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배 몇 척, 갈매기들, 멋진 단독주택들 뿐이었다. 횟집 앞에서 꼬질꼬질한 앞치마를 두른 채 호객을 하는 아줌마들이라든지, 멋대로 배치된 알록달록한 비치용품들의 이름 없는 가게들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그냥 두서 없는 바닷가였다. 두서없이, 나와 길을 걷고 있던 친구에게 물어봤다.
뉴질랜드 부자들의 삶은 어떤 삶이야?
그 친구가 대답하길, 그냥 나보다 좀 더 바쁜 사람들이지 뭐. 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이해를 못 했나, 싶어 네가 생각하는 부자들의 삶을 시간대 별로 대답 해 보라고 부탁했다. 8시? 일어나지. 9시? 일을 나가겠지. 12시나 1시? 점심먹겠지. 5시나 6시? 아마도 부자니까 일을 하겠지. 밤 9시? 그 때쯤엔 퇴근을 하려나.. 잘 모르겠네. 일을 더 하려나? 부자니까? 부자니까. 한국 영화 <돈의 맛>에서는, 부자는 그저 거대한 건축물에 스스로를 봉인한 채, 자신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업무는 여러 대의 휴대폰 중 그 날 맘에 드는 하나를 골라 해결하고, 다시 자신의 방에 딸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하인을 안고 잠이 드는 생활을 한다.
한국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살기 힘든 2층 저택에 거주하며, 의사, 변호사, 재벌 2세들이 무슨 시간이 그리 많은지 연애하고 바람피우고 할 거 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적 비약이라 해도,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러한 것에 환상을 품는다. 또한 환상과 함께 열등감을 품은 채, 돈 많은 사람의 뒤에서 개처럼 벌었을 것이라 수군대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 국민의 90%는 못 되도 80%는 될 것이다.
바닷가에서 대화를 나눈 친구는 분명 그저 그런 뉴질랜드의 중산층 워커, 19살 소녀였다. 부자에 대해 딱히 환상을 갖지 않고, 그저 돈을 벌다보면 집을 사게 될 거고, 결혼을 하고, 해외여행을 가고, 즐기는 것. 그러면 된 거 아니야? 그녀가 말했을 때, 무척 당황했다. 한 명만을 보고 전체 사회를 가늠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꼴에 모럴 해저드 따위를 나불대며 족집게 논술 강의를 하며 돈을 벌었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19살. 그래 그 나이 또래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가 되고 싶은데? 그냥 난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보험회사)이 좋아. 5시에 퇴근하고, 여름 겨울 휴가 나오고. 19살에.. 되고 싶은 게 없는 아들 혹은 딸. 한국 같으면 부모가 무척 걱정스럽게 생각했을 녀석이다. 또 보통은 한국 사회에서는, 되고 싶은게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야망과 포부가 없다는 뜻이며, 때로는 불효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이 친구 직장이라고 해봐야-보험회사지만- 한국으로 치면 파트타임, 즉 알바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알바로 살아가는 것은 용납되지 못한다.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요번에 우리 아들은 대기업 취직했지 뭐에요- 댁 아들은 요즘 뭐해요?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편의점 알바요....이런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도 대기업이 있겠고 꿈의 직장이 있겠지만, 그 갭의 차이가 한국과는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그 갭의 차이 -내가 건너온 태평양의 무게쯤 될까- 와 더불어, 그 친구와의 대화가 내게 시사해 준 것은, 내가 지금까지 야망에 눌려 인생을 잃지는 않았냐는 질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꿈이 이리저리 뒤바뀌고, 그 환상을 좇아 이리저리 유영하는 삶. 누군가에선 행동력 있다 하고, 어딘가에선 능력있다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먼 훗날, 결국 자신의 텅 빈 공허를 술로 완성하려 하는 중년이 되어 버린다면, 이제 더 이상 유영할 힘도, 유흥할 힘도 없다면, 그 때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즐거운 삶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 그 사실에 대해 항상 반추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즐기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일에 대한 노력이든, 사랑에 대한 노력이든, 스스로 끊임없이 내 안에 공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또한, 혹은, 살고 싶었다는 것을- 여기 와서 깨달았다. 그리고 이 글은, 뉴질랜드에서의 내 첫 번째 증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