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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을 무심코 열어봅니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점퍼나 코트를 입지요. 가끔가다 구석에 오래된 가죽자켓이 보이곤 합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그 어두운 진실, 우리가 인식하기 거부하는, 무시하기 쉽게 되버린 현실.
1000, 10000, 100000. 너구리, 고양이, 양, 토끼, 등등.
수없이 많은 그들이 단지 누군가의 옷걸이에 걸쳐지기 위해, 누군가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누군가의 단순한 멋이 되기 위해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좁은 철창이나 낯선곳에 문고리가 걸어지고, 하루하루를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모르는 곳. 낯선 냄새. 낯선 목소리. 낯선 형체. 거친 손길. 그들에게 비쳐지는 우리의 모습일겁니다. 그 곳에서 무조건 맞이하게 되는 처참한 죽음. 다수가 저로썬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으며 그들의 살이 벗겨지는데요.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겪어야 할 그 고통. 소리 지르고 싶습니다, 멈추라고.
값어치.
그들의 생명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옷이 됩니다. 누군가의 장갑이 됩니다. 누군가의 신발이 됩니다. 예전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입고 걸치고 하는 내 자신을 보았지만, 이젠 더이상 그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코웃음을 치며 웃으시는 분들, 이해가 안되는 분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저는 그들이 겪었을 상상도 안되는 공포, 두려움이 알고 싶어지고 궁금해지고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비싸고 ‘고급’이라고 하는 모피 옷들. 부를 상징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가죽은 안 사려고 합니다. 이제 가죽을 싫어하려고 합니다. 그 뒤의 진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진정한 멋은 모피가 아닙니다. 찢어지고 구멍난 옷이 더 아름답습니다. ” - Ellie H