 자꾸 사골처럼 우려먹는 기분이다. 사골은 그래도… 더보기

江(Ⅴ)

댓글 0 | 조회 1,942 | 2015.06.09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항해용(?) 옷을 입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컵의 밥이 사라졌다. 은박지가 제멋대로 뜯어져 … 더보기

운동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댓글 0 | 조회 1,934 | 2014.07.08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육이란 것을 키워봤다. 펑크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무렵에는 비쩍 마른 몸을 좋아했다. 44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상체에 디올옴므 모델과도 같은 … 더보기

작업기(Ⅴ)-패

댓글 0 | 조회 1,929 | 2015.04.30
우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보낸 답장은 내가 찍었던 단편영화가 첨부된 채였다. 그 의도는 “나는 이러이러하게 쓸모가 있으니 투자 대비 괜찮을… 더보기

영어

댓글 0 | 조회 1,925 | 2015.01.13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외국인에게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던 것이 비결 아닌 비… 더보기

현재 이사

댓글 0 | 조회 1,907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상류

댓글 0 | 조회 1,901 | 2014.11.26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이다. 지금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와, 이것저것하며 돈을 모은 뒤 지금은 40명에 가까운 직원을 … 더보기

江(Ⅶ)

댓글 0 | 조회 1,878 | 2015.07.15
짐을 모두 싣고 난 후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강변의 물에 바지를 적셔가며 배에 올랐다. 강 위에서의 3일차. 하루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우리는… 더보기

江(Ⅵ)

댓글 0 | 조회 1,845 | 2015.06.24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30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江(Ⅷ)

댓글 0 | 조회 1,822 | 2015.07.29
일어났다. 4일 째. 아침. 강 위에서의 마지막 숙박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류에서 하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강의 흐름은 조금씩 조…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8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기대

댓글 0 | 조회 1,755 | 2014.09.24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더보기

江(Ⅱ)

댓글 0 | 조회 1,731 | 2015.02.11
배에 배럴들을 묶는 법을 확인한 후, N과 나는 대머리 아저씨의 낡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버스에서는 강 냄새가 났다. 비린 버스였다. 거리를 달리는 동…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8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8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