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과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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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과 공격

0 개 1,513 박건호
1998년 6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빌 클린턴 앞에서 진정한 하의실종을 보여줬다. 당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했었던, 이 가학적이면서도 키치적인 행동은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뻔하면서도 대담한 예술 행위로 남았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면서도, 한 손으로서는 자신의 바지를 “아차, 내려가버렸네” 하듯 일부러 입고 있던 점퍼의 하단을 쥐고 있는 사진 한 장. 협소한 나라에 살면서도 지배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도를 표출하는 이 모습은 한국 국민의 근본을 쉽고도 간략한, 일종의 획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2006년 6월.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부시 전 대통령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전에 췄던 춤을 추었다. 이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일본 특유의 마조히즘적 서비스 문화로 생각되었다. 총리로서 체통이 없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 이 지면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 이런 현상을 일본의 통념적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의도된 복종과 해프닝으로 타자를 잠식해 가는 문화적 역사성의 상징적 행위로 읽힐 수 있다.

콘텐츠의 성공. 올해 싸이의 성공을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혹자들은 “아시아 남성을 희화화한 노골적인 성공”, “팝 클리셰의 짜깁기 모음” 등으로 평가했다지만 어찌되었든 이 곳 지구 반대편 라디오에서도 간간히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고, 뉴질랜드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성공한 셈이다.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로.

앞서 말한 두 사례를 바탕으로 했을 때, 싸이의 이 문화현상을 개념으로 읽어낸다면 어떤 종류일까. 일본 특유의 복종적 - 흑심을 감춘 - 침략의 성공일까, 한국의 선 굵은 공격적 콘텐츠의 성공일까.

결과론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두 가설 모두 맞다고 하고 싶다. 문화의 양면성을 고려할 때, 사실 고이즈미든 백남준이든 대중적인 문화 코드는 아니다. 다시 말해 전세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 시대, 그 자체가 - 대중적 팝의 멜로디를 반복하는 복종의 클리셰와 직설적으로 기득권 문화를 비꼬는 반항적 영상들 두 가지가 결합된 - 싸이의 독자적인 코드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국으로 떠나고자 하는 젊은 키위가 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이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이 친구는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소녀시대 멤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사랑해요 소녀시대”를 방송국 앞에서 외치는 것이 꿈인 소박한 젊은이이다. 쉬는 시간에는 걸그룹의 영상들을 내게 자주 보여준다. 기다란 다리를 내놓고, 혹은 곡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춤추는 영상들을 보며 일반적 한국의 여성들을 떠올리는 것은 굳이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조금 곤혹스러운 일이다. 서양의 팝문화를 그대로 베껴온 듯한 자극적인 비주얼로 가득한 영상들. 이 친구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의 뮤직비디오 등으로 인해 한국의 문화, 문자에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문화 파급의 경로가 과거에 비해 크게 변경되었음을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 친구가 영상을 들여다보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동대문 같은 다소 지루해 보이는 사진들이 있는 안내책자보다 보이그룹, 걸그룹의 사진이 들어간 안내책자가 이들에겐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싸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 뉴질랜드에서 화제가 되었던 J-Geeks 같은 그룹이 문화 전달엔 조금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마오리의 문화를 표방한 독특한 춤과 비쥬얼, 그리고 무대를 넘고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에너지의 파괴력. 즉 앞서 말한 고이즈미와 백남준의 - 의도적 복종, 직설적 공격성을 모두 함유한 문화. 더불어 남녀노소 구분 않는 대중적 메시지의 전달이 콘텐츠로서는 조금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조금 고지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거리에서, 소녀 “시대”와 지나가는 “일상의 소녀들”을 비교하며 실망하는 키위의 모습을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피상적인 것보다는 조금 더 다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의 파급을 나는 기대하고 싶다.

뜬금없지만, 쓰고 싶다. 2012년, 끝났다. 적어도 내년부터는, 이러한 기대가 현실로 돌아오면 참 좋겠다.

조금 있어봐, 201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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